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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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와당(新羅瓦當)은 유적에서 발견되는 신라 시대의 와당을 총칭하는 말이다.
초기의 것은 월성(月城) · 남산성(南山城) · 황룡사지(皇龍寺址) 등에서 발견되는데 중국 육조(六朝) 시대(중국 삼국 시대의 오(吳)나라 이후 당나라 이전 또는 위진 남북조 시대와 수나라까지의 시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백제의 와당과 성질이 같다.[1] 가장자리의 테두리는 두껍고 높으며, 바탕에는 연꽃무늬를 양각(陽刻), 꽃잎은 여덟이 보통이고 화탁(花托)은 비교적 작은데 6~7개의 꽃씨가 놓여 있다.[1]
신라 후기에는 파와(巴瓦) · 당초와(唐草瓦) · 귀와(鬼瓦) · 치와(鴟瓦) · 평와(平瓦) 등 여러 종류의 기와를 만들었는데 그중 파와 · 당초와가 특히 우수하다.[1] 파와는 연꽃무늬가 가장 많고 당초와에는 인동(忍冬)무늬 · 보상화(寶相花)무늬 · 포도무늬 · 연당초(蓮唐草)무늬 · 국(菊)당초무늬 · 구름무늬 · 불꽃무늬 등을 많이 사용하고 천인(天人) · 기린(麒麟) · 봉황(鳳凰) · 서금(瑞禽) · 짐승 등을 무늬 놓은 것도 있다.[1] 귀와는 짐승의 얼굴 무늬가 많고, 평와는 직선 무늬 · 곡선 무늬가 있으며 무늬가 없는 것도 있다.[1]
후기의 와당은 분황사(芬皇寺) · 백률사(栢栗寺) · 불국사(佛國寺) · 석굴암(石窟庵) 등에 남아 있다.[1] 이들 후기의 와당은 초기에 웅장한 것을 특징으로 한 데 반하여 섬세하고, 세련된 기교를 발휘한 것이 특징이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