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 (15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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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徐渻, 1558년1631년)은 조선의 문신이다. 자는 현기(玄紀), 호는 약봉(藥峯), 본관은 대구(大丘)이다. 이이, 송익필의 문인이다.[1]

생애[편집]

경상북도 안동 외가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함재 서해는 퇴계 이황의 문인이었으나 그는 이이·송익필의 제자가 되어 서인이 된다. 생후 1년만에 아버지 서해를 여의고 한성부로 상경, 중부인 서엄의 집에서 생활하였다.

숙부 서엄에게서 글을 배우다가 뒤에 이이, 송익필의 문하생이 되어 글을 배웠다. 그 뒤 선조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좌랑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을 피란시켰으며 그 후, 암행어사·경기도 관찰사·판중추 부사 등을 지냈다. 1608년에는 선조의 임종 당시 유교 7신의 한 사람으로 영창대군의 안위를 부탁받기도 했다. 광해군계축옥사에 연관되어 11년간 유배되었다가 인조반정으로 다시 등용되었다.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왕을 피란시켰다. 그는 이인기·이귀 등과 남지 기로회를 조직하여 역학을 토론했으며, 서화에도 능하였다. 저서로 《약봉집》이 있다.[1]

사후[편집]

서성선생묘경기도 포천시 설운동에 있다. 1976년 8월 27일 경기도의 기념물 제35호로 지정되었다.

저서[편집]

  • 《약봉집》

가족 관계[편집]

  • 할아버지 : 서고(徐固)
    • 아버지 : 서해(徐嶰)
    • 어머니 : 이고(李股)의 딸
      • 부인 : 송령(宋寧)의 딸
        • 장남 : 서경우(徐景雨)
        • 자부 : 성희순(成希舜)의 딸
          • 손녀 : 최연(崔渷)에게 출가
        • 자부 : 성염(成恬)의 딸
          • 손자 : 서원리(徐元履)
        • 자부 : 측실
        • 차남 : 서경수(徐景需)
          • 손자 : 서택리(徐擇履)
          • 손자 : 서형리(徐亨履)
          • 손자 : 서상리(徐祥履)
          • 손자 : 서광리(徐匡履)
          • 손자 : 서홍리(徐弘履)
          • 손자 : 서탄리(徐坦履)
        • 삼남 : 서경빈(徐景霦)
        • 사남 : 서경주(徐景霌)
          • 손자 : 서정리(徐貞履)
          • 손자 : 서정리(徐正履)
          • 손자 : 서진리(徐晉履)
          • 손녀 : 김규(金珪)에게 출가
          • 손녀 : 이명인(李命寅)에게 출가
          • 손녀 : 심항(沈伉)에게 출가
          • 손녀 : 권우(權堣)에게 출가
          • 손녀 : 이만웅(李萬雄)에게 출가

관련 문화재[편집]

각주[편집]

  1. u.a.(n.d.) 《서 성》.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 2017년 9월 15일 확인함.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