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 (1898년)
박경호 | |
---|---|
기본 정보 | |
출생 | 1898년 대한제국 평안남도 평양 |
사망 | 1979년 (82세)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
성별 | 남성 |
직업 | 피아니스트, 지휘자, 교육인 |
장르 | 서양 고전음악 |
종교 | 개신교 |
박경호(朴慶浩, 일본식 이름: 香村實가무라 마코토, 1898년 ~ 1979년)는 일제강점기부터 활동한 한국의 피아니스트, 지휘자, 음악평론가이다.
생애
[편집]평양의 개화된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나 서양음악을 일찍부터 접했다. 경성부 경신중학교와 평양의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으로 유학, 난징의 금릉 대학에서 수학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오하오주 신시내티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뒤 귀국하였고,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 근무했다. 1930년대 피아노 연주자와 교향악단 지휘자 등으로 활발히 활동하였으나, 교통사고로 팔을 다치면서 이후로는 연주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광복 후 미국으로 시찰을 갔다가 정착하여 미국의 소리 방송에서 근무했다.[1]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평생 의료봉사 활동 등에도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
1937년 홍난파, 현제명 등과 함께 개량주의 성향이 짙은 조선문예회에 가입[2] 한 것을 시작으로, 일제 강점기 말기에 친일 행적이 확인된다. 조선총독부의 후원으로 총독부 사회교육과장인 김대우의 감독 하에 발족한 조선문예회에서는 최남선 작사, 이종태 작곡의 〈내일〉을 박경호에게 취입하도록 하고 시연회를 가졌다.[3] 친일 음악단체인 경성후생실내악단의 공연을 보고 〈경성후생실내악단 공연후감〉이라는 글을 《매일신보》에 기고하는 등 친일 평론도 발표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음악 부문에 선정되었으며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참고자료
[편집]- 정규복 (2003년 10월 4일). 《찰나와 영겁》. 서울: 국학자료원. 146~148쪽쪽. ISBN 8954101127.
각주
[편집]- ↑ 《미국의소리》 (2005.4.21) 미국의 소리 최초의 KBS 파견 아나운서 장기범 회고록 Archived 2006년 10월 5일 - 웨이백 머신
- ↑ 반민족문제연구소 (1993년 4월 1일). 〈현제명 : 일제 말 친일음악계의 대부 (노동은)〉. 《친일파 99인 3》. 서울: 돌베개. ISBN 9788971990131.
- ↑ 백기완, 송건호, 임헌영 (2004년 5월 20일). 《해방전후사의 인식 (1)》. 서울: 한길사. 241쪽쪽. ISBN 8935655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