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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군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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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군량(沈君諒, ? ~ ?)은 중국 당나라 전기의 관료로, 당 예종 연간(제1기)에 잠시 재상을 지냈다.

생애[편집]

심군량이 재상으로 있었던 짧은 기간 동안의 활동 이전과 이후의 경력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재상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그는 《구당서》나 《신당서》 중 어떤 한 정사에도 열전(列傳)이 존재하지 않았다.[주 1] 다만, 알려진 것은 그가 호주 무강현(湖州 武康縣. 현 저장성 후저우 시 더칭 현 서쪽 무강진(武康鎭)) 출신이라는 것이었다.[1]

684년, 그해 9월에 있었던 관제 개정 때까지는 중서성(中書省)이었던, 난대(鸞臺) 소속의 사관인 기거사인(起居舍人)으로 있었다. 그 해 10월, 당 예종의 강력한 모후(母后)인 섭정 무측천은 그를 국사 편찬을 담당하는 사관인 저작랑(著作郞) 최찰과 함께 난대 소속의 선임 고문관인 정간대부(正諫大夫. 이전 명칭은 간의대부(諫議大夫))로 승진시키고, 그들을 실질적인 재상의 자격을 지닌 동봉각난대평장사(同鳳閣鸞臺平章事)로 삼았다.[1]

685년 3월, 그와 최찰은 그들의 관직인 정간대부 겸 동봉각난대평장사의 직책에서 파직되었다. 이후 정사에서는 심군량에 관한 더 이상의 기록이 없었으며, 그의 죽음에 관한 어떠한 역사적인 기록도 드러나 있지 않다.[1]

각주[편집]

내용주[편집]

  1. 해당 부분에 관해서는 《구당서》의 목차 내용《신당서》의 목차 내용을 참조하시오.

참조주[편집]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