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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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金闡, ? ~ ?)은 고려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김영석(金永錫)의 3남이다.
생애
[편집]문과에 급제해 관직에 진출한 것으로 추측된다.
의종(毅宗)조에 내시(內侍)·호부시랑(戶部侍郞)·충사관수찬관(充史館修撰官)·세마(洗馬), 내시·전중감(殿中監)을 거쳤다.[1][2]
1170년(명종 즉위년) 명종(明宗)이 즉위하자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에 임명되어 재추의 반열에 들었고, 1172년(명종 2) 1월 서북면병마사행영(西北面兵馬使行營)·중군병마사(中軍兵馬使)로 나갔다.[3]
7월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로서 문과의 지공거(知貢擧)를 맡아 장문경(張聞慶) 등 29명에게 급제를 주었으며[4], 이후 관직이 추밀원사(樞密院使)·이부상서(吏部尙書)·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丞旨)에 이르렀다.[5]
가족 관계
[편집]- 증조 - 김상기(金上琦, 1031년 ~ 1111년) : 수태위(守太尉)·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판예병부사(判禮兵部事)·감수국사(監修國史)·상주국(上柱國), 문정공(文貞公), 선종(宣宗)의 배향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