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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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현
安聖鉉
기본 정보
출생 1920년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나주군
사망 2006년 4월 25일 (87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적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직업 테너 성악가, 작곡가
장르 서양 고전 음악
배우자 성동월
가족 자녀는 슬하 1남 1녀
아버지 안용승(함흥 지역 유지)
숙부 안막(문학평론가)
숙모 최승희(무용가)
숙부 안재승(연극연출가)
5촌 종숙부 안회남(소설가)
종조부 안국선(소설가)

안성현(安聖鉉, 1920년 ~ 2006년 4월 25일)은 일제 강점기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테너 성악가작곡가이다. 본관은 죽산(竹山)이다.

생애[편집]

전라남도 나주 출생이며 함경남도 함흥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일본에 유학하여 도호 음악대학교에서 테너 성악을 전공했다. 귀국한 뒤에는 전라남도 지역에서 음악 교사로 근무하며 작곡가로 활동했다.

김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동요 〈엄마야 누나야〉가 유명하며, 목포의 항도여자중학교(목포여자고등학교의 전신)에서 교사로 근무할 때인 1948년에 동료 교사 박기동이 작사하고 안성현이 작곡한 〈부용산(芙蓉山)〉도 널리 불린다. 이 노래는 박기동이 병으로 죽은 누이동생을 그리며 가사를 쓴 곡으로 가락도 서정적이지만, 구전을 통해 널리 퍼지면서 호남 지역 조선인민유격대 대원들의 애창곡이 되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금기시되었다.

한국 전쟁 중 월북했고, 북한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무용가 최승희의 남편 안막의 조카이기도 하다. 이들이 모두 월북하면서 이후 안성현의 행적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나, 사망 당시 북한 《문학신문》의 부고 기사에 따르면 지휘자, 작곡가, 연구사로 일하며 민족음악 발전에 큰 공을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학력[편집]

가족 관계[편집]

  • 고조부 : 안광묵(安光默)
    • 증조부
      • 조부
        • 아버지 : 안용승(安龍承, 1903년 ~ ?)
        • 작은아버지 : 안막(安漠, 1910년 4월 18일 ~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문학평론가.)
        • 작은아버지 : 안재승(安載承, 1922년 ~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연극연출가 겸 무용평론가.)
      • 종조부 : 안국선(安國善, 1878년 12월 5일 ~ 1926년 7월 8일, 대한제국 조선 왕조의 신소설 작가.)
        • 종숙 : 안회남(安懷南, 1909년 11월 15일 ~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소설가 겸 문학평론가.)
    • 종증조부 : 안경수(安駉壽, 1853년 ~ 1900년, 대한제국 조선 왕조의 개화파 정치가.)

참고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