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포 (동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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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포(張布, ? ~ 264년)는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의 정치가이다.

행적[편집]

손침손량(孫亮)을 폐위시키고 손휴를 세웠으나, 손침이 실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손휴 역시 손침을 꺼렸다. 때문에 손침이 술과 고기를 바쳤음에도 받지 않았다. 손침은 당시 좌장군(左將軍)이었던 장포의 집으로 찾아가 손휴를 원망하는 말을 늘어놓았는데, 장포는 이 일을 손휴에게 고했다. 두려움을 느낀 손휴는 장포와 함께 손침을 제거할 계획을 꾸몄다.[1]

장포는 손휴에게 정봉(丁奉)을 추천해 거사에 가담시켰으며, 정봉은 연말에 신들에게 제사지내는 납회(臘會) 때 손침을 불러들여 죽일 것을 제안했다. 이 계책을 실행한 결과 손침은 간단히 붙잡혀 그날로 처형당했다. 거사가 성공하고 손침 일당을 제압한 공으로 보의장군(輔義將軍)에 임명되고 영강후(永康侯)에 봉해졌으며, 그의 두 동생 장돈(張惇)과 장순(張恂)에게도 벼슬이 내려졌다.[2][3]

이후 손휴에게 위임받아 정무를 처리하게 되었는데, 권력을 쥐게 되자 거만한 행동을 자주 했다. 또 손휴위소(韋昭), 성충(盛沖)과 예법을 논하려 하자 이들이 손휴의 총애를 받아 자신의 권력을 잃게 될 것이 두려워 이를 막으려 하였다. 손휴는 장포의 반대가 당치 않음을 지적하여 장포가 사죄하게 만들었으나, 장포를 의식해 원래의 계획을 취소했다.[2]

죽음[편집]

264년 손휴가 죽자, 좌전군 만욱(萬彧)은 장포와 복양흥에게 당시 평판이 높던 오정후 손호를 옹립할 것을 권했고, 장포는 복양흥(濮陽興)과 함께 태후에게 아뢰어 손호를 추대하였다. 장포는 이 공으로 표기장군이 되고 시중을 겸했다. 그러나 손호가 등극 후 폭정을 일삼자, 장포와 복양흥손호를 추대한 것을 후회했다. 이를 알아차린 만욱이 손호에게 고하자, 손호는 11월 1일 신하들이 입조했을 때 두 사람을 광주로 귀양보내게 했으며, 도중에 사람을 보내 죽이고 그들의 삼족을 멸했다.[1][2]

삼국지연의의 장포[편집]

제119회, 제120회에 등장한다. 제119회에서는 손침 암살 장면에서 나오며 역사 기록과 거의 비슷하게 활약한다. 제120회에서는 복양흥과 함께 포학해지고 주색을 탐하는 손호에게 간하다가 참수당하고 삼족이 멸해진다.[4]

각주[편집]

  1. 진수: 《삼국지》 권64 오서 제19 제갈등이손복양전
  2. 위와 같음, 권48 오서 제3 삼사주전
  3. 위와 같음, 권55 오서 제10 정황한장주진동감능서반정전
  4. 나관중: 《삼국지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