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김두한/보존문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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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김두한 부자설.

사용자토론:Nichetas에서 옮겨옴.

이건 현재 이견이 있지 않나요? -- ChongDae 2005년 12월 10일 (토) 20:04 (KST)[답변]

그렇다면, "토론"으로 옮기는 게 좋겠군요. 이견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Nichetas 2005년 12월 10일 (토) 20:06 (KST)[답변]

김좌진 장군이 김두한의 아버지인가요? Nichetas 2005년 12월 10일 (토) 20:08 (KST)[답변]

현재로서 근거는 김두한 측의 주장일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것도 증거인가요?) 만주에 남은 김좌진 장군의 자손들이 유전자 검사를 요청했으나 김두한의 자손측이 거부했다고 들었습니다. 김두한 페이지에 김좌진의 아들이라고 적는 거야 아직 아닌 것이 밝혀진 것도 아니니 적기 나름이지만, 김좌진 페이지에 김두한을 아들이라고 적는 건 조금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합니다. 일단 김두한이 국회의원이 된 것도 "장군의 아들"이었기 때문이지 종로의 깡패였기 때문은 아니니깐요. -- ChongDae 2005년 12월 10일 (토) 23:44 (KST)[답변]
그래서 김좌진 페이지에서도 삭제했습니다. Nichetas 2005년 12월 10일 (토) 23:52 (KST)[답변]

그런데 아직 김두한 (드라마) 글은 안 쓰셨습니까? 그리고 그 글은 가 써야 하는 것입니까? 121.161.147.173 2008년 2월 27일 (수) 20:20 (KST)[답변]

김좌진과의 부자관계

백야 김좌진의 부인은 오숙근,박계숙,라씨 성의 부인 총 3명입니다. 첫째부인 오숙근과에서 자녀는 2명 계셨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둘째부인 박계숙과에서 자녀는 1명이었고 김두한의 어머니입니다.(어느 사이트에서는 김계월이라고 주장하는 글도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라는 점은 주목 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라씨성의 부인은 중국에서 만난분이고 자녀는 1명이고 현재 손녀분이 생존하고있습니다. 그리고 김두한은 1944년 오숙근,김좌진어머니 주선으로 효령대군후손 이재희과 결혼했고 이재희는 안동김씨 제사를 모두 지냈고 시부모님(김좌진의어머니,오숙근)을 평생모셨습니다. (김두한은 일찍 어머니를 여의셨고 큰어머니인 오숙근을 어머니처럼 모셨습니다.) 셋째 라씨성을 가진 분은 중국에서 만났고 자녀 1명 현재는 손녀분 계십니다. 그리고 김두한이 미국의해 사형당할 위기였을때 청산리대첩에서 김좌진과 더불어 활약한 이범석장군은 이들에 무죄를 강력하게 나섰고 백범 김구선생와도 친분은 나눴습니다.(실제 노변야화에서 김두한은 정식적으로 김구선생을 존경 한다고 말할바 있습니다.) 소위 지식층은 김좌진과 김두한의 연관성을 끊을려고 왜곡을했고 김두한을 더깍고 왜곡하기위해 한낯 거지에 불과한 김춘삼을 미화해 99년 mbc왕초드라마도 방송됨바 있습니다. 실제 김춘삼의 일생줄거리를 보면 너무나도 김두한의 일생과 흡사합니다.(요즘에도 김춘삼이 시라소니 이성순을 이겼고 김두한을 동생으로 삼고 친구라고 말하는 글을 종종 볼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점은 김두한과 박정희(일본명:오카모토 미노루)독재정권과 상극입니다. 박정희(일본명: 오카모토 미노루)는 1962년 독립운동가들에게 훈장을 수여했고 김두한은 김좌진대신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청산리 대첩에서 김좌진과 더불어 활약했던 이범석장군은 김두한이 어려움을 처할때 이에 무죄를 강력히 나섰습니다. 백범 김구선생와도 친분을 나눴고 백범 김구선생께서 암살당하셨을때 김두한은 이승만 독재정권에 무고죄로 구속되고 백범 김구선생의 장례식이 끝난후 석방 되었습니다.(이는 노변야화에서도 녹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밑에 올린 기사는 예전 김완섭이 김좌진을 "산적떼 두목"이라고 한 포털사이트(다음 아고라)에 기재한후 김을동이 사자명예훼손으로 김완섭을 고소해 한 언론과 인터뷰 기사입니다.(자세한 기사 본문 내용은 링크통해 보시길 바랍니다.) (기사주소는:http://www.cbs.co.kr/Nocut/Show.asp?IDX=243688)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의 손녀인 탤런트 김을동씨는 김장군을 '산적떼의 두목'이라고 글을 쓴 친일작가 김완섭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은 모든 독립운동가들의 명예훼손을 막기 위한 조처라고 강조했다. 탤런트 김을동씨는 1일,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진행:신율 저녁 7:05-9:00)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모욕을 해도 직계후손이 아니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가 없어서 그동안 김완섭씨가 '친일파를 위한 변명'이란 책을 쓰고, 정신대 할머니를 모욕하고, 명성황후 시해를 모욕하는가 하면, 독도는 일본땅이란 터무니없는 망언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사람을 고소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그동안 사람들이 분한 마음에 김씨를 응징할 방법을 찾지못해 어찌할 지 몰라 했었다"면서, "김장군까지 모독하길래 이번을 기회로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고소를 하게됐다"고 그 배경을 밝혔다. 김을동씨는 또, 김완섭 씨가 검찰 조사와 관련해 '김을동 씨가 김좌진 장군의 진짜 손녀인가, 호적 초본을 제시해야 한다, 아니면 고소권 자체가 없다'고 주장한데 대해 "웃기더라"라고 말하며 "검찰에서 '이 사람을 꼭 처벌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하길레 호적등본을 다 제출했고 검찰에서도 기가 막혀서 웃었다"고 말했다. 친일작가 김완섭씨는 지난 2월, 독도는 일본 땅이라며 일본에게 돌려주라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서 모욕죄로 처벌해 달라며 댓글을 단 네티즌 1054명을 무더기로 검찰과 경찰에 고소했으며, 김좌진 장군을 '산적떼의 두목'이라고 써 논란을 빚었다. —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221.162.216.71(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만주에 남아 있는 김좌진 후손들이 김두한 자손들에게 유전자 검사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는 토론이 저 위에 있는데, 당신의 신성한 눈과 명석한 기억력으로는 보이지 않나요?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08년 2월 28일 (목) 09:44 (KST)[답변]

"맨위에 만주에 후손들이 유전자 검사 요청"이게 올바른 정보라니 그저 웃음밖에 안나오는군요 그럼 그 자료를 보여주십시요. 작년에 네이버 블로그에 어떤분이 김두한을 친일파라고 기재해 이의제기하니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http://www.pcic.go.kr:8088/pcic/index.jsp)에 가서 따지라고 적반하장하길래 가서 답변을 가지고 오니 블로그 기재된거 삭제 된적이 있었는데 그분하고 저기 위에 글올린분하고 다른게 전혀 없는거 같습니다만?

만주에 남아있는 김좌진의 후손이 김두한 자손들에게 유전자 검사? 그말 자체가 루머입니다. 그리고 중국에 김좌진장군의 후손이라면 김좌진의 셋째 부인 라씨 성은 가진 부인과에 자녀1명이고 현재는 손녀 생존하고 계시는 그분 말하시는거 같은데 김두한의 어머니과 첫째부인 오숙근과 김두한은 김좌진의 어머니,김좌진 가족 즉 본적입니다. 오숙근에서 자녀 2분은 일찍 돌아가셨고 자동으로 김두한이 장남입니다.

소위 지식층들이라는 사람들이 대다수가 친일파들인거 아시죠? 백야 김좌진과 의송 김두한은 이들에게 평생을 고난의 삶을 살았는데 자신들 밥줄이 안끊길려면 당연히 온곽 왜곡을 하는거죠. 그리고 저 사람들 말대로 칩시다. 그럼 청산리 전투에서 김좌진과 활약한 이범석장군도 그렇고 백범 김구선생도 그렇고 해공 신익희선생도 그렇고 이들의 공통점은 김두한과 친분을 나눈 분들입니다. (해공 선생경우는 야당 정치인이셨고) 더구나 여기서 중요한점은 김두한은 박정희(일본명:오카모토 미노루)독재정권과 상극 사이입니다. 박정희 독재정권은 1962년 독립운동가들에게 훈장을 수여하면서 김두한은 아버지 김좌진의 대신 훈장을 받았습니다. 이 어느 정신나간 인간이 이런 행위를 하겠습니까? 그리고 저번에 김와섭이 다음 아고라에서 김좌진을 "산적떼 두목"이라고 기재해 김을동은 검찰에 사자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습니다. 여기서 김완섭 저위에 적인 사람들 처럼 김을동이 정말로 김좌진의 후손이 맞냐고 아니면 이 고소권 자체없다고 검찰에서 그런말했답니다. 그래서 검찰에서 김을동에게 호적등본 서류를 제출하라고 했고 김을동은 모든 호적등본 서류를 검찰에 제출했습니다.

맘만 먹으면 소리소문 없이 죽이는 부정부패 정권들이 뭐가 아쉬워서 김두한에게 훈장을 주었고 독립운동가 백범김구선생과 이범석장군,해공 신익희선생 이런분들 왜 김두한과 친분을 나눴을까요?

그리고 저기 위에 분에 글을 신빙성이 있구요? 저 글들 과거 2002~2005년 특히 집중적으로 무슨 세력인지 정체불명으로 집중적으로 글이 올라왔던 내용중 하나입니다.(다른 사이트에서는 무슨 김좌진장군이 아들이면 한 딸이면 옥라고 했다는 글도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사>쓴 한홍구는 고균 김옥균과 백야 김좌진의 관계를 안동김씨 문중 20촌이상이라고 써져있습니다. 하지만 고균 김옥균과 백야 김좌진의 관계는 안동김씨 11촌입니다. 20촌이면 완전 새 빨간 거짓말 입니다. 전혀 논리도 없고 말도 안되는글로 신빙성이있다? 풋....그저 웃음밖에 안나오는군요. —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221.162.216.71(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그럼 계정 사용자가 되셔서 체계적으로 토론을 하시던가 주석 기능으로 객관적 출처를 달면서 추가하시라니까요? 여기는 디씨가 아닙니다. 말싸움 하는 곳이 아니라 가장 중립적인 진실을 찾아 사전에 올리는 곳입니다. --dus|Adrenalin 2008년 2월 28일 (목) 10:05 (KST)[답변]
휴... 좋아요 좋아. 김두한#김좌진 - 김두한 부자설에 어디 열심히 써 보세요. 나중에 쓴거 정리해 놓을 테니까. 얼마나 잘쓰는지 어디 봅시다.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08년 2월 28일 (목) 10:06 (KST)[답변]
그럼 맨위에 글은 객관적인 자료라는 겁니까? 저글은 네이버 지식이나 님께서 말씀하신 디씨에서도 볼수 있는 글입니다.(네이버 지식에서는 2002년글이 현재도 있습니다.) 자료도 안보여주시고 저게 객관적이라...ㅎㅎ 저기 위에 적힌 글보다 백범 김구,이범석장군,해공 신익희 이분들에 친분과 그리고 김두한은 박정희(일본명: 오카모토 미노루)독재정권과 상극사이였고 박정희독재정권은 1962년 독립운동가들에게 훈장을 수여했고, 김두한은 아버지 김좌진 대신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맨위에 저 정보보다 이것들이 더 신빙성이 갑니다만.? —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유영준(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참나... 네이버 지식이 국가에서 공인한 사이트입니까? 네이버 지식은 바른 정보만 있습니까? 2002년 글이 현재에도 있다고 한다고 해서 그럽니까? 정확히 출처를 밝히십시오. --Nt (토론) 2008년 2월 28일 (목) 10:29 (KST)[답변]
제가 언제 네이버 지식은 바른정보라고했죠?(저는 네이버는 역사쪽으로는 잘 안믿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님께서 저기 위에 글이 객관적인 자료라고 말씀하시고 그 자료를 안보여주시네요? 만주의 후손이라면 백야의 셋째 부인 라씨성은가진 분이고 현재는 손녀 1분이 생존해 계십니다. 일단 여기서 저글에 자료를 보여 주십시요. 왜 자료는 못보여주시는건지요?(계속 사전 내용에만 편집하시네요?) 님께서 저글이 맞다는 자료를 보여주십시요. 스스로 객관적인 자료라고 하시고 자료보여달라는 말에(위에 토론처럼 저보고는 자료를 보여달라고 하시더만) 제말에는 무시하시네요? —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유영준(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이제는 연령대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까지 드는군요.

김두한(金斗漢, 1918년 5월 15일 ~ 1972년 11월 21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1947년 4월, 좌익이 주관하는 ‘제3전선’이라는 연극이 공연되고 있던 시공관을 습격하여 3명의 좌익인사를 납치하여 죽이는 사건을 주도하였다.[출처 필요]

스스로 독립운동가 김좌진의 아들이라고 주장했고, 일반적으로 그렇게 알려져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출처 필요].

김두한은 젊은 시절 극우파의 선두에 서 좌익을 혹독히 탄압하는 정치깡패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6.25전쟁이 끝나자 손을 씻고 주먹계에서 깨끗이 손을 뗐다. 그 뒤로 자유당 정권과 박정희 독재에 맞서다가 사망했다. 사카린 사건 당시 국회의사당에 인분을 투척하는 등 독특한 정치인생을 살았다.

제3공화국 시절인 1965년, 한독당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출처 필요]

말인가요? 이 것도 출처 필요가 되있기 합니다만 사용자님도 출처 틀을 달아서 글을 올리면 될거 아닙니까? 그렇다고 해서 토론하면서 글을 올려야지 왜 이럽니까? --Nt (토론) 2008년 2월 28일 (목) 10:41 (KST)[답변]

아무래도 이분 김두한 광팬 같군요. '김두한이 젊었을때 좌익탄압 극우였다'문장에 발끈해서 문서 훼손하는거 같습니다.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08년 2월 28일 (목) 10:42 (KST)[답변]
팬? 이게 드라마 가수 모임입니까? 이제 할 말이 없으니깐 좀 유치히다고 보이시지 않습니까? 문서 훼손이라...ㅎㅎ 점점 시트콤을 만들시는군요? 재밌습니다.
어이쿵 글적었던게 삭제 됐는지 없어졌네요?—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유영준(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남보고 유치하다 뭐라 하기 전에 서명이나 하시죠. 위키문법도 모르면서 '날뛰는' 님이 제 눈엔 더 유치합니다. --dus|Adrenalin 2008년 2월 28일 (목) 11:01 (KST)[답변]
지운게 아니라, 제목없는 문단을 만드었기에 지우고 문장을 정리한것 뿐입니다. 위키문법부터 익히고 얘기합시다. 유영준님은 김두한 유족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시길래 이러는거죠? 아니면, 뭡니까? --크렌베리 2008년 2월 28일 (목) 11:06 (KST)[답변]

하하..점점 의심을 가네요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라고 생각 되지 않습니까?—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유영준(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그러면 님께서 올린 글부터 살펴봅시다. '김좌진-김두한' 이라 쳐보았더니 [1] 넘쳐나는 군요... 님의 네이버 지식처럼 다음 카페에서는 김두한의 자서전에서 그렇게 쓰니까 그게 일반화 되었다는 군요... --Nt (토론) 2008년 2월 28일 (목) 11:05 (KST)[답변]
님처럼 네이버가 아닌 다음 신지식의 일부.. [2] '김두한이 김좌진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은 최근 역사학계의 상식'이다. --Nt (토론) 2008년 2월 28일 (목) 11:07 (KST)[답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주장을 참조하면 될 듯합니다. jtm71 2008년 2월 28일 (목) 11:09 (KST)[답변]

링크에 글들 하나하나 봤습니다. 글을 보았더니 하나의 글이고 글들의 내용들이 수정되고 또 수정이되어 여기저기 커뮤니티에 퍼진 글들이더군요? 님의 말씀을 꼭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세뇌자들이 여기저기 커뮤니티에 어지럽히는 글들을 "일반화"이라고 말하는것과 다른게 없다고 봅니다만? 정말 실례가 안된다면 연령대가 심히 궁금하군요. —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유영준(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참... 그럼 네이버 지식은 커뮤니티가 아닙니까? 그리고 엠파스 백과사전은 또 뭡니까? --Nt (토론) 2008년 2월 28일 (목) 11:15 (KST)[답변]
그렇게 따지면, 믿을 곳은 당연하게도 역사학회같은 곳 뿐이죠. 남의 연령을 물으시는거 자체가 실례입니다. 그리고 서명 좀 다시죠? --크렌베리 2008년 2월 28일 (목) 11:20 (KST)[답변]

살인 살인 하는건 김두한은 아무 소속이 없는 말그대로 "민간인"이라 그런게 아니구요? 만일 내가 님을 한대 쳤습니다. 그럼 님은 가만히 있으십니까? 아니면 신고를하거나 제지를 하실껍니까? 전 신고를 하거나 제지한다에 무게를 두고 싶은데요?

그리고 네이버 지식은 역사쪽으로 갈면 갈수록 왜곡된 역사가 많습니다.아주 대표적으로는 신라가 통일했다는 말입니다.(이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내용입니다.) —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유영준(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그럼 네이버 지식에 있는 글을 왜 믿습니까? 그걸 왜 출처라고 생각하죠? --Nt (토론) 2008년 2월 28일 (목) 11:22 (KST)[답변]
네이버 지식을 안믿으시면서 그걸 출처라고 믿는건 뭐라고 이해해드릴까요? 말을 둘러서 하시고 지금 횡설수설하시는군요. 서명다세요. 그리고 자꾸 h1 문단 만들지 마시고 --크렌베리 2008년 2월 28일 (목) 11:27 (KST)[답변]

편집 분쟁

문서가 되돌려지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 신뢰할 만한 근거가 있다면 제시하면 기술이 가능할 일이고, 근거가 없는 내용이라면 삭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jtm71 2008년 2월 28일 (목) 11:23 (KST)[답변]

민감한 거라 토론을 거치고 글을 올려야 하고 구지 원래 내용을 삭제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요? --Nt (토론) 2008년 2월 28일 (목) 11:24 (KST)[답변]
편집은 과감하게. 원래 내용이 출처가 빈약하고 내가 올릴 내용이 출처가 확실하다면 ref 빵빵하게 채워서 올리면 되는 겁니다. 문제는 그 ref를 안하고 막가파식으로 나갔다는 거지요. (그것도 IP사용자가 그러니 오해 안 받는게 이상하죠.) 결국 BongGon님이 잠그셨네요. --dus|Adrenalin 2008년 2월 28일 (목) 11:25 (KST)[답변]
준보호 됐군요. --Nt (토론) 2008년 2월 28일 (목) 11:25 (KST)[답변]
'보호' 같습니다. 당분간 관리자만 손 댈 수 있습니다. --dus|Adrenalin 2008년 2월 28일 (목) 11:25 (KST)[답변]
네, 알겠습니다. --Nt (토론) 2008년 2월 28일 (목) 11:26 (KST)[답변]

문서 잠금

편집분쟁이 심각하다고 판단되어 문서 잠금을 했으며, 해당 내용은 '2007년 9월 15일 (토) 22:26 버전'으로 되돌려놓았습니다. 토론이 진정 국면에 들어갔다고 판단되었을 때에 문서 잠금을 해제하도록 하겠습니다. :) BongGon 2008년 2월 28일 (목) 11:25 (KST)[답변]

네. --Nt (토론) 2008년 2월 28일 (목) 11:26 (KST)[답변]
감사합니다 ^^ ({{보호}}좀 넣어주실래요? 분쟁 당사자중 하나가 왕초보라 이해 못하고 또 폭주하실 것 같아서.)--dus|Adrenalin 2008년 2월 28일 (목) 11:26 (KST)[답변]
당초 완전 잠금을 하려 했으나 일반 문서 중 그런 사례가 있었는지가 명확하지 않아 일단 준보호 처리만 했습니다. BongGon 2008년 2월 28일 (목) 11:36 (KST)[답변]

저게 중립성이라구요? 지금 그거 말이라고 하시는건지요? 위에도 적어시피 김두한과 박정희(일본명: 오카모토 미노루)의 관계는 상극입니다. 박정희는1962년 독립운동가들에게 훈장을 수여했고 김두한은 아버지 김좌진의 대신 훈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백범 김구과 이범석 장군 해공 신익희 이분들은 김두한과 친분을 나눈 분들입니다. 위에 저분들의 주장대로 치면 저분들과 친분을 왜 나눠겠습니까? 과거 몇년전 하나의글로 세월이 흐르면서 내용의 수정이 되고 또 수정이되어 여기저기 등록한게 객관적인 자료입니까? 저건 김완섭이도 안써먹는 떡밥 같습니다만?

방금 말씀하신건 박정희, 김완섭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간주하겠습니다.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08년 2월 28일 (목) 11:35 (KST)[답변]
저는 이승만을 친일파라고 말 할바 없습니다.(친미파겠죠) 해방후 이승만을 자기 세력이 없었고 친일 인사들은 언제 밥줄끊기나 조마조마했었습니다.(이건 인정하시죠?) 사전 본문 내용도 임시로 중립성으로 기재 하십시요. —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유영준(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김좌진과의 부자관계(계속)

"참... 그럼 네이버 지식은 커뮤니티가 아닙니까? 그리고 엠파스 백과사전은 또 뭡니까?" 이말은 무슨 말씀이신지요? 저는 네이버를 출저라고 말 할바가 없습니다만, 다음 엠파스 네이버 등 참 좋은 포털사이트죠 하지만 모든것에는 잘 못된 정보들도 많습니다. (특히 어떤 사람들은 광해군,의자왕을 폭군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유영준(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알겠으니 토론개시자인 유영준님은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지 마십시오. --크렌베리 2008년 2월 28일 (목) 11:30 (KST)[답변]
'엠파스 백과사전'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자료를 엠파스 측에서 제공하는 것 뿐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한국문화 연구를 위한 국가기관이며, 원본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와 동일합니다. jtm71 2008년 2월 28일 (목) 11:30 (KST)[답변]

문서 내용에 대한 논의

(토론란은 원래 문서 내용에 대한 논의를 위한 것이지만) 문서 내용은 그대로 두고 현재 내용의 문제점을 논의했으면 합니다. jtm71 2008년 2월 28일 (목) 11:28 (KST)[답변]

... 네... --Nt (토론) 2008년 2월 28일 (목) 11:30 (KST)[답변]
전 근현대사는 아직 제대로 공부를 안 해서 (이제 겨우 학원에서 을사늑약 체결됐습니다) 이 이상은 안 끼어들렵니다. 고등학교 한국근현대사 이상으로 이쪽 주제를 잘 아시는 분들끼리 해결하셨으면 합니다. --dus|Adrenalin 2008년 2월 28일 (목) 11:32 (KST) +[답변]
그렇다면 사전 내용도 역시 임시로 중립성으로 기재 되어야 되는게 아닙니까? 이게 중립성입니까? —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유영준(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 = =
중립성입니다. '김두한은 김좌진의 아들' '김두한은 김좌진의 아들 아님' 둘 중 어느것도 진실이라고 적은 바 없습니다.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08년 2월 28일 (목) 11:30 (KST)[답변]
그러길래 왜 기존 사용자들 개무시하고 날뛰다 문서 잠기게 만드냐구요. 준보호(신규사용자 접근금지)라면 모를까 보호는 1년에 두자릿수 나오기도 흔치 않은 사태거든요? --dus|Adrenalin 2008년 2월 28일 (목) 11:32 (KST) +[답변]
이젠 좀 내용에 대해 생각합시다. --Nt (토론) 2008년 2월 28일 (목) 11:31 (KST)[답변]
제가 전혀 '딴' 얘기를 하는 것은 모르겠습니다만 '김두한은 젊은 시절 극우파의 선두에 서 좌익을 혹독히 탄압하는 정치깡패와 다를 바가 없었다.'는 약간 어투를 수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혹독히' 와 '다를바 가' 를 고쳤음 합니다. --Nt (토론) 2008년 2월 28일 (목) 11:34 (KST)[답변]

김좌진과의 부자관계(계속)

'김두한은 젊은 시절 극우파의 선두에 서 좌익을 혹독히 탄압하는 정치깡패와 다를 바가 없었다."

유중님? 해방후에는 김두한은 30대입니다만?(30대도 젋겠죠.) 당시 해방아닌 해방후는 좌-우 대립이 아주심했고 북에는 남한에도 사회주의로 만들려는 목저이었고 남한은 이승만을 중심으로 대다수가 친일파들 이었습니다. 북이 남한에도 사회주의로 만들려는 목적으로 공격해올때 김두한은 그걸 방어하는 입장에서 싸운거지 무슨 테러입니까? 그리 따지면 정치에는 관심없었고 오직 나라를 구한 성웅 이순신장군도 모독한거와 다른게 없다고 봅니다만? 그리고 한반도의 비극이었던 6.25전쟁때 참전하다 전사하신 수많은분들(친일파들 제외) 역시 모독하는거과 다른게 없다고 봅니다만?

알겠습니다. 진정해주십시오. --Nt (토론) 2008년 2월 28일 (목) 11:38 (KST)[답변]
그리고 이 곳은 대한민국 위키백과가 아닙니다. 한쪽의 의견만 적는게 아닙니다. 이 위키백과에서는 이순신을 성웅으로 적을수도 있고 적장으로 볼수도 있습니다. --Nt (토론) 2008년 2월 28일 (목) 11:39 (KST)[답변]
이승만은 친일파다? 박정희, 김완섭에 이은 이승만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간주하겠습니다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08년 2월 28일 (목) 11:40 (KST)[답변]
알겠으니 좀 진정해주십시오. 이제 부터 중립적 시각에 맞게 기술합시다. --Nt (토론) 2008년 2월 28일 (목) 11:35 (KST)[답변]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하시려면 문헌이나 논문 같은 적절한 근거를 제시해 주세요. jtm71 2008년 2월 28일 (목) 11:37 (KST)[답변]


김좌진과의 부자관계(계속2)

전 위에 저글들에 반론 3가지 했습니다 하지만 위에 글을 주장하시는 분들은 아직 한번도 자료,문허 말 할바 없습니다.—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유영준(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진정좀.. --Nt (토론) 2008년 2월 28일 (목) 11:48 (KST)[답변]
사전의 내용은 중립성으로 기재를 해주십시요. 이때까지 위에 글 자료를 한번도 안보여주셨습니다.—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유영준(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알겠으니 진정하십시오, 지금 준보호가 되어있어서 편집 못하시는 것은 알꺼 아닙니까. 이제 중립성으로 기재 해야죠. --Nt (토론) 2008년 2월 28일 (목) 11:46 (KST)[답변]
영준님, 지금 김두한 문서 준보호 중입니다. 편집을 관리자만 할수 있습니다. 그러니 토론으로 중립성 맞게 기술하자니까요. --Nt (토론) 2008년 2월 28일 (목) 11:47 (KST)[답변]
글이 밀러나가서 착오가 좀있는거 같네요. 예 알겠습니다.—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유영준(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네... --Nt (토론) 2008년 2월 28일 (목) 11:50 (KST)[답변]

장준하와 김좌진?

장준하는 의문사이긴하지만 김좌진은 공산주의자 박상실에게 암살된게 정설입니다.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08년 2월 28일 (목) 11:44 (KST)삭제된 내용을 복원하였습니다.[답변]

토론 예절

이유 없이 줄 긋지 마시고, 말 끝에는 '서명'(~~~~)을 달아주세요. 그리고, 남의 글을 지우면 안됩니다. 위키백과에 글을 남기고 싶으시다면 위키백과의 규칙을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참조: 위키백과:길라잡이 (토론 페이지)} jtm71 2008년 2월 28일 (목) 11:49 (KST)[답변]
죄송 또 죄송합니다. 편집을 막아야 했기에.. --Nt (토론) 2008년 2월 28일 (목) 12:02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