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이·망소이의 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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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1일 (목) 18:46 판

망이·망소이의 난(亡伊亡所伊-亂)은 고려 무인 집권 때 사회질서가 문란해진 틈을 타서 일어난 민란의 하나이다.

개설

고려시대 특수행정구역이었던 향, 소, 부곡 에 해당된 수공업자의 집단 거주지인 공주 명학소의 망이·망소이는 1176년(명종 6년) 음력 1월 굶주린 무리를 모아 난을 일으켜 공주를 함락하였다. 고려 정부는 선유(宣諭)에 실패하여, 정황재(丁黃載)·장박인(張博仁)에게 이를 토벌케 했으나 쉽지 않자, 명학소를 충순현(忠順縣)으로 승격시키고 위무(慰撫)하는 등 반란을 회유하고자 했다.

그러나 응하지 않고 예산을 공략한 난민(亂民)은 1177년(명종 7년) 정월 정부군의 토벌에 항복했다가 정부의 처사에 불만을 품고, 그 해 2월 다시 난을 일으켰다.

가야사(倻倻寺)와 직산의 홍경원(弘慶院)을 휩쓴 난민은 아산·청주를 공격했다. 고려 정부는 충순현을 명학소로 다시 강등하는 등 강경책으로 난민을 총공격하였다. 이때는 농번기라 난민 중 농민병이 이탈하고, 식량·무기 등이 부족하여 정세가 불리해졌다. 이리하여 망이·망소이 등은 체포되고 난은 7월에 끝났다.

망이·망소이의 난이 시작되었던 명학소의 위치는 현재 대전광역시 서구 탄방동(당시 공주군 유성현)으로 추정되어 탄방동 소재 남선봉 공원에 기념탑이 건립되었다.

충순현을 신설하여 민란을 일으킨 자들을 위무했다고 하는데 대전시 탄방동에 설치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갈마동 동사무소 안쪽이라고 하기도 한다. [1]

주석

  1. 대전 덕명지구 문화재 지표조사 보고서 13쪽, 충청남도 역사문화원, 2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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