정병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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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4일 (토) 13:25 판

정병주
鄭柄宙
출생1926년
일제강점기의 기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주군
사망1989년 3월 4일 (64세)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사인자살인지 타살인지 불명확한 변사
국적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학력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9기
직업군인, 정치가
소속대통령 경호실 차장
육군 특전사령관
종교천주교
배우자강남희
정병주
출생지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주군
사망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복무 대한민국 육군
복무기간 1950년 ~ 1980년
근무 육군 특전사령부
최종계급 대한민국 육군 소장
지휘 육군 특전사령관
주요 참전 한국 전쟁

정병주(鄭柄宙, 1926년 ~ 1989년 3월 6일)는 대한민국군인, 정치가이다. 본관은 봉화(奉化)이고 경상북도 영주 출생이다. 군인 출신인데 1974년부터 이듬해 1975년까지 육군 소장의 신분으로 잠시 대통령 경호실 차장을 역임함에 정치가의 길을 잠시 지냈다. 그는 조선 왕조 건국의 일등공신이었던 삼봉 정도전의 방계 후손이다.

생애

경상북도 영주군에서 출생하였다. 1949년육군사관학교 9기로 입학하여 1950년 졸업하였고 그 해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육군 제1연대 소대장으로서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 군인으로서 정도를 걸은 참다운 군인으로, 5·16 군사정변 당시에는 쿠데타 세력에게 비협조하다가 체포되어 경회루 기둥에 묶여 있다가 영창에 가기도 했다.[1]

이후 1967년육군 특전사령부 제7공수여단장을 시작으로 특전사와 인연을 맺었으며 1974년에 육군 소장으로 승진과 동시에 대통령 경호실 차장으로 있다가 그 이듬해인 1975년에 육군 특전사령부의 사령관으로 임명됐다. 1979년 전두환12·12 군사 반란을 일으키자 장태완 육군 수도경비사령관과 같이 전두환의 군사반란을 막아보려 했지만, 그가 준장 진급에 도움을 준 박희도최세창에게 배신당했다. 정병주는 전두환의 군사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직속 부하에 의해 총격을 받아 부상을 입었으며 그를 보호하려던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도 쿠데타군의 흉탄에 맞아 숨졌다.

1980년 1월 20일, 정병주는 현역부적합 처리되어 육군 소장으로 강제 예편되었다. 이후 정병주는 전두환이 일으킨 12·12 군사 반란에 대한 부당성을 주장하다가 1989년에 목매달아 숨진 채 변사체로 발견됐다. 군 당국에 의해 자살로 처리되었지만 정병주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는 점에서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는 의혹이 있다. 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정병주의 죽음에 대해 논란을 제기했다.

가족

  • 부인 : 강남희(姜南熙, 1934 ~ )

주석

  1. 김, 준철. “12.12군사반란과 어리석은 군인 김오랑”.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1년 10월 3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