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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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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업'''(林慶業, [[1594년]]~[[1646년]] [[음력 6월 20일]]([[8월 1일|양력 8월 1일]]))은 [[조선]] 중기의 명장으로 친명배청파(親明排淸派) 무장이었다. 자는 영백(英伯), 호는 고송(孤松), 시호가 충민(忠愍)이며, 본관은 [[평택 임씨|평택]](平澤)이며, [[충주시|충주]](忠州) 출생이다. 판서(判書) 임정(林整)의 후손이다.
 
24세 때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624년(인조 1) [[이괄의 난]] 때에는 반란군을 토벌하여 1등 공신에 책록되었다. 그 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그 곳 황제의 특별한 청을 받고 명나라의 10만 군사를 지휘하여 가달족 토벌에 나서, 오랑캐를 무찌르고 돌아와 명나라의[[명나라]]의 황제로부터 총병 벼슬을 받았다. 그 후 조선으로 귀국해서 1633년 청북 방어사 겸 영변부사에 등용되어 북방 경비를 튼튼히 하기 위해 의주에 있는 백마 산성을 다시 쌓았다. 당시 누르하치가 만주 대륙을 통일하여 나라 이름을 후금이라 칭하고 명나라와 조선에 싸움을 자주 걸어왔다. 후금의 소규모 부대가 국경을 넘어오자 이를 여러 번 격퇴하여 되돌려보냈다.
 
그는 조선 조정 내 친명 인사의 한사람으로, 명나라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 주었으며, 임경업은 명나라를 위하여 오랑캐를 무찌르는 것으로 보답하여, 명나라와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 더 읽어보기 ==
* [[이괄의 난]]
* [[병자호란]]
* [[임경업전]]
* [[김자점]]
* [[송시열]]
* [[윤휴]]
* [[이괄]]
* [[한명련]]
 
== 주석 ==
[[분류:육군 군인]]
[[분류:임씨]]
[[분류:조선의 공신]]
[[분류:사형된 사람]]
[[분류:옥사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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