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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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봉
인물 정보
출생지일제강점기 조선
국적대한민국
학력수성동보통[1]
청년학관[2]
경신고등학교[3]
연희전문[4]
직업축구 선수, 농구 선수, 체조 선수

이혜봉(한국 한자: 李惠逢)은 대한민국의 전 농구 선수축구 선수, 체조 선수[5]였다.

본래 1924년도 까지는 축구를 하였다가[1]1925년부터는 농구를 시작하였다.[2]1930년에는 연희전문의 농구부 창단 멤버로 활동하였고1932년에는 자유투를 91회 성공시켜 일본의 기존 신기록을 넘어섰다.[6]이후에는 YMCA 대표로 활약한 후 휘문고보에서 코치직을 맡아 이성구 선수를 지도하기도 하였다.[4]농구와 함께 체조도 같이 한 것으로 보인다[3] 또한 1933년 경성축구단의 창립 맴버로 활약하면서 당시 조선 대표팀인 전경성축구단에도 선발되게 된다. 이후에 간도에서 동홍중의 코치직을 맡았다가 전만주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간도성 대표팀을 이끌고 우승을 이끈 후 중국으로 가서 중국대표팀 선수로 10년간 뛰다가 해방 이후 다시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다.[7]

각주[편집]

  1. “오회전조전축구대회”. 동아일보. 1924년 10월 31일. 
  2. “고룡에여의주반체칠십명용사”. 동아일보. 1925년 11월 1일. 
  3. 전혜진 (2022년 9월 13일). “연세대 농구부, 신촌 독수리의 비행길”. 시스붐바. 
  4. {{뉴스 인용|url=https://m.jumpball.co.kr/news/newsview.php?ncode=1065592480379715&_ref=naver%7C제목=[THE LEGENDS] ① '한국농구의 91년 역사' 이성구|출판사=점프볼|날짜=2022-01-07|저자=서민교}
  5. “성황리에 개막한 실내운동 제일일”. 조선일보. 1931년 3월 1일. 
  6. “일본기록궁신 돌파한 농구자유투대회”. 조선일보. 1932년 3월 22일. 
  7. 이혜봉 (1972년 10월 11일). “제 27화 경평축구전(25)이혜봉 제자 이혜봉”. 중앙일보.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