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군 최유림장군 묘
평택시의 향토문화재 | |
종목 | 향토문화재 제4호 |
---|---|
위치 | |
주소 | 경기도 평택시 지산동 산106-2 |
좌표 | 북위 37° 05′ 01″ 동경 127° 04′ 03″ / 북위 37.08361° 동경 127.06750° |
수성군 최유림장군 묘(隋城君 崔有臨將軍 墓)는 경기도 평택시 지산동 산106-2에 있는, 조선시대의 무덤이다. 평택시의 향토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편집]최유림(崔有臨, 1426~1471) 장군은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수성(隨城), 자(字)는 자앙(子昻)이다. 1450년(세종32) 무과에 급제하고 1455년(세조1)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3등에 녹훈(錄勳)되었으며, 1464년(세조10)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로 진하사(進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서 이듬 해 전라도처치사(全羅道處置使)로 부임했다.[1]
1467년(세조13) 이시애(李施愛) 난이 일어나자 공현위장(控弦衛將)이 되어 충청도병사 1,000명을 이끌고 석장현(石場峴) 싸움에서 김말손(金末孫)을 사로잡는 등 공을 세워 정축정책공신(精忠敵愾功臣) 3등에 훈호(勳號)되고 가선대부(嘉善大夫) 수성군(隨城君)에 봉하는 동시에 오위장(五衛將)이 되었으며, 그 해 명나라의 북방을 침범한 이만주의 군대를 막기 위해 조선지원군의 출병시 큰 공을 세움으로써 1468년(세조14)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제수되고, 경상우도 병마절도사(慶尙右道 兵馬節度使)로 부임했다.[1]
1471년(성종2) 병으로 관직을 사임하고 향리에 내려와 8월 28일 타계하니 임금인 성종은 자헌대부 병조판서(資憲大夫 兵曺判書)로 추증하고 안양(安襄)으로 시호(諡號)를 내렸다.[1]
사당(祠堂)은 평택시 오좌동에 있으며 수성최씨(隋城崔氏) 수성군파(隋城君派)의 세거지지(世居之地)로 내려오고 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