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조의 사용자 기여

사용자 편집 수: 5건. 계정 생성일: 2018년 12월 22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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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11일 (금)

2020년 12월 22일 (화)

  • 20:112020년 12월 22일 (화) 20:11 차이 역사 −90 정하상→‎유년시절: 정약종이 사형을 당할 때 하상의 나이는 7살이었다. 정약종의 재산은 나라에서 몰수했다. 역적 가족을 도우면 함께 처벌을 당했다. 큰 아버지 정약현은 사위 황사영이 사형당하고, 딸과 외손자는 유배를 당했다. 정약전과 정약용도 유배를 당했다. 정약종의 막내 삼촌 정재진이 아무도 몰래 집을 마재에 마련하고 정약종의 유가족을 돌보았다. "우리 형제 3인이 젊어서 서울에 노닐었는데, 불행한 때를 만나 부형에게 근심을 크게 끼쳤다. 그런데 공이 더욱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기를 마치 불길이 집을 태우는 것처럼 하였다. 신유년(1801, 순조 1)에 화가 일어나자 공은 비분(悲憤)하여 살고 싶지 않은 듯하였다. 그러나 그 고아와 과부를 불쌍히 여기고 구휼하여 집을 장만해 주고 또 때때로 위급함을 구해주었다. 아, 지극하시도다."(정약용 여유당전서 계부(季父) 가옹(稼翁)의 묘지명 인용)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는 잘못된 정보를 기초로 적은 것이다. 사실과는 정반대다. 태그: 시각 편집

2019년 6월 27일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