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전국체육대회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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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전국체육대회
야구
1922년 전국체육대회 야구

Baseball
개최국 일제 강점기 일제강점기 조선
개최 도시 경기도 경성부
개최 기간 1922년 10월 14일 ~ 10월 16일
경기장 배재고등보통학교 운동장
세부 종목 2개 종목 (남자: 2개)
« 1921
1923 »
1922년 전국체육대회
야구
Baseball pictogram.svg
중학부
남자
청년부
남자
대회 개회식 모습
학생응원단의 모습
배재고등보통학교와 숭실중학 간 경기 장면
중학부에서 우승한 배재고등보통학교의 모습
청년부에서 우승한 중앙체육단의 모습

1922년 전국체육대회 야구일제강점기 조선 경성부에서 개최된 1922년 전국체육대회의 경기 종목이다. '제3회 전조선야구대회'로 개최되었으며 1922년 10월 14일부터 10월 16일까지 배재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1]

대회 준비[편집]

1921년에 개최된 제1회 전조선소년야구대회에서 발생한 난동 사건으로 배재고등보통학교가 제재를 받아 배재보통고등학교 선수단의 참가가 불가능하고 경기장 시설이 좋았던 배재보통고등학교 운동장을 이용할 수 없었다.[1] 경기장 시설이 매우 열악했던 당시 배재보통고등학교에 대한 제재는 특정 학교와 선수단에 대한 징계를 넘어서 당시 한국 체육계의 경기장 이용에 불편을 초래했고 스포츠 강호를 배재한다는 것은 대회의 경기 수준 향상 측면에서도 좋지 않다는 여론이 일어났다.[1] 결국 조선체육회의 이사회 결의와 7개 학교 교장들의 태도 완화로 1922년 9월 21일에 배재고등보통학교에 대한 징계가 해제되었다.[1] 배재고등보통학교에 대한 징계 해제로 제3회 전조선야구대회는 배재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개최할 수 있게 되었고 배재 측 선수단 역시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1]

대회 진행[편집]

제3회 전조선야구대회는 1922년 10월 14일부터 사흘간 일제강점기 조선 경성부에 있는 배재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한국의 독립운동가인 이승훈의 시구를 시작으로 개최되었다. 중학부 종목에는 징계가 해제된 배재고등보통학교를 비롯하여 경신학교, 계성학교, 송도고등보통학교, 숭실중학, 오산학교, 중앙고등보통학교, 휘문고등보통학교 등 8개 선수단이 참가했고, 청년부 종목에는 대구청년단, 반도구락부, 배재구락부, 숭실구락부, 연희전문학교, 중앙체육단 등 6개 선수단이 참가했다.[1]

중학부 종목에서 배재고등보통학교가 결승에서 숭실중학을 5:2로 이기며 우승했고,[1] 청년부 종목에서는 중앙체육단이 배재구락부를 12:5로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다.[2] 중학부 종목에서 우승한 배재고등보통학교 선수단에게 당시 후원사인 동아일보일본 도쿄에서 재료를 들여와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이 자수를 놓아 만든 우승기를 수여했다.[2]

경기 결과[편집]

중학부[편집]

  준결승 결승
             
 배재고등보통학교 3  
 휘문고등보통학교 0  
 
     배재고등보통학교 5
   숭실중학 2
 
 숭실중학 8A
 계성학교 4  

청년부[편집]

  준결승 결승
             
 배재구락부 10  
 숭실구락부 0  
 
     배재구락부 5
   중앙체육단 12
 
 중앙체육단 불명
 불명 불명  

각주[편집]

  1. 대한체육회 (2011). 《대한체육회 90년사 I》 (PDF). 66쪽.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2. 대한체육회 (2011). 《대한체육회 90년사 I》 (PDF). 67쪽.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참고 문헌[편집]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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