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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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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에 쓰인 영국의 우편엽서

엽서(葉書, 영어: Postcard)는 봉투에 넣지 않고 직접 글이나 그림을 기입하여 우편으로 발송할 수 있는 사각형 모양의 두꺼운 종이 또는 판지를 지칭한다. 일반적으로 우편 요금이 봉투에 넣어 보내는 서신보다 저렴하며, 여행지의 풍경을 담은 기념품, 간단한 안부, 기업의 광고 및 마케팅 수단 등 다방면으로 활용된다.[1] 엽서는 우취의 한 분야로서 수집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이를 전문적으로 수집하고 연구하는 분야를 델티올로지라고 부른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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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는 통신 수단으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시대의 문화와 예술을 반영하는 매체로서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다. 일반적인 편지와 달리 내용이 외부에 노출된 상태로 배달된다는 특징 때문에 사생활이 담긴 은밀한 내용보다는 공개적인 안부나 간단한 통지, 혹은 여행지의 소식을 전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되었다. 초기에는 통신 비밀 침해에 대한 우려로 인해 사회적 저항이 있기도 했으나, 저렴한 요금과 간편함이라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현대의 엽서는 만국우편연합 및 각국의 우편 규정에 따라 일정한 크기와 무게를 준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직사각형 형태가 표준이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원형, 동물 모양 등 비정형 엽서나 나무, 코르크, 얇은 금속 등 특수 소재를 활용한 엽서도 제작되고 있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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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동과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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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의 개념은 1865년 독일 카를스루에에서 열린 독일 우편 회의에서 하인리히 폰 슈테판에 의해 처음 제안되었다. 그는 편지보다 저렴하고 간편한 통신 수단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우편 엽서의 도입을 건의했으나, 당시에는 사적인 내용이 공개된다는 점이 비도덕적이고 품위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2]

그러나 4년 뒤인 1869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경제학자 에마누엘 헤르만이 우편 수입 증대와 통신 효율화를 위해 엽서 도입을 다시 제안했고, 오스트리아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1869년 10월 1일 세계 최초의 관제 엽서인 코레스폰덴츠 카르테가 발행되었다. 이 엽서는 발행 첫 달에만 140만 장이 팔릴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이후 독일, 영국, 미국 등 서구 열강들이 잇따라 엽서 제도를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3]

황금기 (1890년대~191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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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은 엽서의 황금기로 불린다. 인쇄 기술, 특히 석판 인쇄술과 사진 기술의 발달로 고품질의 그림과 사진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엽서는 단순한 통신 수단을 넘어 수집과 감상의 대상이 되었다. 이 시기에는 에펠탑 건설, 만국박람회 등 역사적인 사건이나 각국의 풍물, 미인도, 예술 작품 등이 인쇄된 엽서가 대유행하였으며, 엽서 수집 앨범이 가정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을 정도였다.

뒷면 분할의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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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엽서는 주소가 적히는 앞면에는 오직 주소만 적을 수 있었고, 뒷면에는 메시지만 적을 수 있었다. 만약 뒷면에 그림이 인쇄되어 있다면 메시지를 적을 공간이 그림 여백으로 제한되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02년 영국을 시작으로 1907년 만국우편연합이 엽서의 주소면을 반으로 나누어 오른쪽에는 주소를, 왼쪽에는 메시지를 적을 수 있게 하는 분할 뒷면 양식을 허용했다.[4] 이로써 엽서의 앞면 전체를 온전히 사진이나 그림으로 채울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현대적인 그림 엽서의 표준이 되었다.

규격과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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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는 국가 간 우편 교환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만국우편연합이 정한 국제 표준 규격을 따른다. 일반적으로 가로 140mm에서 160mm, 세로 90mm에서 110mm 사이의 직사각형 형태가 표준이다. 종이의 두께나 재질 또한 우편 기계 처리 과정에서 훼손되지 않도록 일정 수준 이상의 강도를 유지해야 한다.[5]

엽서의 구조는 크게 앞면과 뒷면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그림이나 사진이 있는 면을 앞면으로 보지만, 우취학적으로는 우표가 붙고 소인이 찍히는 주소면을 앞면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주소면은 다시 우표 부착란, 우편번호 기입란, 수신인 및 발신인 주소란, 그리고 통신문 기입란으로 구성된다.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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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제 엽서와 사제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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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주체에 따라 관제 엽서와 사제 엽서로 구분된다. 관제 엽서는 국가의 우정 기관이 발행하는 것으로, 우표에 해당하는 요액 인면이 엽서 자체에 인쇄되어 있어 별도의 우표를 붙일 필요가 없다. 반면 사제 엽서는 민간 기업이나 개인이 제작한 것으로, 발송을 위해서는 규정된 요금에 해당하는 우표를 별도로 구입하여 부착해야 한다.

그림 엽서와 사진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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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엽서는 관광지의 풍경, 명화, 일러스트 등이 인쇄된 엽서를 통칭한다. 그중에서도 실제 사진을 인화지에 직접 인화하여 엽서 뒷면 양식을 인쇄해 만든 것을 실물 사진 엽서라고 하며, 이는 인쇄 망점이 보이는 일반 인쇄 엽서와 달리 사진의 선명도가 뛰어나 수집가들 사이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광고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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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나 상점이 상품 홍보나 행사 알림을 목적으로 배포하는 엽서이다. 소비자에게 무료로 배포되는 경우가 많으며, 디자인이 독창적이거나 예술적인 가치를 지닌 광고 엽서는 수집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현대에는 카페나 영화관 등에 비치되어 문화 마케팅의 일환으로 활용된다.

대한민국의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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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서는 1900년(광무 4년) 5월 10일, 대한제국 농상공부 통신국에서 최초의 관제 엽서를 발행했다. 이는 국내용 1전 엽서로, 대한제국의 상징인 이화 문양이 도안되어 있었다. 도입 초기에는 내용을 남에게 보인다는 점 때문에 양반 계층에서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저렴함과 신속함 덕분에 상인과 일반 서민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6]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제국의 엽서 양식이 강제로 도입되었으며, 조선의 풍경을 담은 관광 엽서가 다수 제작되어 식민지 지배의 선전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독자적인 엽서가 발행되기 시작했으며,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라디오 사연 응모나 위문 편지용으로 엽서가 널리 애용되었다. 2000년대 이후 이메일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실사용량은 급감하였으나, 관광 기념품이나 아날로그적 감성을 전하는 수단으로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7]

수집과 델티올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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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수집은 우표 수집, 화폐 수집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3대 수집 취미 중 하나로 꼽힌다. 이를 델티올로지라고 하며,[8] 수집가들은 단순한 그림 수집을 넘어 엽서에 찍힌 소인의 날짜와 장소, 우표의 종류, 엽서의 제작 방식, 그리고 당시의 사회상이 담긴 메시지 내용을 종합적으로 연구한다.

특히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발행된 희귀 엽서나, 지금은 사라진 건물이나 풍경이 담긴 엽서, 유명인의 친필이 담긴 엽서 등은 역사적 사료로서 박물관이나 경매에서 고가에 거래되기도 한다. 수집 시에는 엽서의 보존 상태가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며, 구겨짐이나 얼룩이 없는 민트 상태가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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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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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엽서. 두산백과. 2024년 5월 20일에 확인함.
  2. Schoenherr, Steven (2004). The Evolution of the Picture Postcard (영어). San Diego State University.
  3. History of Postcards (영어). Smithsonian Institution Archives. 2024년 5월 20일에 확인함.
  4. Postcard History (영어). Metropolitan Postcard Club of New York City. 2024년 5월 20일에 확인함.
  5. Letter Post Manual (영어). Universal Postal Union (UPU). 2024년 5월 20일에 확인함.
  6. 엽서(葉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4년 5월 20일에 확인함.
  7. 우편엽서의 역사. 한국우표포털 서비스. 2024년 5월 20일에 확인함.
  8. Largest collection of postcards (영어). Guinness World Records. 2024년 5월 20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