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르 코코슈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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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21일 (일) 09:45 판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 1886년∼1980년)는 오스트리아의 화가이다. 도나우의 푀히라룬에서 태어났다.
1904년 빈 공예학교의 급비생으로 수학하는 한편, 구스타프 클림트가 지도하는 '빈 아틀리에'에 들어가서 환상적인 작풍(作風)의 판화·그림책·플래카드 등을 제작하였다. 1910년 화랑 및 미술잡지 <시투름>의 창립자인 발덴의 초청으로 베를린에 이주하여 그 곳에서 표현주의 운동에 참가하였다. 이 시기에는 초상화의 제작이 많았고, 그 심리묘사에까지 육박하는 작풍은 대상으로 하는 인물의 운명을 예언한다는 평을 받아 '화필의 점술사'라 불리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종군하여 부상을 입었고, 전후에는 1918년∼1924년까지 드레스덴 아카데미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이윽고 유럽·아프리카·중근동 각지를 편력하여 광대한 시야에 입각한 바로크적인 풍경화를 그렸다. 나치의 대두로 정치적인 압박을 받아 1938년 런던으로 망명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그 곳에서 침략주의에 대항하여 전란의 유럽을 비판하는 경세적(警世的) 작품을 발표했다. 이런 종류의 제작에는 '예술은 언어와 같아서 자아로부터 타아(他我)에의 사자(使者)이다'라는 그의 신념이 구체화되었다. 초기의 환상화로는 <바람의 신부>, 초상화는 <포렐 박사상(博士像)>이 있고, 편력시대의 풍경화에 <몬타나>가 있으며 풍자적 작품인 <테레모피레>는 유명하다. 그는 또한 표현주의의 시인, 희곡작가로서도 주목할 작품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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