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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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만

칼만(헝가리어: Kálmán, 1070년경 ~ 1116년 2월 3일)은 헝가리의 국왕(재위: 1095년 ~ 1116년)이자 크로아티아의 국왕(재위: 1097년 ~ 1116년)이다. 아르파드 왕조 출신이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책벌레왕 칼만(헝가리어: Könyves Kálmán 쾨니베시 칼만[*])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생애[편집]

게저 1세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왕세자 시절에는 로마 가톨릭교회 성직자의 전통을 따르는 교육을 받았다. 1095년에는 라슬로 1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헝가리의 국왕에 즉위한 이후에는 헝가리를 경유하는 십자군 문제에 직면했다. 1096년 5월 고티에 생자부아의 십자군 부대는 평화적으로 헝가리를 경유했지만 제문 요새를 점령하고 약탈을 자행했다. 이에 칼만은 무장한 군인들을 파견하여 생자부아의 십자군 부대를 정벌했다. 뒤를 이어 헝가리를 경유한 은자 피에르의 십자군 부대는 제문 인근까지 진격했다가 퇴각했다.

1096년 9월 십자군을 지휘하고 있던 고드프루아 드 부용쇼프론에서 칼만을 만났고 십자군의 헝가리 경유 문제에 관한 협상을 진행했다. 고드프루아 드 부용은 칼만과의 협상을 통해 자신이 지휘하는 십자군 부대가 평화적으로 도나우 강을 경유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1097년에는 교황과의 동맹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시칠리아의 루제로 1세(Ruggero I) 백작의 딸인 펠리치아(Felicia)와 결혼했다. 또한 크로아티아의 국왕을 자처하던 페타르 스바치치(Petar Svačić)와의 그보즈드 산(Gvozd)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크로아티아를 정복했다. 1102년에는 비오그라드나모루에서 크로아티아의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동군연합(크로아티아-헝가리 동군연합) 관계를 수립했다.

1105년에는 달마티아를 침공했다. 1105년 칼만이 이슈트반을 왕세자로 임명하자 알모시(Álmos) 공작이 반란을 일으켰다. 알모시 공작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하인리히 5세가 지휘하던 군대와 함께 헝가리를 침공했지만 패전하고 만다.

1107년에는 칼만이 폴란드볼레스와프 3세 국왕과 함께 보헤미아스바토플루크(Svatopluk) 공작을 지원하면서 보헤미아의 브르제티슬라프 2세 공작에 대항해 나갔다. 칼만의 지원을 받은 폴란드의 볼레스와프 3세는 즈비그니에프와의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폴란드의 국왕으로 복위하게 된다.

1108년에는 알모시 공작이 거룩한 땅 순례에 나섰다. 칼만은 거룩한 땅을 자신이 소유한 땅으로 만들었다. 한편 알모시 공작은 파사우를 떠나 신성 로마 제국의 하인리히 5세 황제와 회담을 가졌다. 알모시 공작의 요청을 받은 하인리히 5세 황제는 포조니(Pozsony, 현재의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를 포위했다. 1111년 칼만은 니트라에 주교령을 설립했다.

1112년경에는 키예프 대공국블라디미르 모노마흐 대공의 딸인 옙피미야와 결혼했지만 1113년경에 옙피미야의 간통 행위가 드러나면서 옙피미야와 이혼하고 만다. 1114년경에는 알모시 공작과 벨러(Béla, 알모시 공작의 아들인 벨러 2세)를 장님으로 만들었다.

전임
라슬로 1세
헝가리의 국왕
1095년 ~ 1116년
후임
이슈트반 2세
전임
페타르 스바치치
크로아티아의 국왕
1097년 ~ 1116년
후임
이슈트반 2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