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유 코킬라트
카미유 코킬라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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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Camille-Aimé Coquilhat 카미유 에메 코킬라트 |
출생 | 1853년 10월 15일[1] 리에주, 벨기에 |
사망 | 1891년 3월 24일[1] 보마, 콩고 자유국 | (37세)
성별 | 남성 |
국적 | 벨기에 |
직업 | 군인, 문관, 작가 |
카미유 에메 코킬라트(1853~1891)는 벨기에 군인이자 탐험가이자 식민지 공무원으로, 1890년부터 1891년 사망할 때까지 콩고 자유국 부총독으로 근무했다. 그는 특히 1880년대 중반 콩고강 상류를 탐험하는 동안 헨리 모턴 스탠리의 동료였다.
경력[편집]
카미유 에메 코킬라트(Camille-Aimé Coquilhat)는 1853년 10월 15일 벨기에 리에주의 프랑스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1870~71) 동안 프랑스 공화국 북부군에 자원하여 복무했다. [1] [2] 그는 분쟁 후 벨기에로 돌아와 벨기에 군대의 하급 장교가 되었다. 1882년에 그는 헨리 모턴 스탠리[2]가 이끄는 국제아프리카협회(IAA)의 상부 콩고 강 원정대에 자원하여 참여했으며 1884년까지 스탠리빌에서 근무했다. 그 후 그는 콩고 자유국 (현재의 콩고 민주 공화국)의 에카퇴르 지역에 방갈라족 거주지에 식민지 기지를 세우는 일에 참여했다. [2] 1885년 건강상의 이유로 벨기에로 돌아온 그는 1886년 콩고로 돌아와 스탠리 폭포에서 동부 콩고 아랍인(실제로는 잔지바르인)과의 싸움에 잠시 참여했다. 같은 해 후반에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다시 벨기에로 돌아가 1890년까지 머물렀고 식민 행정부의 관리가 되었다. 1889년, 카미유 얀센(Camille Janssen)의 후임으로 최고 행정직 인 콩고 자유국 총독으로 코킬라트가 제안되어 다시 콩고로 파견되었다. 코킬라트는 콩고로 돌아온 직후 1891년 3월 24일 보마에서 말라리아로 사망했다. [2] 그의 시신은 벨기에로 송환되어 앤트워프에 묻혔다. [1]
벨기에에서 코킬라트는 콩고 자유국의 "선구자" 중 하나로 기념되었으며 에카퇴르빌(Équateurville)로 알려졌던 도시는 그를 기리기 위해 코킬라트빌Coquilhatville(네덜란드어로 코퀼하트스타트Coquilhatstad)로 이름이 변경되었다.[2] 코킬라트빌은 이후 음반다카로 이름이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