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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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춘
梁承椿
출생 1940년 12월 25일(1940-12-25)
일제 강점기 경성부
(현재의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사망 2017년 6월 20일 (76세)
국적 대한민국
학력 대광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응용미술학과 학사
직업 그래픽 디자이너

양승춘(梁承椿, 1940년 12월 25일 ~ 2017년 6월 20일)은 대한민국의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300여 종, 1,000여 점에 달하는 그래픽 디자인 작품을 제작했을 정도로 대한민국의 그래픽 디자인계의 거목으로 여겨진다.

생애[편집]

1940년 12월 25일에 서울특별시에서 6남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의 할아버지는 대한제국 고종 시대에 시종무관을 역임한 무인 출신이다. 1959년에는 대광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965년에는 서울대학교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하면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1964년에는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제1회 상공인의 날 포스터 공모전에서 당선되었다. 1965년에는 청소년 선도의 달 포스터 공모전에서 당선되었고 같은 해에 열린 제1회 전국 쇼윈도 콘테스트에서는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1965년부터 1968년까지 동양맥주(현재의 OB 맥주), 합동통신사 광고기획실(현재의 오리콤) 디자이너로 근무했고 1966년에는 조선일보가 주최한 조선일보광고대상을 수상했다. 1966년부터 1968년까지 대한민국 정부가 주최한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상공미전)에서 특선을 3차례 수상했고 1969년에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가가 정한 공식 디자이너 자격을 받았다.

1968년에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 조교 및 시간강사로 임용되었고 1970년에는 전임교수로 임용되었다. 1974년에는 문교부의 지원을 통해 《한글 타입페이스 디자인 연구》를 진행했고 1977년에 열린 한국그래픽디자인협회 회원전에서 《한글 타이포그래픽 문자의 세계》라는 작품을 출품했다. 1978년에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발간한 연구지 《조형》에 〈사진 예술의 사적 흐름과 미학적 고찰〉이라는 논문을 게재했다.

1966년부터 1971년까지 서울대학교 출신 디자이너였던 이태영, 정시화, 배천범 등과 함께 디자인 그룹 프리즘에서 활동했고 1972년에는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한국그래픽디자인협회(나중에 한국시각디자인협회로 이름을 바꿈)를 설립했다. 1970년대에는 자신의 대학교 선배이자 동료 교수였던 조영제, 김교만과 함께 디자인 작업을 했고 1977년부터 1980년까지 한국시각디자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1974년에 OB 맥주 CI를 제작한 이래 여러 공공기관, 회사의 디자인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1983년에는 1988년 서울 하계 올림픽의 공식 엠블럼을 제작했다. 1998년부터 2010년까지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운영위원을 역임했을 정도로 장애인 복지관의 운영에 참여했다.

2006년에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에서 정년 퇴임하면서 명예교수로 임용되었고 2015년에는 한국디자인진흥원으로부터 안정언, 정시화와 함께 제4대 디자이너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다. 2017년 6월 20일에 향년 7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주요 디자인 프로젝트[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