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조선군왕
고려조선군왕(高麗朝鮮郡王), 조선군왕(朝鮮郡王), 요동도독조선군왕(遼東都督朝鮮郡王)은 고구려의 멸망 이후 당나라가 보장왕의 후손에게 주었던 군왕 작위로,[1] 명목상으로는 고구려 지역을 통치하는 왕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형식적인 예우만 받는 직책이었다.
역사
[편집]당은 나당 전쟁 패배로 인해 안동도호부를 요동으로 철수시키는 과정에서, 고구려 유민의 이탈을 막고 신라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요동 지방의 통치 체계를 크게 정비하였다. 이 과정에서 통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당시 장안에 붙잡혀 있던 보장왕에게 요동도독조선군왕(遼東都督朝鮮郡王) 직책에 봉해 요동으로 돌려보내 고구려 유민을 통제하게 하였으나, 보장왕이 속말말갈과 연합해 당의 지배에 대항하자 보장왕을 중국 남부 지방으로 유배하였다.[2]
685년 보장왕의 손자인 고보원을 비슷한 직책인 조선군왕(朝鮮郡王)으로 봉하였으나,[3] 실제로 요동으로 이주하지 않고 당 수도에서 명목적인 직책만을 보유하였다. 696년 요동에서 거란의 반란이 일어나자 고보원을 충성국왕(忠誠國王)으로 봉해 요동으로 보내려는 정책이 제안되었으나, 실제로 시행되지는 않았다.[2][4]
이후 조선군왕은 장안에서 고구려 왕실을 계승한다는 명목으로 유지되었으며, 당 조정의 의례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725년 태산에서 열린 봉선에 참석하였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5][2] 이 시기부터 고구려 유민을 대표한다는 의미를 담아 고려조선군왕으로 부르기 시작했으나, 실권은 거의 없던 것으로 보이며, 통치 지역인 요동은 요동 도독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2]
고려조선군왕은 781년 하삭 (황하 이북) 지역을 관할하는 직책으로 갑자기 바뀌기도 했으며, 이후 역사서에서의 언급이 사라지기 때문에, 폐지된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5]
조선
[편집]조선군왕의 '조선'은 일반적으로 고조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데, 고려(고구려)가 아닌 조선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데는 고조선의 영토를 통치했던 고구려가 신하 국가로 바뀌었음을 나타내기 위한 당 조정의 정치적 의도가 들어가 있었다고 추정하고 있다.[5]
각주
[편집]- ↑ “고려조선군왕”.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역사용어 시소러스》. 2024년 2월 2일에 확인함.
- ↑ 가 나 다 라 “고려조선군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4년 2월 2일에 확인함.
- ↑ “고보원을 조선군왕에 책봉하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2024년 2월 2일에 확인함.
수공 2년에 항복한 왕의 손자 보원을 조선군왕으로 삼았다
- ↑ “고보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4년 2월 2일에 확인함.
- ↑ 가 나 다 馮立君 (2016년 11월). “唐代朝鮮郡王考” [당대조선군왕고]. 《중국고중세사연구》 42: 493-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