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하체스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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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마코프스키의 그림 《시애비》(1888년).

스노하체스트보(러시아어: снохачество)는 러시아 제국의 농노 가정에서, 아들이 부재할 때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강간하던 사회현상이다.

러시아 농촌에서 결혼은 가내의 차세대 노동력을 얻는 수단이었기에 여서일곱살 때부터 일찍이 계약결혼이 행해졌다. 예컨대 19세기 탐보프에서는 12-13세 소년이 16-17세 소녀와 결혼하곤 했다. 아들이 너무 어린 틈을 타 젊은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성적으로 접근했고,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자신의 경쟁자로 여겨 학대했다. 집안의 남성들이 여성들을 강간하는 현상은 당시 평민들 사이에서는 흔한 현상이었으며 중요한 손님에겐 보통 가장이 통제하기 쉬운 순서로 딸이나 아내, 여동생 마지막으로 며느리에게 술시중과 밤시중을 시키고 그 시중을 받은 사람은 대가를 지불하였다. 주로 평민 출신인 촌장이나 성직자, 부자들이 받았으며 귀족이나 일부 부유층은 이런 대접을 딱히 선호하지 않았다. 소련 시절까지도 가난한 러시아인들은 의식주나 술과 담배 등이 필요한 경우 자신의 가족을 권력자나 부자한테 보내서 대가를 받는 대중적 문화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러시아의 귀족들은 역사적으로 이런 관행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강경하게 대응하여 칼루가 등 일부 지역에서는 스노하체스트보에 대한 학살과 처벌이 있었다. 그래서 칼루가는 당시 스노하체스트보가 일어나지 않는 몇 안 되는 지방이 되었다고 한다. 주변의 소수 민족들 역시 비슷한 관습이 있었으나 귀족들의 정복전쟁으로 인하여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인들보다도 더 빨리 계몽된 소수 민족들이 많았다.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스노하체스트보를 근친상간의 일종으로 간주했다. 형사법적으로도 강간의 일종으로 여겨져 15-20대의 태형이 선고되었다. 그러나 애초에 음성화된 현상이라 공론화나 신고 자체가 잘 되지 않아서 제대로 근절되지 않았고, 그 실태를 확실히 추적하기도 어렵다.

러시아 지식인들은 스노하체스트보를 러시아 농노제의 후진성으로 인한 악습으로 여겼다. 특히 19세기에 징병제가 실시되면서 청년 남편들이 집을 떠나면서 며느리 강간이 더욱 만연했다. 그러나 1861년 농노해방령 이후로도 스노하체스트보는 여전히 널리 행해졌다. 율사, 범죄학자 블라디미르 드미트리예비치 나보코프는 “근친상간이 거의 일상적 정상(normal everyday)으로서 이루어지는 곳은 러시아 이외에 어디도 없다”고 했다.[1] 물론 이는 좀 과장된 주장이라 근친상간까지는 아니더라도 의외로 이런 비슷한 섹스 문화가 주로 전근대의 인민들에게 흔히 있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산업화 이전에는 이러한 일들이 드물지 않았다.[2][3][4] 심지어 후진적인 과거에 살았던 인민들은 이런 후진적인 문화를 제외하고도 성적 범죄에도 매우 취약했을 수 있다.[5]

각주[편집]

  1. Engelstein, Laura. The Keys to Happiness: Sex and the Search for Modernity in Fin-de-siècle Russia. Cornell University Press, 1992. ISBN 0-8014-9958-5, p. 45.
  2.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2/13/2009021300957.html
  3. https://konas.net/article/article.asp?idx=13803
  4.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8607170032920600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07-17&officeId=00032&pageNo=6&printNo=12556&publishType=00020
  5. “피해자 친구도 불러 성폭행…대전발바리, 피해자 184명인데 무기징역 ('블랙')”. 2022년 4월 1일. 2023년 6월 24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