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김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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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3일의 삭제 신청 이의[편집]

중간 기여분에 특정판 삭제를 요청할 수는 있으나, 문서 역사를 살펴볼 때 문서를 통째로 삭제할 까닭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서의 최초 모습을 보면, 토막글에 가까워서 아쉬워 그렇지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은, 주관적인 창작이 개입되지 않는 객관적 진술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Dalgial (토론) 2017년 12월 13일 (수) 18:10 (KST)[답변]

확인했습니다.--고려 (토론) 2017년 12월 13일 (수) 18:17 (KST)[답변]

병합 토론[편집]

인명은 고유명사입니다. 어떤 문서든 발전 가능성이 있어야 합니다. 근데 사료의 기술상 발전 가능성이 없어보이며 이는 김헌창의 가계에서 설명하는 것으로도 충분해 보이니 괜찮을 듯 합니다만 문서 자체가 발전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면 그저 막연히 '있다'고만 하지 마시고 구체적으로 제시해주십시오.--고려 (토론) 2017년 12월 13일 (수) 18:50 (KST)[답변]

김범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문서 작성자가 참고한 문서만도 『삼국사기』, 『신라정치사회사연구』(이기백, 일조각, 1977), 『신라골품제사회와 화랑도』(이기동, 한국연구원, 1980), 「무렬왕권의 성립과 활동」(신형식, 『한국사논총』 2, 1977), 『新羅史基礎硏究』(井上秀雄, 東出版, 1974)가 있네요. 이런 참고문헌은 다 읽어 보시고, 가장 최근 자료로 제시된 이기동 저서 이후 30년이 지났는데, 김범문 관련 문헌은 찾아 보시고 발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고 하시는지요? 신라 하대의 호족의 난 중 이들 3대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김범문의 삶이 앞 두 분에 비해 덜 알려졌을 뿐이지요. 독립 문서로 다룰 만한 의미, 앞으로 확장될 여지가 충분해 보입니다.--Dalgial (토론) 2017년 12월 13일 (수) 19:27 (KST)[답변]
그럼 Dalgial님께선 말씀하신 출처들을 모두 읽어보시고 확장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하신 겁니까? 고려님은 '사료의 기술상'이란 근거에 입각하여 발전 가능성이 없어보인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담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하기 위해선 확장될 만한 내용을 실제로 제시해서 반박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저 관련 내용이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의 '목록'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요. 이러한 행위는 오히려 백:확인 가능을 지키지 않는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가짜 출처와도 연결되는 사항입니다. 이미 애초에 고려님께선 "발전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면 그저 막연히 '있다'고만 하지 마시고 구체적으로 제시해"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이러한 구체적 근거의 요구는 백:확인 가능이나 백:출처 필요, 백:토론지침에도 명시된 토론의 바른 방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먼저 관련 출처들을 뒤져보았습니다만... 발전 가능성은 희박한 것 같습니다. 〈무열왕권의 성립과 활동〉 논문에서 김범문은 김주원가의 가계도에서만 언급될 뿐이며 나머지 단행본들에서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그닥 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의 30년간의 (백: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 한한) 연구물들도 나름 확인해보았습니다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김범문은 김헌창의 난에서 일종의 부록처럼 다뤄질 뿐이었습니다. 물론 신라 하대에 있어 김주원 가문은 원성왕계vs.무열왕계, 사병의 존재, 진골귀족과 호족, 시중과 상대등의 파워, 지방제도 등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김범문이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덜 알려져서 그렇다기보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十七年, 春正月, 憲昌子梵文與髙逹山賊夀神等百餘人, 同謀叛, 欲立都於平壤, 攻北漢山州, 都督聦明率兵, 捕殺之'로 그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통... 그냥 김헌창 얘기할 때 곁다리로 나오는 경우가 대다수예요. 제가 미처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으니 Dalgial님께서도 관련 문헌들을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김범문의 경우는 김헌창에 병합하는 게 합당해보입니다만 그렇다고 모든 문서가 '사료의 기술상 발전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병합 처리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온사문은 '冬十一月, 唐右領軍中郎將薛仁貴等, 與我將温沙門戰於横山, 破之'란 기록이 전부입니다만 '온'씨라는 데에 주목하여 많은 가상매체에서 주목한 바 있습니다. 어디어디 등장했었다는 걸 가계에서 설명하기도 좀 그렇기도 하고요. Dalgial님의 말씀처럼 병합이나 삭제를 하기 전에 관련 출처는 정녕 더 없는지 이것저것 살펴보는 자세는 필히 권장해야할 자세입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7년 12월 23일 (토) 05:58 (KST)[답변]

발전가능성과 현상태 모두 고려하는 게 문서존치시 고려할 내용입니다. 판단하기 참 어렵습니다만 저는 존치 후 발전을 기대하는 편에 한표 던집니다.--Ta183ta (토론) 2017년 12월 15일 (금) 11:07 (KST)[답변]

관련 출처들을 나름 확인해본 바 발전 가능성이 그닥 없는 것 같아요......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7년 12월 23일 (토) 05:58 (KST)[답변]
아니 사료의 기술상 발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는 말은 툭 한 마디만 던져도 지지받는 말이 되고, 위키백과가 신뢰하는, 다른 백과사전에 제시된 출처 목록을 제시한 것은 “확장될 만한 내용을 실제로 제시”해야 하는 책무가 있는 말이 되는 건가요? 허허. 관련 논문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김범문 문서는 충분히 발전할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하지요.--Dalgial (토론) 2017년 12월 24일 (일) 13:18 (KST)[답변]
'직접 확인한 자'와 '확인도 하지 않은 자'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적어도 24일 전까지 고려님은 직접 확인을 했었던 반면 Dalgial님은 그러시지 않았습니다. 이제라도 직접 확인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남깁니다.
이제 김범문 문서를 살펴보겠습니다. 출처를 이것저것 다셨습니다만 결국 상당 부분은 삼국사기 내용과 중복입니다. 또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김주원이나 김헌창으로부터 독립된 내용이 추가된 것도 아닙니다. 이것들은 모두 김헌창에서 병합해서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해야할 것들이예요. 직접 논문을 확인해보셔서 아시겠습니다만 '김범문' 그 자체에 주목한 게 없습니다. 항상 '김헌창'을 얘기하고난 이후에 김범문은 팻흐하거나 작게 끼워두는 형식이죠. 독자들 입장에서도 김범문을 알기 위해선 결국 김헌창을 봐야합니다. Dalgial님조차 이 문서에서 김헌창 얘기를 많이 삽입해두셨죠... 김범문은 김험창의 부록같은 존재예요... 편집 열의에는 정말 감사드립니다만 결국 김범문 문서에 써진 내용들은 김헌창 문서와 중복입니다. 김범문 항목을 따로 분리할 이익이 크게 없어요. 그보다는 합쳐서 한눈에 보게 하는 게 더 낫습니다. 다만 현재 바로 두 문서를 합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정작 김헌창 문서가 초라하거든요... 2달 내로 김헌창·김범문 부자의 난에 대해 한큐에 알 수 있게끔 잘 병합하고 정리해두겠습니다. 왜 2달이나 걸리냐고 화를 내실지 모르겠는데 읽어야할 연구물도 많고, 제가 시간도 많은 게 아니라서요ㅠㅠㅠㅠㅠ 대신 '이래서 병합하자고 했구나' 싶을 정도로 잘 정리해두겠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7년 12월 26일 (화) 16:55 (KST)[답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으나, 최대한 침착하게 대꾸합니다. 24일 전에 확인하지 않았다니요? 사료라고 하는 그 삼국사기에 나온 김범문에 대한 기사를 저도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지 않고, 어떻게 이 문서를 없애자는 쪽에 반대를 했겠어요? 삼국사기 기사와 중복된다고 주장하시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김범문 문서를 근거로 제시한 게 전데요. 굉장히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역사를 말할 때 사람들은 그 시절 역사서의 문장만을 되뇌어야 하는 건가요? 이전 역사서에 있는 말만을 우리는 얘기할 수 있는 거에요? 삼국사기에 나온 내용이 아니면 김범문에 대해서는 말할 것이 없어요? 역사는 해석입니다. 위키백과의 서술은 우리 익명의 비전문가가 하므로, 전문가의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제시해야만 하는 것을 잘 아시죠? 삼국사기에 한 줄이 나오건, 이름만 나오건, 그것에 대해 신뢰할 만한 역사가가 언급했다면, 우리 위키백과 참여자는 그 언급을 필요한 곳에 적절히 가져와 반영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 않고 참여자만의 소리를 내뱉으면 독자연구가 되어 버리죠. 제가 김범문 문서에 기여한 내용과 그 출처가 위키백과가 요구하는 문서와 출처의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모르겠으나, 김범문의 얘기가 김헌창에 딸려 있건, 김주원에 딸려 있건, 신라 하대 귀족 사회의 반동에 딸려 있건, 그 얘기의 출처가 분명하고 해당 내용을 가리킬 때는 김범문 문서에 당연히 반영할 수 있습니다. 제 기여 중 학자 황선영의 논문에서 반영한 내용을 보세요. “거기서 3년을 지내면서 신라 정부에 대한 옛 고구려 지역 주민의 불만을 확인하고 이를 이용해 반란에 나섰을 가능성이 크다.” 이 전문가의 해석이 삼국사기 기사와 중복인가요? 삼국사기에 나온 기사뿐만 아니라 이 해석도 역사 서술입니다. 김헌창 문서를 살 찌우는 것은 응원합니다. 김범문 문서를 ‘분리할 이익이 크게 없’다는 자의적인 주장은 멈추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이미 살 찌우고 있고, 병합할 이유가 없게 잘 키우겠습니다.--Dalgial (토론) 2017년 12월 27일 (수) 03:28 (KST)[답변]
??? '역사를 말할 때 사람들은 그 시절 역사서의 문장만을 되뇌어야 하는 건가요? 이전 역사서에 있는 말만을 우리는 얘기할 수 있는 거에요? 삼국사기에 나온 내용이 아니면 김범문에 대해서는 말할 것이 없어요?'라는 질문은 이 토론과 관련한 굉장히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이 아니십니다. '제가 김범문 문서에 기여한 내용과 그 출처가 위키백과가 요구하는 문서와 출처의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모르겠으나, 김범문의 얘기가 김헌창에 딸려 있건, 김주원에 딸려 있건, 신라 하대 귀족 사회의 반동에 딸려 있건, 그 얘기의 출처가 분명하고 해당 내용을 가리킬 때는 김범문 문서에 당연히 반영할 수 있습니다.'란 말씀엔 오류가 있으십니다. 백:등재를 확인하십시오. 단순히 신뢰할 만한 역사가가 언급했다는 이유만으로는 그 소재를 등재하실 수가 없으십니다. 말씀하신 황선영 선생님의 논문도 그 제목이 신라 하대 김헌창 난의 성격인데요... 그 내용도 김헌창에 주목한 것이지, 김범문에 주목한 게 아닌데요... '분리할 이익이 크게 없다'란 문장은 제 주장이 맞기는 한데, 그 주장의 근거는 제 자의적인 주장이 아니라;;; '김범문 그 자체에 주목한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없다'입니다. 그럼 귀하께서는 토론과 관련없는 질문을 남기거나 말씀을 장황하게 해서 토론의 주제를 흐리실 게 아니라 그냥 김범문 그 자체에 주목한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제시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럼 이 토론은 끝납니다. 토론은 서로 말싸움을 하는 게 아니라 근거를 대결하는 것입니다. 김범문에 대해선 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조차 1문단은 김주원, 2문단은 김헌창, 3문단에야 김범문이면서도 그 내용이 삼국사기의 한 줄을 복붙한 것에 그칠 정도로 그 자체에 대한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뿐입니다. 각종 자료에서는 김범문이 김범문 그 자체보다는 '김헌창의 난 내지 김주원 일가'란 맥락에서만 언급될 뿐입니다. 실제로도 님께서 김범문 문서에 추가하신 내용들은 전부 김헌창 문서에서 병합해 설명 가능한 것들이며, 원래 해당 출처들에서도 김범문을 메인으로, 김헌창을 부수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7년 12월 29일 (금) 16:44 (KST)[답변]
백:등재를 너무 가혹하게 적용하시네요. ‘김범문 그 자체에 주목한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제시하라는 것이 김범문만을 단독으로 쓴 논문이나 자료를 요구하시는 것 맞죠? 찾아 보니 김범문이 제목에 나오는 논문은 확실히 없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에 실린 역사 관련 문서 중 단독 2차 자료를 갖고 있는 문서가 얼마나 될까요? 제가 보기에 없는 문서가 훨씬 많을 것 같은데요. 잡다한 연호 들의 단독 문서라든지, 궁예 부하로만 역사에 존재하는 은부종간 등등, 일정 부분 역사 속에서 의의를 갖고 있는 문서들이 아주 많이 존속하고 있고,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잘 알고 계시지 않나요?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되는 말단의 인물이나 사건이라고 해서 단독 문서로 등재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김범문도 무열왕계 호족의 반란 또는 김헌창의 난 이야기의 한 말단이기는 합니다만, 충분히 단독 문서를 꾸릴 만큼 언급이 많이 됩니다. 앞서 언급하신 온사문보다는 김범문이 훨씬 더 존재 의의가 있지 않나요? 김헌창 문서의 발전을 기대하겠습니다.--Dalgial (토론) 2017년 12월 31일 (일) 14:09 (KST)[답변]
'백:등재#문서 등재 기준에 대한 요건은 영구적입니다'를 참고 바랍니다. 각종 연호은부, 종간, 온사문 등은 병합 목적지가 분명치 않습니다. 또 은부나 종간이 백:등재를 만족하는지는 판단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스스로 말씀하셨다시피 김범문은 백:신뢰할 수 있는 출처들에서 김범문 그 자체가 아니라 '김헌창의 난'이란 맥락에서만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헌창에 병합하는 것이라고 (실제 규정만 언급하지 않았다뿐이지) 맨처음부터 말씀드렸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8년 1월 2일 (화) 08:41 (KST)[답변]
연호는 그렇다 치더라도, 은부, 종간, 온사문 등은 ‘병합 목적지’를 누군가 설정하지 않았을 뿐, 제시하신 백:등재에 따르면, 김범문과 비교해 훨씬 발전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직전에 제시하신 '백:등재#문서 등재 기준에 대한 요건은 영구적입니다' 중 셋째 단락은 병합의 충분한 근거가 되어 보입니다. 다만, “그 사람에 대한 전기 문서를 만드는 것을 대체로 피해야 합니다.”는 문구에서 ‘대체로’를 주목해 보면, ‘반드시’가 아니니 토론의 여지를 열어 둔 것이라 보입니다. 또, 그 지침의 첫 단락에는 “일단 한 번 문서 등재 기준을 충족하면, 그 당시에만 유효한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더라도 영구적으로 유지됩니다.”라는 말도 나오네요. 이 문서가 위키백과에 8년 이상 등재되어 있었으니, 요건 충족으로 보아도 되지 않을까요? 김범문 문서가 존속해 왔고, 발전하고 있으며, 발전할 텐데, 백:등재를 유독 이 문서에만 가혹하게 적용해야 할까요? 귀하께서도 잘 아시는 위키백과:얽을 떠올려 주십시오.--Dalgial (토론) 2018년 1월 8일 (월) 14:43 (KST)[답변]
백:얽은 규칙을 무시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을 때 무시할 수 있다는 규정입니다. 어떤 규정을 무시하시려면 그에 합당한, 특수한 이유를 제시하셔야만 합니다. 이 건의 경우엔 토론이 진행되면 될수록 김범문은 김헌창에 종속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뿐입니다. 귀하께서 발전시켰다는 내용들조차 스스로 인정하셨다시피 모두 김헌창에 종속되는 내용들입니다. 위키백과에 8년 이상 등재되어 있었다는 것은 요건 충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등재 요건이 어느 경우에 만족되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언급된 백:등재를 참고하십시오. 이는 그 규정을 가혹하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외부의 백:신뢰할 수 있는 출처들을 따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은부종간은 어디 병합하여 서술할 문서가 마땅치 않습니다. (※ 내용을 합치지 않고 넘겨주기만 하는 것은 백:병합이 아닙니다) 적어도 제 머리로는 언뜻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에 관한 병합 토론을 하시고자 한다면 해당란에서 해주시기 바랍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8년 1월 10일 (수) 07:40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