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기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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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기념상은 독일 NRW 주 데트몰트 시 남서쪽에 위치한 토이토부르크 숲안에 세워진 동상이다. 1838년-1875년에 에른스트 폰 반델의 설계로 지어 졌으며, 1875년 8월 16일 완공되었다.

이 기념상은 독일 영웅 헤르만(Hermann)과 이른바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를 기념하고 있는데, 이 전투에서 헤르만(아르미니우스) 은 9세기 경 게르만 부족들을 이끌고, 푸블리우스퀸크틸리우스 바루스 휘하의 로마 군대를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바 있다.

동상 자체의 높이는 26.57미터에 달하고, 아래 받침 부분 까지 포함해서 53.46미터로 독일에서 가장 높은 인물 기념상이며, 1875년-1876년 사이에는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동상이었다. 동상은 철관 재질로 되어 있으며, 표면은 구리판이 입혀져 있다. 기념상 무게는 받침 원판 부분까지 포함 42.80톤이다. 오른손에 쥐고 있는 칼의 길이는 7m, 무게는 550kg 이다. 칼은 서쪽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는 프랑스에 대한 적대적 또는 방어적 제스처로 해석되기도 한다. 왼쪽 발 아래에는 독수리와 손도끼가 놓여져 있다.

건립의 역사적 배경 이 기념상이 지어진 배경은 19세기의 독일 정치 상황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당시에는 수 세기에 걸쳐 대를 이어 독일-프랑스 적대감이 팽배한 상황이었다. 나폴레옹 시대 프랑스에 대한 항복과 독일 내 정치적 분열로 인해, 점점 더 많은 독일인들이 게르만 민족의 과거사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찾기 시작하였다. 독일(게르만) 부족들을 통일한 최초의 인물로서의 헤르만이 이에 가장 적당한 인물이었다. 지리적 위치 헤르만 기념상은 숲이 우거진 토이트 산(386m)에 세워졌으며, 건축가 에른스트 폰 반델은 당시의 연구에 따라 게르만족과 로마군 사이의 전투가 바로 여기서 벌어졌다고 여겼다. 또 당시 리페(Lippe)의 영주가 기념상을 잘 보이는 산 높이에 세울 것을 요구하였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대부분의 전문가들 견해에 따르면, 실제 게르만족과 로마군 사이의 전투는, 이곳이 아닌, 니더작센 주에서 이루어 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건립 역사 1838년 전체 53.46m 높이의 기념상 건축 시작. 1846년 기념상 받침대 완성. 1848-1863 공사 중단(기념상 건립에 대한 재정적 ,정치적 관심 감소) 불독 전쟁(1870-1871) 이후 독일 제국 개국과 함께 기념상 공사 재개. 빌헬름 1세 황제 시절 1875년에 완공식.

  • 조각가/건축가인 에른스트 폰 반델은 이 건축물에 평생을 바치다 시피하였으며, 공사 기간 내내 기념상 근처에 움막(Bandel Hütte)을 짓고 살았으며, 완공식 이듬해인 1876년 세상을 떠났다.

칼에 새겨진 각인 내용: DEUTSCHE:EINIGKEIT:MEINE:STAERKE MEINE:STAERKE:DEUTSCHLANDS:MACHT 독일의 하나됨은 나의 힘 내 힘은 독일의 힘

헤르만 기념상의 역사적 의미 역사적으로 반 프랑스주의, 민족주의적 상징, 독일 가톨릭 신자, 유대인, 사회 민주주의자에 대한 배척의 의미, 독일 통일에 대한 평화적 호소의 장소, 모든 민족의 평화의 장소 등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으며, 오늘날에는 공식적으로 „평화의 기념비“ 역할을 하고 있음. 기타 기념상 받침대 중간에서 주위 경치를 360도 즐길 수 있다.(입장료 3유로). 헤르만 기념상 자체로도 올라갈 수 있기는 하나, 일반인에게는 금지. 예전에 어떤 사람이 동상으로 올라갔다가 콧구멍에서 떨어진 적이 있어서 그 이후 부터 금지되었다는 일설이 있다. 1999년에는 대형 크레인을 이용하여 넓이가 130평방미터나 되는 빌레필트 축구팀 아르미니아 빌레펠트(아르마니아는 헤르만의 라틴어식 표기) 의 축구 유니폼을 입혀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