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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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시성 신저우시에 건립된 원호문 동상

원호문(중국어 간체자: 元好问, 정체자: 元好問, 병음: Yuán Hàowèn 위안하오원[*], 1190년 8월 10일 ~ 1257년 10월 12일)은 중국 북방에서 약 1세기간 계속된 금(金)왕조 제1의 시인이다. 자는 유지(裕之), 호는 유산(遺山)이다.

당의 시인 원결(元結)의 자손으로서 산시성 타이위안(太原)에서 출생, 금나라 최후의 천자(天子)인 애종(哀宗)을 섬겼고, 좌우사원외랑(左右司員外郞)까지 지냈다. 44세 때, 금이 멸망하고 원(元)이 세워졌으나, 벼슬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문호로서의 존경을 받으면서 금의 역사 편찬을 평생의 보람으로 삼으며 자적(自適)의 생활을 보냈다.

그의 시는 소학(蘇學)을 계승하는 자각에 입각하여 도연명, 두보, 소식, 황정견의 시를 잘 익혔고, 중후하며 때로는 난해하다. 그는 안이한 언어의 나열을 싫어하고, 고인(故人)의 생명이 깃들여 있는, 전거(典據) 있는 고어에 새로운 입김을 불어넣어서, 언어 조형의 긴밀한 아름다움을 발휘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당송시(唐宋詩)의 장점을 모아 대성시킨 시인이라고 하겠다.

한편 금나라 일대 시인의 작품을 모아서 <중주집(中州集)>을 만들었다. 그것은 후의 명말(明末) 청초(淸初)의 시인인 전겸익(錢謙益)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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