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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아 하리피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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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아 리피탁(태국어: เฟื้อ หริพิทักษ์, Fua Haripitak, Hua Haripitak, 1910년 4월 22일 ~ 1993년 10월 19일)은 태국화가이다. 서구 현대 미술의 태국 도입에 기여하였으며, 태국 전통 회화의 기법을 응용한 그림을 그렸다. 1983년막사이사이 상을 수상하였으며,[1] 1985년에는 태국 국가예술가로 선정되었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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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아 리피탁은 1910년 4월 22일 톤부리에서 궁정 화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1930년대에는 태국에 체류하고 있던 이탈리아인 미술가 신라빠 피라시(코라도 페로치) 교수의 지도 하에, 신라빠꼰 대학교의 전신인 쁘라닛 예술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이 시기의 작품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술학교가 불에 타 상당수가 소실되었으나, 보존된 작품으로 《할머니》라는 유화가 남아 있다.[2]

1940년부터 1946년까지는 타놈삭 끄리다꼰에게서 장학금을 받아 라빈드라나트 타고르가 설립한 인도 서벵골 주비슈바바라티 대학교에서 유학하였는데, 이 기간에 프아 리피탁은 인도 미술인도 철학에 감명을 받는다. 그러나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이 태국이 속한 추축국의 패배로 끝나자, 일본인 화가들과 함께 일본인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기도 했다.[3] 1946년 인도 유학을 마치고 귀환한 프아 리피탁은 곧 신라빠꼰 대학교에서 교직을 잡고 활발한 작품 활동을 계속하였다. 1949년1950년에 열린 1, 2회 태국 전국 미술전에서는 각각 《펫차부리》와 《리엔쁘라차 부인의 초상》으로 금상을 받았다.

1954년부터 1956년까지는 이탈리아 정부의 장학금을 받아 로마의 미술학원(이탈리아어: L'accademia Di Belle Arti)에서 미술 연구를 하였다. 이 기간 동안 초크, 색연필, 잉크, 팔레트 나이프 등을 이용한 다양한 기법을 실험하고 추상화큐비즘 등에 손을 대기도 했다. 작품의 주제는 주로 이탈리아의 풍경이었지만 이따금 누드화도 그렸다. 이 무렵에 그린 작품들로 프아 리피탁은 후일 태국 현대 회화의 선구자로 꼽히게 되었다. 태국 귀국 후인 1957년에 다시 전국 미술전에서 금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미술품 복구가로서도 활동하여 라마 1세 시절 건립된 왓 라캉(태국어: วัดระฆังโฆสิตารามวรมหาวิหาร)의 삼장각(三藏閣) 복구 작업에 종사하는 등 수많은 사원의 복구에 힘썼다.

1991년 시리랏 병원에 입원하여, 1993년 뇌혈관염으로 사망하였다.

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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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국 쁘라닛 예술학교 졸업

명예 박사 학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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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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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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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막사이사이賞(상) 하리피탁氏(씨)”. 경향신문. 1983년 8월 3일. 2012년 3월 19일에 확인함. 
  2. "Art & Culture -35 Most Infuential Thais Hua Haripitak" (PDF). 2007년 9월 29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11월 3일에 확인함. 
  3. วิรุณ ตั้งเจริญ (2547) 'เฟื้อ หริพิทักษ์' "ปัจเจกศิลปิน" กรุงเทพมหานคร: ดีแอนด์ไอคิว, p49 ISBN 9741329482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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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scar Nalesini, L'Asia Sud-orientale nella cultura italiana. Bibliografia analitica ragionata, 1475-2005. Roma, Istituto Italiano per l'Africa e l'Oriente, 2009, pp. 292–316 ISBN 978-88-6323-284-4.
  • 福岡美術館編(1997)「東南アジア―近代美術の誕生」東南アジアの近代美術の誕生展実行委員会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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