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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복 (15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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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복(林復, 1521년 ~ 1576년) 또는 정자공(正字公) 휘 복은 조선문신시인이다. 본관은 나주, 자는 희인(希仁), 호는 풍암(楓巖)이다. 나주 임씨 정자공파의 파조이며 시조 임비의 16세손이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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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1년(중종 16), 아버지 임붕과 이종의(李宗義)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는 임귀연, 할아버지는 임평이다.[1]

1546년(명종 1), 증광 을과에 급제, 승문원정자에 등용되었으나 이듬해인 1547년정미사화(양재역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삭주로 유배되었다가 1551년에 특사로 풀려나 귀향했다가 선조 초에 박사에 임명되었는데 무고를 받아 취임하지 못하고 재귀향하여 살다가 1576년(선조 9)에 사망하였다. 사후 병조판서에 증직되었다.[2]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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