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프렝켈
| 출생 | 1891년 2월 17일 독일 제국 뮌헨 |
|---|---|
| 사망 | 1965년 10월 15일(74세) 이스라엘 예루살렘 |
| 국적 | 독일, 이스라엘 |
| 주요 업적 | 체르멜로-프렝켈 집합론 |
| 수상 | 이스라엘상 (1956)[1] |
| 박사 지도교수 | 쿠르트 헨젤 |
| 박사 지도학생 | 아즈리엘 레비 |
아돌프 아브라함 할레비 프렝켈(독일어: Adolf Abraham Halevi Fraenkel, 히브리어: אַדוֹלְף אַבְרָהָם הַלֵּוִי פְרֶנְקֶל, 1891년 2월 17일 ~ 1965년 10월 15일)는 독일 태생의 이스라엘 수학자이다. 집합론에 공헌하였고, 에른스트 체르멜로의 공리계에 추가적 공리를 제안하여 체르멜로-프렝켈 집합론을 완성하였다. 그는 열렬한 시온주의 운동가이기도 했다.
생애
[편집]아브라함 프렝켈은 바이에른 뮌헨의 정통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뮌헨, 베를린, 마르부르크, 브레슬라우 대학교에서 유학하며 수학을 공부하고 1914년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독일 제국군에서 복무했고, 복무 중인 1916년에 강사(Privatdocent) 자격을 취득했다. 그는 1919년 결혼했으나, 전후 독일의 주택난으로 집을 구하지 못하여 수년 동안 쿠르트 헨젤의 집에 세들어 살았다. 프렝켈은 1922년 마르부르크 대학교에서 교수로 승진했고, 1928년 킬 대학교에서 1년간 교편을 잡다가 당시 설립된 직후이던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의 직책을 수락하였다.
그는 1933년 유대인을 공직에서 전면 해임하는 전문 공무원 복직을 위한 법률이 독일에서 통과되자 팔레스타인에 최종 이주하고 이름을 히틀러의 것과 같은 "아돌프"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었다. 프렝켈은 열성적인 시온주의자였으며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민족 평의회와 유대인 대표 의회의 회원이었다. 또한 그는 미즈라히라는 종교적 시오니즘 종파의 추종자였다.
업적
[편집]프렝켈은 초기에 쿠르트 헨젤의 p진수와 환 이론을 연구했으나, 이후 집합론과 수학기초론 분야에서 연구했다. 그는 공리적 집합론 분야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프렝켈은 1919년 이 주제에 관한 첫 주요 저서 《집합론 입문》(Einleitung in die Mengenlehre)를 출판한 이후 1922년과 1925년에 에른스트 체르멜로의 공리계를 개선하고자 시도한 두 편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 결과물이 체르멜로-프렝켈 집합론이다.
참고 문헌
[편집]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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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미디어 공용에 아브라함 프렝켈 관련 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 O’Connor, John J.; Robertson, Edmund F. (2003년 10월). “Adolf Abraham Halevi Fraenkel” (영어). 《MacTutor History of Mathematics Archive》.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
- “Adolf Abraham Fraenkel” (영어). 《수학 계보 프로젝트》. 미국 수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