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스토피오렌티노

세스토피오렌티노
Sesto Fiorentino
세스토피오렌티노은(는) 이탈리아 안에 위치해 있다
세스토피오렌티노
세스토피오렌티노
북위 43° 50′ 00″ 동경 11° 12′ 00″ / 북위 43.833333° 동경 11.2°  / 43.833333; 11.2
행정
국가이탈리아의 기 이탈리아
지역토스카나주
행정 구역피렌체현
지리
면적49㎢
해발55m
시간대CET (UTC+1)
CEST (UTC+2)
인문
인구49,085명 (2007년)
인구 밀도1,000명/㎢
상징
수호성인투르의 마르티노 (축일 11월 11일)
지역 부호
우편번호50019
지역번호055
웹사이트세스토피오렌티노 위키데이터에서 편집하기 - 공식 웹사이트

세스토피오렌티노(이탈리아어: Sesto Fiorentino)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피렌체현에 있는 코무네다.

역사[편집]

이 지역에 인류 정착의 가장 오래된 시기는 중석기 시대(대략 9,000년 전)이다. 에트루리아의 존재는 기원전 7세기 이후로 알려졌지만, 도시는 Sextus ab urbe lapis(도시의 마일스톤에서 6 마일)이라는 이름으로 로마인들이 건설했다. 최초의 교회들은 산 마르티노 피에베와 함께 초기 중세 시대에 지어졌다. 세스토피오렌티노는 피렌체 대교구의 대상이였다. 후에 피렌체 공화국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르네상스시대부터 경제 발전이 이뤄졌다.

1735년 카를로 지노리 백작은 유럽 최초의 자기 공단 중 하나인 마니파투라 디 도차를 세웠다. 현재는 리처드-지노리라는 이름으로, 회사는 여전히 세스토에 위치해 있으며,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자기 생산지이다. 19세기가 끝나갈 무렵, 리처드-지노리에서 훈련을 받은 장인들이 개인 도자기 작업장을 시작하였고, 그중 일부는 공장으로 성장하였다. 현재까지 세스토피오렌티노에는 백 명이 넘는 제작자들이 존재하며, L'Istituto Statale d'Arte 라고 불리는 도자기 제작법을 가르치는 국립학교도 있다.[1][2]

세스토피오렌티노는 1860년 국민투표를 통해 이탈리아 왕국에 합병되었다. 도시는 19세기 후반 노동자 분쟁의 중심지 중 한 곳이였고, 1897년 이탈리아 의회의 두 번째 사회주의자인 주세페 페세티가 선출되기도 하였다. 1899년 토스카나 지역 최초의 사회주의자 시장이 있는 도시가 되었다.

자매 도시[편집]

각주[편집]

  1. “Ceramica Toscana.it, The ceramics tradition in Sesto Fiorentino. 2011년 7월 2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9년 3월 11일에 확인함. 
  2. “Ceramica Toscana.it, L'Istituto Statale d'Arte. 2009년 4월 1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9년 3월 11일에 확인함. 
  3. “Wieliczka Miasta partnerskie” [Polish]. 《Urząd Miasta i Gminy Wieliczka》. 2013년 6월 25일에 확인함. 
  4. www.arso.org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