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F. 케네디 암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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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F. 케네디 암살 사건
JFK limousine.png
대통령 케네디와 아내 재클린 여사, 텍사스 주지사 존 코널리가 대통령 전용 리무진에 타고 이동하고 있다. 이 사진이 촬영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케네디는 총에 맞았다.
위치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 딜리 프라자
좌표 북위 32° 46′ 45″ 서경 96° 48′ 31″ / 북위 32.77903° 서경 96.80867° / 32.77903; -96.80867좌표: 북위 32° 46′ 45″ 서경 96° 48′ 31″ / 북위 32.77903° 서경 96.80867° / 32.77903; -96.80867
발생일
12:30 p.m.
1963년 11월 22일(53년 전)(1963-11-22) – (중부 표준시)
대상 존 F. 케네디
종류 저격 암살
수단

6.5×52mm 이탈리아

카르카노 M91/38 볼트 액션 라이플
사망자 존 F. 케네디 , J. D. 티핏
부상자 존 코널리, 제임스 태규
공격자 리 하비 오스월드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은 1963년 11월 22일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리 하비 오스월드의 총에 맞아 암살당한 사건이다. 1963년 11월 22일에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포드 자동차 회사에서 만든 링컨 컨티넨탈 차를 타고 텍사스 주 댈러스 시내에서 퍼레이드를 하고 있었다. 오후 12시 30분 딜리 플라자를 지나던 케네디 대통령의 차량에 보관창고 건물 6층에서 리 하비 오스월드가 총 3발을 쐈다. 케네디 대통령은 목이 총알로 관통되었고 목을 잡고 고통을 호소하다 부인 재클린 케네디가 보는 앞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했다. 그리고 텍사스 주지사 존 코널리에게도 부상을 입혔다. 오스월드는 케네디 저격 후 도주했고 1.6km 정도 도주했을 때 텍사스 순찰경관 J. D. 티핏이 오스월드를 정지시켰다. 그러나 티핏은 오후 1시 15분에 오스월드에게 리볼버 권총으로 살해당했다. 그 후 1시 45분경에 텍사스 극장의 제보로 오스월드를 체포했다. 그리고 11월 23일 새벽 1시 30분에 케네디 암살범으로 공식 기소되었다. 하지만 오스월드는 11월 24일 아침에 텍사스 경찰서 지하에서 잭 루비라는 나이트클럽 경영자의 총에 맞아 암살되었다.

배경[편집]

일종의 대선 개막전으로 케네디는 11월에 플로리다와 텍사스를 방문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나름대로 민권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취해온 터라 남부 대다수 주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라 판단, 플로리다와 택사스를 겨냥해 각별히 공을 들이기로 했다.[1] 11월 18일, 그는 탬파와 마이애미를 방문해 정계 노동계 인사들과 미중언론협회를 상대로 연설을 했다. 국내 경제와 해외 정세, 특히 라틴아메리카와의 관계가 연설의 주제였다. 텍사스 방문 기간에는 선거운동 자금을 갹출하고 정치적 갈등을 봉합하고자 했다. 당시 텍사스 주의 주지사는 존 코널리였다. 케네디는 벌써 몇 달때 코널리더러 텍사스 주의 부유층 기부자들과 만찬을 마련해달라고 채근해왔다. 하지만 1964년 주지사 재선을 노리던 코널리는 되도록 대통령과 혼연일체라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케네디의 민권정책 때문에 텍사스 유권자 다수가 소원해져 있었던 것이다. 텍사스 출신이던 부통령 린든 B. 존슨도 케네데의 텍사스 방문이 썩 달갑지 않았다. 텍사스 민주당이 주지사 코널리의 보수파와 연방상원의원 랠프 야버러가 주도하는 자유주의 개혁 진영 사이의 마찰로 분열상을 빚고 있었다. 존슨은 케네디가 이 분열을 해소하는 데 그다지 큰 몫을 발휘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케네디의 방문이 도리어 갈등을 격화시키면서 케네디 스스로 당 내분 수습에 무능하다는 인상만 부각시키는 꼴이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그 같은 텍사스의 정파 간 반목에도 케네디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2]

오도넬은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정작 대통령 노릇보다 훨씬 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워싱턴을 벗어나서 결과를 장담하기가 어려운 결과를 장담하기가 어려운 주, 선거인단 수가 25명에 달하는 중요한 주에서 재선 선거운동을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우두머리 다수가 그를 반대하고 큰돈 만지작거리는 다수가 그를 반대한다 해도 그곳의 일반 주민들의 표심은 얻을 수 있다. 그는 그렇게 확신했습니다. 돌파하자면 고달프기 짝이 없는 정치적 난관이지만, 백악관 집무보다는 그처럼 힘든 대목에서 그는 한결 더 짜릿한 쾌감을 느꼈습니다. 바비도 오도넬과 같은 생각이었다. 대통령이 "워싱턴에 있을 때는 적잖이 침울한 모습이었습니다. 침울하다 싶을 정도는 아니고, 그건 너무 심한 표현이네요. 그래도 아무튼 그 칼럼들을 한번 샅샅이 훑어서 읽어 내려가보세요. 어느 것 하나 그에게 열정적이지 않았으니까. ... 아시겠지만 모두가 뭐랄까, 그의 허물을 찾아 트집을 잡고 있었지요. ... 선거운동이라면 그토록 사족을 못 쓴 이유가 그 때문이지요. 돌아올 때마다 이러더군요. '거기는 정말 딴 나라야.' ... 워싱턴 사람들은 그의 대중적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정말 몰랐어요."[3]

텍사스를 방문하는 것이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는 의견도 있었다. 공공연한 반케네디 우익 시위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앞서 10월 24일 UN의 날에 스티븐슨이 댈러스를 방문했을 당시 극우 보수파 패거리가 떼로 몰려들어 스티븐슨에게 야유를 퍼부으며 신체적 의협까지 가한 전례가 있다. 그 때문에 대통령의 친지 중 몇몇은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댈러스를 방문해야겠냐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11월 4일 민주당 전국위원회 텍사스 주 위원이던 바이런 스켈턴이 현지 신문 보도와 관련해 바비에게 전한 이야기가 있었다. 문제의 기사는 전직 장성 에드윈 워커에 관한 것으로, 워커는 극우 단체인 존버치 협회와 한통속이었다. 스켈턴이 편지에 담은 충고는 다음과 같았다. "워커의 발언은 '케네디는 자유 세계에 부담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능히 대통령을 해코지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의 순방 일정에 댈러스가 들어 있다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립니다. 아무쪼록 귀하도 이를 진지하게 고려해보시기 바랍니다." 바비는 이 편지를 오도넬에게 전달했고, 오도넬은 "편지를 대통령에게 보여드려도 시간만 낭비하는 꼴"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스켈턴의 편지 때문에 순방 일정에서 댈러스같이 중요한 대도시를 제외할 것"을 건의하면 대뜸 케네디에게 '당신 미쳤냐'는 핀잔을 들을 것이라고 판단했다.[4]

텍사스 순방 및 암살[편집]

11월 21일 아침 케네디가 텍사스로 떠날 채비를 하는 사이 데이비드 파워스는 대통령 집무실에 들러 그와 이런저런 의논을 했다. 파워스의 회상이다. "미국 독수리를 한복판에 짜넣은 회녹색 카펫 위에 우뚝 서 있는데 본래 키 약 185센티미터보다 더 훨씬 훤칠해 보였습니다. ... 늘 그렇듯이 허리가 아파서 애를 먹고 있었지만, 역락없이 건강의 화신처럼 보였어요." 그날 일정 역시 방문 일정을 소화하는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었다. 우선 앤드루스 공군 기지에서 샌안토니오까지 세 시간 반 비행, 다음에는 휴스턴과 포트워스까지 잇따라 45분씩 비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세 곳 공항에서 각각 수백 명의 환영객과 인사를 나누었고, 차량 행렬 두 시간 반 동안 도로 연변의 인파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샌안토니오에서는 항공우주 의료 시설 한 곳의 개관식을 치렀고, 휴스턴에서는 라틴아메리카 시민 연맹 앞에서 짤막한 연설을 했으며, 케네디의 편이자 우주 사업 부문 예산 확보에 도움을 준 연방하원의원 앨버트 토머스를 대접하는 만찬에서 치사의 뜻을 전했다. "영부인 재키가 나들이에 함께 나섰다!" 군중들이나 취재진에게서는 그것이 화젯거리였다. "코널리 편이라는 이유로 야버러가 존슨과 한 차로 움직이기를 거부했다!" 이 같은 뉴스 보도로 코널리와 야버러 양측의 노골적인 적대 관계가 뚜렷이 부각되었고, 대통령의 방문 의도를 둘러싸고 현지의 관심이 증폭되었다.[5]

텍사스 순방 기간에, 특히 댈러스 방문 경로에 발생 가능한 위협에 대비해 대통령 신변 보호 차원에서 취할 만한 보안 예방책은 취하고 있었으나, 대통령 경호 담당 재무부 비밀 검찰국이나 FBI는 극우 세력에 대해서는 과대 반응을, 급진 좌파의 암살 가능성에 대해서는 과소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 결과 두 기관 모두, 리 하비 오스월드라는 인물이 대통령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탐지하지 못했다. 오스월드는 됨됨이가 변변찮고 정서가 불안한 인물로, 러시아에서 3년 가까이 생활했는가 하면, 공공연히 쿠바 카스트로 편이라 자처하면서 국무부의 금지 조처를 어기고 쿠바 방문을 기도했다가 좌절에 그친 전력이 있었다.[6] 오스월드는 그의 일터인 교과서 보관 창고로 쓰이던 댈러스 중심가 딜리 플라자 건불 6층 창문에서 바로 아래 무개차에 몸을 싣고 지나가는 대통령을 겨냥해 세 발을 발사했다. 두 번째 발사된 탄환이 케네디의 목 뒤를 가격했다. 세 번째 탄환은 후두부에 치명타를 가했다. 중부 시각으로 오후 1시, 저격 순간에서 30분이 지난 시각, 댈러스 파클랜드 메모리얼 병원 의료진은 영부인에게 대통령이 운명했다는 사실을 통보했다.[7]

피해자[편집]

  • 존 F. 케네디 - 미국 대통령, 오스월드에게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
  • J. D. 티핏 - 텍사스 주 순찰경관, 오스월드에게 리볼버 권총을 맞고 사망
  • 존 코널리 - 텍사스 주지사, 오스월드에게 총을 맞고 부상당함

사건 가담자[편집]

각주[편집]

  1. 댈럭 2007, 1272쪽.
  2. 댈럭 2007, 1272-1273쪽.
  3. 댈럭 2007, 1273쪽.
  4. 댈럭 2007, 1274-1275쪽.
  5. 댈럭 2007, 1273-1274쪽.
  6. 댈럭 2007, 1275-1276쪽.
  7. 댈럭 2007, 1276-1277쪽.

참고 문헌[편집]

댈럭, 로버트 (2007). 《Unfinished life》 [케네디 평전 2]. 푸른숲. ISBN 978-89-7184-735-0.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