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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영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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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영(金仁泳, 일본식 이름: 金村仁泳, 1893년 ~ 1953년)은 한국감리교 목사이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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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부 출신으로 개성의 한영서원을 거쳐 피어선기념성경학원(현 평택대학교)과 협성신학교를 졸업했다. 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에서 활동하고 《신학세계》 주필을 맡았다가, 미국에 유학하여 조지아주 에모리 대학교에서 구약학을 전공했다.

유학을 마치고 1927년 귀국한 뒤 모교인 협성신학교와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를 지냈다. 1930년대 전반기에 수도권을 중심으로 펼쳐진 신앙운동인 신흥우적극신앙단에도 참여했다. 흥업구락부의 맥을 잇는 이 운동에는 정춘수, 김영섭, 함태영, 박연서, 전필순 등 당시의 유명한 목회자들이 대거 가담했다.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1년 협성신학교가 폐쇄되고 설치된 감리교신학교 교장에 취임하였고, 태평양 전쟁 기간 중 일제에 협력한 행적이 있다. 일제가 강제로 교파를 통합하여 1945년 발족시킨 일본기독교 조선교단의 의장을 맡았다.[1]

광복 후인 서울 중구남산교회를 세우고 담임목사를 맡았다가 이듬해에는 감리교단의 대표 격인 정동제일교회로 옮겼다. 광복 후에 감리교단은 친일파 청산 문제를 놓고 재건파와 부흥파로 나뉘었다. 김인영은 1949년 합동총회에서 두 파가 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를 탄생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종교 부문에 선정되었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가 2005년 광복 50주년 기념으로 펴낸 자료집에서 감리교 내 친일 부역자 12인 명단을 공개했을 때도 포함되었다.[2]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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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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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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