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복 (원나라)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염복(閻復, 1236년1312년)은 원대(元代)의 유학자이자 관리이다. 자는 자정(子靖)이다.

원대 평양(平陽) 화주(和州)에서 태어났으며 후에 고당주(高唐州)[1]로 옮겨왔다. 금 말기에 금 왕조에서 출사했던 학자 원호문(元好問)에게서 학문을 배우고[2][3],약관의 나이에 동평부(東平府)의 지방 관립 학교인 동평학(東平学)에 들어가 당대에 이름난 유학자 강화(康曄)에게서 배웠다.[2] 이때 같은 동평부학원(東平府学员) 서담(徐琰)、 이렴(李谦)、 맹기(孟祺)와 함께 동평사걸(東平四杰)이라 불렸다.[3]

염복은 원의 세조(쿠빌라이 칸), 성종(테무르 올제이투 칸), 무종(쿨룩 칸) 세 조정에 출사하였고, 한림응봉(翰林應奉),한림수찬(翰林修撰), 한림직학사(翰林直学士), 한림학사승지(翰林学士承旨) 등의 직책을 역임하였다. 고려충선왕(忠宣王)이 충숙왕에게 전위하고 원으로 가서 연경(燕京)에 세운 도서관 만권당(萬卷堂)에 드나들며 충선왕과도 교유하였다고 알려져 있다.[4]

문집으로 《정헌집》(静轩集) 50권을 지었다.

각주[편집]

  1. 지금의 중국 산둥 성(山东省) 가오탕 현(高唐县)이다.
  2. 원사》(元史) 염복전(阎复传).
  3. 李献芳,元好问在东平的活动及对文化的贡献。《 齐鲁学刊》2002年 5期 69-72 页
  4. 《고려사》권제34 세가제34 충선왕 5년(1314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