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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CHOIMISUN/연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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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포그래피 표준화[편집]

타이포그래피(Typography)는 인쇄물의 텍스트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글, 그림의 사이의 조절 등 가독성에 대한 요구를 받는 분야이다.[1] 17세기 말 부터 인쇄 관련 지식이 전파되면서 인쇄물의 대량생산이 시도되었다. 이때 일정한 대량생산을 위해 최선의 가독성을 가져가면서 작업효율을 빠르게 높이기 위해 타이포그래피의 전형화, 규격화가 필요했다. 공정중 인쇄소와 활자제작소 사이에 호환해야할 공통 명명법과 표준형이 필요했고,이후 표준화의 필요성을 느낀 여러 나라에서 타이포그래피를 체계화 또는 질서를 부여하려는 시도가 일어났으며 그러한 시도들은 인쇄술이 현대화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2]

프랑스 : 타이포그래피를 표준화하려는 시도[편집]

왕의 로만체(Romain du Roi)[편집]

1692년 프랑스 루이 14세는 프랑스 왕립 인쇄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글꼴을 개발하라는 시행령을 내렸다. 이를 위해 프랑스 한림원에선 서체를 위한 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위원회는 여태없던 새로운 시도를 위해 이전에 쓰이던 활자와 글자꼴에 대해 많은 연구를 진행하였다. 연구를 기초로 각 단을 6단으로 세분화해 정사각형 2,304개로 이루어진 그리드를 사용해 활자의 비례를 결정하였다. 그 이후 23년에 걸쳐 동판에 활자를 새겨 넣어 완성하였다. 동판에 새겨진 초기 서체를 근거로 왕실 인쇄소의 출판물을 제작하는데 사용하였다. [3]

또한 한림원에선 서체외에 왕립 인쇄소 활자 비례표를 제출하며 인쇄술의 체계적 요소를 도입을 시도한 사례가 있다. 도표에 활자의 명칭별로 7.5에서 192단 까지 단위값을 부여하였다. 하지만 당시 일반 단위값들과 호환되지 못하였고, 이후 수정을 거쳐 1695년 리뉴(ligne, 프랑스식 인치인 '푸스'[pouce]를 12로 나눈 단위)와 호환되었다. 이 도표는 「활자 종류 및 크기 계측도」에 기록되었다. 도표에는 활자의 크기, 엑스자의 높이, 대문자의 높이, 디센더의 길이, 활자부위는 물론 활자면에서 아래의 여백까지 다양한 요소를 보여주며 한림원이 타이포그래피를 심도깊게 이해하며 실용적으로 사용하려했던 시도를 엿볼 수 있다.[2]

피에르 시몽 푸르니에(Pierre-Simon Fournier)포인트법[편집]

피에르 시몽 푸르니에(Pierre-Simon Fournier)는 활자주조가와 인쇄업자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와 오랫동안 파리의 르베 활자주조소에서 일하였다. 그러다 1730년에 파리에서 독자적인 활자제작소를 세우게된다. 이후 1736년에 첫 표본을 발행, 1737년에 활자 비례표를 펴내며 활자주조가로서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1737년에 푸로니에는 활자 몸통값의 체계화를 정립해 제안 한다. 제안 내용은 1리뉴를 '6포인트'로 정리하며 프랑스 단위값 푸스(pouce)와 리뉴(ligne)에 함께 연계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초기에는 활자가 표준화 되있지 않아 출판물의 이름에서 유래하여 포인트를 설정해 체계를 시도하였다. 푸르니에가 정립을 시도한 체계화는 많은 활자주조소에 적용되기까지 오랜시간이 걸렸지만 이후에는 실용적인 면에서 큰 영향을 미쳤다.

1742년에는 <인쇄용 문자 표본>을 출간하는데 앞서 전제한 내용들과 함께 활자를 보통,중형,대형으로 나누며 패밀리 개념을 처음 제안한 내용을 볼 수 있다. 말년에는 푸르니에의 최대업적이자 타이포그래피 기술 집약본인 《타이포그래피 메뉴얼 Manual Typographic》이 발행된다. 총 4권으로 구상 되었지만 그가 죽기 전까지 발행 된 책은 2권이다. 《타이포그래피 메뉴얼 Manual Typographic》에는 단순화된 푸로니에의 포인트법이 실려있으며, 활자주조의 이론과 실제에 대해 자세하게 알 수 있다.[2][3]

미국 : 인쇄술 혁신과 체계화[편집]

넬슨혹스(Nelson Hawks)의 활자크기 표준화[편집]

1775년 프랑스의 타이포그래피 체계화 시도는 다른 유럽 국가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그보다 늦은 19세기 후반부터 가속화되기 시작하였다. 19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오트마어 메르겐탈러(Ottmar Mergenthaler)가 발명한 활자를 한 행식 주조하는 방식의 식자기 라이노타입(Linotype), 톨버트 랜스턴(Tolbert Lanston)이 발명한 활자를 한글자씩 낱개로 주조하는 식자기 모노타입(Monotype)이 나타나면서 인쇄영역이 크게 발전하였다. 인쇄물의 수요가 증대되며 타이포그래피의 정확한 계측이 가능해진 시대였다. 또한 한 행식 주조하는 라이노타입보다 낱자 수정이 가능해 정확한 계산이 가능한 모노타입으로 인해 후에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가 나타나면서 원거리에서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것을 보면 표준화에 큰 영향을 준 발명이라 할 수 있다.

처음 미국은 푸르니에 1746년안 포인트 법을 채택하여 사용하였지만 일반 도량형과 완벽하게 연계되지않아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그 이후 대규모 활자주조소였던 마더 루스사(Marder, Luce, & Company)의 샌프라시스코 사무실을 맡고 있는 사원 넬슨 혹스(Nalson Hawks)에 의해 활자 몸통의 표준화가 시도되었다. 넬슨은 인쇄소와 소통하는데 비표준화된 활자때문에 생기는 일들을 계속 맞닥드려야 했다.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넬슨은 활자크기의 표준화의 체계를 고안해냈고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1886년 미국에서 완전히 받아들여졌다. 이후 1898년 영국에서도 정식으로 채택되어 사용되었다.

독일 : 독일 공업 표준 위원회 (Deutsches Institut for Normung, DIN)[편집]

  1. 《김병조.타이포그래피 공간의 수직적 질서》
  2. 《로빈 킨로스.현대 타이포그래피.최성민.작업실유령,2020》
  3. 《로빈 도드.타이포그래피의 탄생.김경선.홍디자인,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