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아 피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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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피사노
Andrea Pisano
출생1290년
피사 공화국 폰테데라
사망1348년
교황령 오르비에토
성별남성
경력건축, 조각
피렌체 예배당의 안드레아 피사노 패널.

안드레아 피사노 (Andrea Pisano, 1290년 폰테데라 – 1348년 오르비에토)[1][2]안드레아 다 폰테데라(Andrea da Pontedera)로도 알려진 이탈리아 출신의 조각가이자 건축가이다.

생애[편집]

피사노는 초기에 금세공업을 배웠었다.[3] 이후 그는 1300년경에 미노 디 조반니의 도제가 되었고, 피사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라 스피나의 조각상을 비롯하여 그와 함께 작업을 했다. 그는 피렌체에서 주요 작품을 만들어냈다. 조토 디 본도네가 피사노 초기 스승보다 그의 스타일에 더 많은 영향력을 미쳤던 것으로 추정한다. 피사노는 피렌체 예배당에 있는 청동 문 세 짝 중 한 개를 만들었다. 그는 1330년-1336년 사이에 이 문을 만들었다. 그가 만든 문은 수 많은 조그만한 네엽 무늬 장식 패널로 이뤄졌으며, 하단에는 미덕에 관한 인물들 담고 있는 8개가 나타나 있고 나머지 장면들에는 세례자 요한의 생애를 담고 있다.[4]

안드레아 피사노가 피렌체에 거주하던 동안에 많은 중요한 대리석 조각상들을 제작해냈으며, 이 대리석 작품 모두에서 조토의 영향이 나타나 있다. 1340년에 그는 조토에 이어 피렌체 대성당 작업 책임자직을 맡았다.[1] 그의 옛 스승이 설계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을 그가 맡아 제작한 부조들이 존재하는데, 여기에는 종탑을 위해 그가 제작한 이중 패널 부조가 있다. 이 패널 부조의 주제는 '4대 예언자', '칠주선', '칠성사', '칠형애긍', '칠행성 '이다. 두오모에는 대리석에 있어 피사노의 가장 중요한 작품들이 있다. 1347년, 그는 오르비에토 대성당 건설 책임자가 되었으며, 본래 이 성당은 로렌초 마이타니가 설계하여 진행 중이었다.[4][1] 이 패널과 대성당의 문 등이 현재 남아있는 피사노의 유일학 작품이다. 피사노는 비잔틴 영향에서 근대 미술을 해방시키는 데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348년에 사망했다.[1]

안드레아 피사노는 니노와 톰마소 등 아들 둘을 두었다.[4] 두 형제는 아버지의 오르비에토 대성당 책임자 직을 이어받았다.

조르조 바사리는 저서 '미술가 열전'에 안드레아 피사노의 생애를 포함하였다.

피사노의 알려지지 않은 제자가 있었으며 안드레아 오르카냐로 더 잘 알려진 안드레아 디 초네였다. 또 다른 제자로는 밀라노의 산테우스토르조를 건설한 조반니 디 발두키오가 있었다.[4]

갤러리[편집]

각주[편집]

  1. Huntley, G. Haydn (1976). 〈Pisano, Andrea〉. William D. Halsey. 《Collier's Encyclopedia》 19. New York: Macmillan Educational Corporation. 82쪽. 
  2. Murray, P. & L. (1996). Dictionary of art and artists. Penguin Books. ISBN 0-14-051300-0.
  3.  Andrea Pisano〉. 《가톨릭 백과사전》. 뉴욕: 로버트 애플턴 사. 1913. 
  4. 본 문서에는 현재 퍼블릭 도메인에 속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제11판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