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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안양시}}
'''안양군 이항'''(安陽君 行, ? -~ 1505[[1505년]])은 [[조선]]의 왕족으로, 조선 제9대 임금 [[조선 성종|성종]]의 서자이다. 시호는 공회(恭懷)이다.
 
== 생애 ==
[[조선 성종|성종]]의성종의 서자이자, 3남으로 생모는 [[귀인 정씨 (성종)|귀인 정씨]](貴人鄭氏)인 [[초계 정씨]](草溪鄭氏)이다. 정부인으로는 면천군부인 [[능성 구씨]](沔川郡夫人 綾城具氏)이다가 있다. 연산군이 생모인 [[폐비 윤씨]] 사건의 원인이 성종의 후궁인 정씨와 엄씨의 참소에 있다고 판단하여 사건의 처리과정에서 [[봉안군]](鳳安君)이봉을 이봉과 안양군을 이에 연루시켰다.연산군이 봉안군연산군은 이봉과봉안군과 함께안양군에게 생모 정씨를 때리도록 하였는데, 이봉은봉안군은 자기 어머니인 줄을 알고 있었으나, 이항은안양군은 누구인지도 모르고 때릴 정도로 우둔하였다.<ref>[http://people.aks.ac.kr/front/tabCon/ppl/pplView.aks?pplId=PPL_6JOa_A9999_1_0006861&curSetPos=0&curSPos=0&isEQ=true&kristalSearchArea=P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안양군]</ref> 연산군은 다음날 어머니를 때린 것에 대한 상으로 안양군에게 말을 한 필 내렸다.<ref>《연산군일기》 52권, 10년(1504년) 3월 21일 1번째 기사</ref> 며칠 뒤 연산군은 안양군을 제천으로 유배보내고 가산을 몰수하였고 폐비 윤씨 사건 당시 나이가 어려 일을 알지 못하였을 것이니 더 이상 죄를 묻지 말라고 하였다.<ref>《연산군일기》 52권, 10년(1504년) 3월 30일 2번째 기사</ref> 그러나 이듬해인 [[1505년]] 안양군은 사약을 받고 죽었으며 그 처첩은 다른 종친에게 나누어졌다.
 
== 가족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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