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 토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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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 토착민

오스트레일리아 토착민(Indigenous Australians)은 흔히 애버리지니(Aborigine)라고 하며 유럽인의 이주 이전에 오스트레일리아에 살았던 최초의 종족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본토의 애버리지니와 행정구역 상 퀸즐랜드의 일부인 토레스 해협 제도의 토레스 제도 토착민 및 태즈매니아의 태즈메니아인등이 있으나, 태즈메니아인은 백인 이주자에 의하여 절멸당하여 그 맥이 끊어졌다. 총 인구는 45만 명가량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전체인구의 약 2.4%에 해당한다. 이들은 현재 약 4만~7만 년 전에 처음 호주대륙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애버리지니는 대략 250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소규모 집단으로 나뉘어 있으나, 현재 200개가 안 되는 언어만 존속해 있으며, 그 대부분은 사멸의 위기에 몰려 있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 토착민은 호주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최하층을 구성하고 있다.

영국인 정착 이후[편집]

1770년 제임스 쿡 선장에 의해 호주 동남부지역이 대영제국의 영토로 선포되어 뉴 사우스 웨일즈란 명칭이 붙은 이후 1788년 시드니를 중심으로 식민지화가 시작되었다. 영국인 이주정책으로 인한 가장 큰 피해는 이들로 인한 학살보다는 이주민들과 같이 들어온 수두, 천연두, 인플루엔자, 홍역과 같은 전염병 때문이었다. 이러한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없던 애버리지니는 인구밀도가 높던 동남부 해안지방을 중심으로 큰 타격을 받아 인구가 급감하게 된다. 또한 이주민과 같이 들어온 성병에 전염되어 유아사망률과 출생률이 급격히 떨어진다. 이처럼 전염병과 성병, 그리고 탄압으로 인해 1788년과 1900년 사이에 애버리지니 인구의 90%가 감소하게 되었다. 비교적 풍족했던 남부 호주의 경우 유럽정착민들이 채 도달하기도 전에 이러한 전염병으로 애버리지니 인구가 완전히 절멸되었고 태즈매니아 섬은 특히 타격이 컸는데 이주민 정착 초기 2,000~15,000명 수준이었던 애버리지니의 인구가 1870년까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인종학살이 가장 극심했던 1803-34년 사이 333명의 애버리지니가 학살당한 것도 원인이지만 가장 큰 이유로는 역시 이주민과 같이 들어온 매독과 같은 질병에 저항력이 전무했기에 대다수 질병으로 사망하였다. 내륙지방의 경우 원주민의 정착민들에 대한 저항이 격렬하여 이민 초기 약 3,000명 가량의 백인이주자들이 살해당한 것으로 산정되나 백인 이민자에게 살해당한 원주민의 수 또한 1만명이 넘는 것으로 예측된다. 이민초기 31만5천~75만명이던 원주민이 급감한 주 요인은 천연두, 인플루엔자, 결핵과 같은 질병으로, 이중 천연두에 걸려 병사한 원주민의 수만 전 인구의 50%에 달했는 것으로 예상된다.

1850년대 식민지화가 안정되자 애버리지니의 삶도 이주민들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그전까지 수렵에 의한 생활을 하던 원주민들은 한곳에 정착하면서 특히 광산개발등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들로부터 음식을 제공받는 관계가 형성된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약 1,200여명의 애버리지니가 군복무를 하게 되고 더 많은 군인이 필요하게 되자 그전까지 애버리지니의 군복무를 제한하던 정책이 완화된다. 1920년대에는 애버리지니의 인구가 급감하여 멸종할지도 모른다는 동정여론이 높아졌으나 1930년대 전염병에 살아남고 이러한 질병에 저항력을 기른 원주민의 출생률이 높아져 다시 인구는 증가하게 된다.

애버리지니 인구 감소 및 절멸과 호주 정부의 뒤늦은 보상[편집]

2008년 2월 13일, 연방정부를 대표하여 최초의 토착민 박해 공식 사과문을 낭독하는 케빈 러드

태즈메이니아지역의 애버리지니는 호주가 영국식민지가 되면서 30년사이(1803-1833) 영국이주자들과 함께 들어온 질병과 인종탄압, 학살에 의해 인구가 5,000명에서 300으로 급감하였다. 1896년 이후로 역사학자와 과학자, 인류학자들에 의해 애버리지니에 대한 인구조사가 이루어졌으며 '트루가니니'라는 여성을 마지막으로 순수혈통은 모두 사라졌다. 호주의 애버리지니들은 1900년부터 72년까지 약 70여년간 원주민개화정책의 일환으로 호주정부와 교회에 의해 부모로부터 강제로 분리되어 백인 가정으로 입양당했다. 당시 애버리지니들을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또는 '도둑맞은 아이들'(Stolen Children)이라고 부르며, 최소 1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데, 일부는 법정소송을 하여, 2007년 9월 1일 호주 역사상 최초로 보상결정이 내려졌다.[1] 2007년까지 재임한 존 하워드 정권에서는 호주의 원주민개화정책이 이전정권의 일이었다는 이유로 애버리지니에 대한 사과나 보상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으나 2006년 11월 태즈메이니아 지역을 기점으로 애버리지니의 후손들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이 이루어져 태즈메이니아 애버리지니 후예들만 약 40여명이 향후 5백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불받을 예정이다. 2007년 총선승리로 집권한 케빈 러드 행정부2008년 2월 13일, 범정부차원의 첫 번째 공식사과문을 발표하고 이를 연방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등, 더욱 적극적인 사죄활동을 시작했다.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문화방송 W, '호주, 도둑맞은 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