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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종관'''(陸鐘寬, [[1893년]]~[[1965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인이다. |
'''육종관'''(陸鐘寬, [[1893년]]~[[1965년 12월 26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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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에 충청북도 [[옥천군]] 능월리에서 대지주 육용필의 자식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육종관은 형들이 출향하여 출세하자, 자신은 고향에 남아 집안의 재산을 관리했다. 정실 부인인 이경령과의 사이에서 난 자식은 4명이고, 첩 소생의 자식이 18명 도합 22명의 자식이 있다. 딸 육영수와 박정희의 결혼에 반대하여 1950년 12월에 있었던 결혼식에 끝내 참석하지 않았다. 사위인 박정희가 [[1961년]] 정변에 성공하고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도 청와대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1965년 사망 직전 병문안을 온 박정희에게 자신이 부덕하여 큰 인물을 알아보지 못하였다고 처음으로 사과하였다.<ref> {{웹 인용 |
[[1893년]]에 충청북도 [[옥천군]] 능월리에서 대지주 육용필의 자식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육종관은 형들이 출향하여 출세하자, 자신은 고향에 남아 집안의 재산을 관리했다. 정실 부인인 이경령과의 사이에서 난 자식은 4명이고, 첩 소생의 자식이 18명 도합 22명의 자식이 있다. 딸 육영수와 박정희의 결혼에 반대하여 1950년 12월에 있었던 결혼식에 끝내 참석하지 않았다. 사위인 박정희가 [[1961년]] 정변에 성공하고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도 청와대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1965년 사망 직전 병문안을 온 박정희에게 자신이 부덕하여 큰 인물을 알아보지 못하였다고 처음으로 사과하였다.<ref> {{웹 인용 |
2010년 6월 7일 (월) 14:23 판
육종관(陸鐘寬, 1893년~1965년 12월 26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인이다.
1893년에 충청북도 옥천군 능월리에서 대지주 육용필의 자식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육종관은 형들이 출향하여 출세하자, 자신은 고향에 남아 집안의 재산을 관리했다. 정실 부인인 이경령과의 사이에서 난 자식은 4명이고, 첩 소생의 자식이 18명 도합 22명의 자식이 있다. 딸 육영수와 박정희의 결혼에 반대하여 1950년 12월에 있었던 결혼식에 끝내 참석하지 않았다. 사위인 박정희가 1961년 정변에 성공하고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도 청와대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1965년 사망 직전 병문안을 온 박정희에게 자신이 부덕하여 큰 인물을 알아보지 못하였다고 처음으로 사과하였다.[1]
가족 관계
관계 | 이름 | 출생일 | 사망일 | 활동사항 |
---|---|---|---|---|
큰형 | 육종윤 | 갑신정변에 참여, 일본으로 망명 | ||
둘째형 | 육종면 | 선장, 변호사 | ||
셋째형 | 일찍 죽음 | |||
아내(정실) | 이경령(李慶齡) | |||
딸 | 육인순(陸寅順) | 1914년 | 1972년 | 서울특별시 시립부녀사업관 관장 |
아들 | 육인수(陸寅修) | 1919년 12월 3일 | 2001년 6월 25일 | 국회의원 5선 |
딸 | 육영수(陸英修) | 1925년 11월 29일 | 1974년 8월 15일 | 박정희 전 대통령 부인 |
딸 | 육예수(陸禮修) | 1929년 | 조태호(趙泰浩)와 결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