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이 다다카쓰 (15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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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이 다다카쓰
일본어: 酒井 忠勝
Sakai Tadakatsu(庄内).jpg
세 잎의 접시꽃
세 잎의 접시꽃
시대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후기 ~ 에도 시대 전기
출생 분로쿠 3년(1594년)
사망 쇼호 4년 10월 17일(1647년 11월 13일)
별명 고고로(일본어: 小五郎)
묘소 야마가타 현 쓰루오카 시
관위 종4위하(일본어: 従四位下), 구나이타이호(일본어: 宮内大輔)
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도쿠가와 이에미쓰
에치고 국 다카다 번
시나노 국 마쓰시로 번
데와 국 쇼나이 번
씨족 사카이 사에몬노조 가(일본어: 酒井左衛門尉家)
부모 아버지:사카이 이에쓰구(일본어: 酒井家次)
어머니:사카키바라 마사요시(일본어: 榊原政吉)의 딸
형제 나오쓰구(일본어: 直次)
다다시게(일본어: 忠重)
가쓰요시(일본어: 勝吉)
노리쓰구(일본어: 了次)
다다토키(일본어: 忠時)
시바타니 마사토키(일본어: 柴谷政時)
아내 정실:도리이 다다마사의 딸
자녀 다다마사(忠当)
다다토시(일본어: 忠俊)
다다쓰네(일본어: 忠恒)
다다쓰라(일본어: 忠貫)
다다모리(일본어: 忠盛)
다다나오(일본어: 忠直)
다다토키(일본어: 忠解)
다다오키(일본어: 忠興)
야마나 쓰네토요(일본어: 山名恒豊)
딸(다테 무네즈미(일본어: 伊達宗純)의 정실)
딸(미조구치 시게카쓰(일본어: 溝口重雄)의 측실)
딸(고이 마쓰다이라 다다토시(일본어: 五井松平忠利)의 정실 → 다키가와 도모이카라(일본어: 滝川具孝)의 처)

사카이 다다카쓰(일본어: 酒井忠勝 (さかい ただかつ) 사카이 타다카츠[*], 1594년 ~ 1647년 11월 13일)는 일본 에도 시대 전기의 후다이 다이묘로, 에치고 국 다카다 번주, 시나노 국 마쓰시로 번주, 데와 국 쇼나이 번의 초대 번주를 역임하였다.

도쿠가와 사천왕의 필두격인 사카이 다다쓰구의 손자로, 사카이 사에몬노조 가문(일본어: 酒井左衛門尉家) 종가(쇼나이 번 가문) 제7대 당주이다. 에도 막부 제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와는 6촌간이다.

생애[편집]

분로쿠 3년(1594년), 사카이 이에쓰구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원복을 할 때 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일본어: 徳川秀忠)에게서 히데타다의 『다다()』의 1자를 하사받아 다다카쓰(일본어: 忠勝)라 이름하였다.

게이초 14년(1609년) 1월 23일, 구나이타이호(일본어: 宮内大輔)에 서임되었다. 겐나 4년(1618년) 3월, 아버지 이에쓰구가 사망함에 따라 가문을 계승하였다. 그러나 상속 후 얼마 지나지 않은 겐나 5년(1619년) 3월에치고 국 다카다 번 10만 석 영지에서 시나노 국 마쓰시로 번 10만 석으로 이봉되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겐나 8년(1622년) 6월 7일에는 모가미 요시토시가 영지를 몰수당함에 따라 데와 국 쇼나이 번 13만 8천 석으로 증가되어 전봉되었다.

쇼나이에 들어와서는 교통의 요충지인 사카타의 가메가사키 성(일본어: 亀ヶ崎城) 대신 다이호지 씨(일본어: 大宝寺氏)의 거점으로 삼고 있던 쓰루가오카 성(일본어: 鶴ヶ岡城)을 근거지로 정하였다. 그러나 가메가사키 성도 존속을 허락받아, 소규모 번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두 개의 성을 가지게 되었다. 다다카쓰는 거점인 쓰루가오카 성 정비에 힘썼는데, 완성을 본 것은 손자인 다다요시 대의 일이었다.

쇼나이 번에 들어온 직후 토지조사에서는 수치 상 생산량보다 실제 생산량을 대폭 늘리는 데에 성공한 반면, 이것이 가혹한 징세로 이어져, 쓰루가오카 성의 공사 등도 있어서, 영내 백성들이 도망치기에 이르렀다. 특히 간에이 11년(1634년)에는 유사 향(일본어: 遊佐郷)의 오키모이리(일본어: 大肝煎)였던 다카하시 다로자에몬(일본어: 高橋太郎左衛門)이 막부에 직소하여 번의 통치는 흔들렸다.

다다카쓰의 만년인 간에이 19년(1642년)이 되어서는, 영지를 몰수당하고 다다카쓰에게 맡겨져 있던 동생 사카이 다다시게가 다다카쓰의 적자 다다마사를 폐적시키고, 자신의 아들 다다히로(일본어: 忠広)로 하여금 쇼나이 번을 계승하게 하려는 사카이 나가토노카미 사건(일본어: 酒井長門守一件)이 발생하였다. 이때 필두가로 고리키 기헤에(일본어: 高力喜兵衛) 등이 추방되었고, 다다마사도 폐적될 뻔 하였으나, 그 직전인 쇼호 4년(1647년) 10월 17일, 다다카쓰는 향년 54세로 사망하였고, 로주 마쓰다이라 노부쓰나의 판정에 따라 다다마사가 번주직을 계승하게 되었다.

전 임
사카이 이에쓰구
제7대 사카이 사에몬노조 가문 종가
1618년 ~ 1647년
후 임
사카이 다다마사
전 임
사카이 이에쓰구
제2대 다카다 번 번주 (사카이 사에몬노조 가문)
1618년 ~ 1619년
후 임
마쓰다이라 다다마사
전 임
마쓰다이라 다다마사
마쓰시로 번 번주 (사카이 사에몬노조 가문)
1619년 ~ 1622년
후 임
사나다 노부유키
제1대 쇼나이 번 번주 (사카이 사에몬노조 가문)
1622년 ~ 1647년
후 임
사카이 다다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