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최향 (1168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최향
본명 최향(崔珦)
다른 이름 미상
별명 미상
시호 대장(戴莊)
출생일 1168년
출생지 미상
사망일 1230년
사망지 미상
가문 우봉(牛峰)
부친 최충헌(崔忠獻)
모친 송씨
배우자 미상
자녀 우봉 최씨(牛峰 崔氏)
종교 불교(佛敎)

최향(崔珦, 1168년~1230년)은 고려시대 후기의 문신이자 무신 집권기의 권신 최충헌(崔忠獻)의 정실 둘째 아들이다. 본관은 우봉(牛峰)이고 시호는 대장(戴莊)이다. 최우(崔瑀)의 친동생이다. 수춘후(壽春侯) 왕항(王沆)의 딸과 결혼하여 보성백(寶城伯)의 작위를 받았다.

최우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패하고, 감옥에 갇혔다가 죽었다.

생애

[편집]

초기 생애

[편집]

아버지는 최충헌이고 어머니는 송씨로 상장군 송청의 딸이다. 친형은 최우(崔瑀)이고 이복 동생 최성, 최구가 있다. 누이로는 일찍 죽은 1명이 기록에 전한다. 고려사 제42권 열전, 반역열전에 의하면 최향은 용맹했지만 의심이 많고 사나운(勇而猜暴) 성격이라 한다.

왕족인 수춘후(壽春侯) 왕항(王沆)의 딸과 결혼, 보성백(寶城伯)에 봉해지고 고속승진하여 종2품 참지정사(參知政事)가 되었다.

반란 미수와 유배

[편집]

1219년 아버지 최충헌이 죽자 최충헌의 측근이던 경상북도 흥해현 출신 대장군 최준문(崔俊文)과, 상장군 지윤심(池允深), 장군 유송절(柳松節), 낭장 김덕명(金德明 등이 최충헌의 맏아들 최우(崔瑀)를 제거하고 그를 후계자로 세우려 하다가 좌절되어, 최우에 의해 최준문, 지윤심, 유송절, 그의 장인 왕항(王沆) 등과 함께 섬으로 유배되었다. 고려사에는 그의 첫 유배지인 섬이 어디인지 나타나지 않는다.

이때 최향의 장인 수춘후 왕항, 처남 사공(司空) 왕종(王琮), 승선(承宣) 신선주(申宣冑) 및 최충헌의 가신 최사겸(崔思謙), 비(婢) 동화(桐花), 성춘(成春), 비 사자(獅子) 등을 여러 섬으로 유배 보냈다. 조금 뒤에 최우는 왕항과 왕종은 소환하였으며, 최향은 충청남도 홍주(洪州, 현 홍성군)로 옮겼다.

유배 이후

[편집]

홍주로 이배된 뒤에 항상 불만을 품고 큰 집을 짓고 불의한 행동을 많이 하고 백성들을 괴롭혀 그 고을 일대가 고초를 겪었다. 최우와 주(州)의 관리가 만류하고 금지하였지만 최향은 듣지 않았다.

1230년 충청남도 홍주(洪州)로 유배지가 옮겨졌다가 친형 최우에게 다시 반기를 들고, 사람을 모아 홍주 부사(副使) 유문거(柳文柜)와 판관 전양재(全兩才) 등을 죽이고 인근의 주군(州郡)에 격문(檄文)을 돌려 거병하였으나, 붙잡혀 옥사하였다.

반란과 옥사

[편집]

최향이 사람을 모아 그 주의 부사(副使) 유문거(柳文柜), 판관(判官) 전양재(全兩才), 법조(法曹) 이종(李宗)을 소환하였다. 전양재는 병이 났다고 하면서 가지 않았다. 유문거와 이종이 가자, 최향은 두 사람을 바로 결박하고 나무에 매달았다가 조금 뒤에 그들을 죽였다. 또 무리를 이끌고 전양재의 집으로 가서 그를 끌어내고 참수하였다. 객사(客舍)의 문루에 올라가 쟁과 북을 치며 고함을 지르니, 홍주의 백성이 안저부절했다.

최향은 편지를 써서 유배지에 있는 장군 유송절(柳松節)을 남해(南海)에서, 김수영(金壽迎)을 예산(禮山)에서 홍주로 불러들였다. 이어 박문재(朴文榟)를 불러 인근 주군에 격문을 돌려서 군사들을 동원하여 돕도록 하였다. 가동(家僮)을 시켜 창고의 쌀을 꺼내 군인들에게 주었는데, 어떤 한 병사가 그 가동을 죽이니 고을의 인심이 흉흉하였다.

최우는 병마사(兵馬使) 채송년(蔡松年), 지병마사(知兵馬事) 왕유(王猷), 부사 김의렬(金毅烈)에게 10영(領)의 군사를 딸려 파견, 최향을 토벌하도록 하였다. 채송년 등의 군사에 패한 최향과 수십 명이 달아나다가 북산(北山)에서 홍주 백성들과 군사를 이끌고 포위하였다.

최향이 말하기를 "우리 형은 여러 해가 되어도 나를 부르지도 않고, 또 주관(州官)들에게 나를 잘 보호하고 접대하라고 부탁하지 하지 않으니, 주관(州官)들이 나를 멸시하고 내 말도 듣지도 않아서 내가 울분이 쌓였다. 마침 신사(神祠)에 가서 세 번이나 배교(杯珓)를 던져 길하다는 점괘를 얻었기에 좌우(左右)의 말만 듣고 경솔하게 난을 일으켰다. 뉘우친들 어찌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날이 저물자 최향을 따르던 사람들이 모두 도망치니, 최향은 갈 곳을 몰라 하다가 바위 벼랑에서 떨어져 동굴 속에 숨었다. 추격하던 군사들이 오자, 최향은 제 목을 찌르고 죽은 체하고 있었는데 군사들이 그를 잡아서 가두니, 최향은 감옥에서 죽었다. 뒤에 신원되었다.

사후

[편집]

안찰사(按察使) 전의(全懿)가 김수영, 박문재 등을 체포하고, 또 공문을 보내 유송절 등을 체포해서 모두 죽였다. 최우는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여 전의를 시켜 최향의 잔당을 끝까지 추격해 체포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전의는 최이의 환심을 사려고 무고하여 "예산·결성(結城)·여양(麗陽)·대흥(大興) 등 7현(縣)의 감무(監務)들이 처음부터 최향과 함께 공모하였습니다. 일이 실패하자 죄를 면하려고, 도리어 격문을 돌린 사람들을 체포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각 현의 서리들을 잡아다가 심문을 하였는데, 현의 서리들이 모두 거짓으로 자복하자 7개 현의 감무(지방관)들을 모두 죽였다. 또 홍주군 사람으로 최향과 왕래하던 사람들은 혐의가 있거나 없거나 여부, 잘못의 경중을 묻지도 않고 모두 잡아 죽였다.

뒤에 중방(重房)에서 전의가 제멋대로 김수영 등을 죽인 것을 알게 되자, 중방은 전의를 탄핵하여 해도(海島)로 유배 보내었다. 최향은 후에 복권되고 대장공(戴莊公)의 시호를 받았다. 시호 추증 일시는 고려사, 고려사절요에 나타나지 않는다.

가계

[편집]
  • 고조부 : 최주행(崔周幸)
  • 고조모 : 미상
  • 증조부 : 최정현(崔貞現)
  • 증조모 : 미상
  • 조부 : 최원호(崔元浩, ? ~ ?) 상장군 역임[1]
  • 조모 : 진강국대부인 진주 유씨(柳氏, 생몰년 미상)
  • 부인 : 개성왕씨, 수춘후(壽春侯) 왕항(王沆)의 딸
    • 자녀 : 미상

최향이 등장한 작품

[편집]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1. 선계가 미상으로 그의 아버지 최원호를 시조로 한다. 2000년대 이후 최충헌 묘지문이 판독되면서 최원호의 부 최정현, 조부 최주행의 존재가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