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보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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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보초니
신상정보
출생
사망
직업 화가, 조각가, 데생화가, 사진가, 미술 평론가, 제도사, 그래픽 예술가, 판화가
사조 미래파
주요 작품
The City Rises, 공간에서의 독특한 형태의 연속성, The Street Enters the House
영향
묘비

움베르토 보초니(이탈리아어: Umberto Boccioni, 1882년 10월 19일 레조디칼라브리아 ~ 1916년 8월 17일 베로나)는 이탈리아조각가, 화가미래파를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생애[편집]

어린 시절에 가족들과 함께 포를리, 제노바, 파도바로 이주했다. 15세 시절에는 아버지와 함께 시칠리아카타니아에 정착했으며 1898년에는 로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1901년에는 화가 지노 세베리니(Gino Severini)와 함께 자코모 발라(Giacomo Balla)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1906년에는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면서 인상주의후기인상주의 미술 양식을 배웠다. 보치오니는 광범위하게 여행했고 많은 박물관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그가 관찰한 일부 예술가, 특히 미켈란젤로와 같은 다른 시대의 예술가들과 공생 관계에 거의 들어갈 뻔했지만, 그의 연구에 영감을 줄 프란체스코 필리피니의 풍경 롬바르드와 필리핀의 개념에 따라 시골에서 일한다.

1907년 밀라노로 이주한 뒤부터 색채분리주의 화가들과 교류를 가졌으며 1910년 초반에는 《미래파 선언》을 발표한 화가인 필리포 톰마소 마리네티(Filippo Tommaso Marinetti)를 만났다. 1910년 2월 11일에는 카를로 카라(Carlo Carrà), 루이지 루솔로(Luigi Russolo), 자코모 발라, 지노 세베리니와 함께 《미래파 화가 선언》(Manifesto dei pittori futuristi)을 발표했고 1912년 4월 11일에는 《미래파 조각의 기술 선언》(Manifesto tecnico della scultura futurista)을 발표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진행 중이던 1916년 8월 16일에 있었던 기병대 훈련 도중에 일어난 낙마 사고로 인해 향년 3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작품[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