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초중단

청초중단
(靑綃中單)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국가민속문화재
종목국가민속문화재 제61호
(1979년 1월 23일 지정)
수량1점
시대조선시대
소유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위치
청초중단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청초중단
청초중단
청초중단(대한민국)
주소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52, 이화여대박물관 (대현동)
좌표북위 37° 33′ 45.8″ 동경 126° 56′ 45.7″ / 북위 37.562722° 동경 126.946028°  / 37.562722; 126.946028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청초중단(靑綃中單)은 조선 말기 백관이 조복의 받침옷으로 입었던 것이다.

개요[편집]

청초중단은 조선시대에 문무백관이 조복을 갖추어 입을 때 적초의 안에 받쳐 입었던 옷으로, 조복 제도는 태종16년(1416)에 관복색을 설치하며 만들었고 이후 『경국대전』에서 보완되었으며 약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갑오경장 이후 구한말까지 유지되었다. 조복은 금칠한 양관(梁冠)과 적초의(赤綃衣), 적초상(赤綃裳), 중단(中單), 대대(大帶), 혁대(革帶), 폐슬(蔽膝), 후수(後綬), 패옥(佩玉), 말(襪), 혜(鞋), 홀(笏)로 구성된다. 품계에 따라 양관의 량의 수, 허리띠와 홀의 재료, 후수의 문양, 패옥의 색상 등을 달리 하였다. 『경국대전』 의장조(儀章條)에 의하면 조복의 중단은 백색 초로 만든 백초중단(白綃中單)이나, 실제 조선 말기 조복 일습으로는 바탕색이 청색으로 바뀐 청초중단(靑綃中單)이 다수 전해진다.

이 유물은 1979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할 때 ‘전 고종학창의’라는 명칭으로 등재하였으나 2006년 ‘청초중단’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지정 당시 보고서를 보면 의복의 구조가 창의(氅衣)에 검은 선을 두른 학창의(鶴氅衣)와 같고, 구입 당시 창덕궁에 소장되었던 유물이라 전해졌기 때문에 ‘전 고종 주 학창의’라는 명칭을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가슴과 등에 상(裳)을 연결할 수 있는 홍색 고리가 있는 것을 보아 조복의 받침옷으로 입었던 것이 확실하다. 따라서 이 유물은 고종이 착용한 것으로 볼 수 없으며, 조선 말기에 조복의 받침옷으로 적초의 안에 입었던 청초중단으로 볼 수 있다. 중요민속자료 제62호인 적초의와 함께 조복으로 착용했을 것으로도 추정하고 있다.[1] 이 옷은 남색의 고운 명주(細紬)로 만들었으며 가장자리에 둘러진 흑색 선이 있고 흰 비단으로 동정을 달았다. 옷고름은 98cm이며 소매 너비 역시 50cm 정도로 조선 말기 의복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1979년 1월 23일 대한민국의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2][A]

각주[편집]

내용
  1. 2011년 2월 5일 '중요민속자료'를 '국가민속문화재'로 개칭하였다.[3]
출처
  1. 문화재청
  2. 문화공보부장관 (1979년 1월 23일). “문화공보부고시제417호(중요민속자료지정)”. (1979년 1월 26일 관보제8158호 13쪽, 14쪽, 15쪽). 13-15쪽. 2016년 11월 4일에 확인함. 
  3. 대통령; 국무총리; 문화체육관광부장관 (2010년 2월 4일). “법률제10000호(문화재보호법 전부개정법률)”. 《국가법령정보센터》. 관보제17189호(PDF) 67-105 게재. 2016년 10월 27일에 확인함. 부칙 제3조(중요민속자료에 관한 경과조치) 이 법 시행 당시 종전의 규정에 따라 지정된 중요민속자료는 이 법에 따른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것으로 본다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