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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ByoungHyun Chun/연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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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웨일즈

님 웨일즈의 본명은 헬렌 포스터 스노우(1907.9.21 ~ 1997. 1.11) 이다. 신문기자이자 시인이며 계보학자로 활동했다. 님 웨일즈라는 필명으로 여러 권의 저서를 내었으며, 오랜 기간을 격변하는 아시아에서 보내면서 중국과 한국에 관하여 많은 글을 집필하였다.[1]

생애[편집]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출생이다. 컬럼비아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32년 마오쩌둥에 대한 저술 『중국의 붉은 별』로 유명한 에드가 스노우를 만나 결혼하여 부부가 중국 각지를 보도여행(報道旅行)하기를 10년, 특히 국공분열(國共分裂) 후 중국 지역의 수수께끼를 최초로 푼 부부의 현지답사 활동은 주목을 끌었다. 특히 장지락(張志樂)의 전기 《아리랑》(1941)으로, 일본식민지배와 민족독립운동을 알리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2] 지난 30-40년대 韓國및 中國 관련 저술로 널리 알려진 "아리랑"의 작가 헬렌 포스터 스노우가 지난 11일 美國에서 사망했다고 그녀의 日本 친구들이 13일 전했다. 향년 89세. 17년간의 결혼 생활끝에 49년 이혼한 스노우 여사는 고향인 미국 코네티컷으로 돌아온 뒤에는 족보학에 몰두해 뉴 잉글랜드가 영국의 식민지로 바뀌는 과정을 천착한 역사저술을 남기기도 했다.[3]

활동[편집]

평가[편집]

극동지역에 머무는 동안 스노우는 남편의 저술활동에 조력하는 한편으로 한국과 중국의 항일 투쟁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생생한 서술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 후보에 두 번 오르기도 했다.[1]

저서[편집]

《안에서 본 적색(赤色) 중국》(1938), 《중국노동운동》(1945) 등이 있다. [2]

  1. 님 웨일스, 김산 (2005,8,15). 《님 웨일즈 저자 소개, 인터넷 교보문고》. 동녘. 
  2. “님 웨일스[Nym Wales], 두산백과”. 《두산백과, doopedia》. 
  3. "아리랑"의 작가 님 웨일스 사망, 연합뉴스”. 《연합뉴스》. 

에드거 스노우

에드거 스노(Edgar Snow, 1905년 7월 17일 ~ 1972년 2월 15일)또는 에드거 스노우미국저널리스트이다. 그는 특히 서방 기자로는 최초로 중국공산당의 본부가 있던 산시 성 바오안(宝安)을 방문취재하여 저서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Over China)를 출판(1937년), 서방에 마오쩌둥이 알려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생애[편집]

미국 중부의 켄사스 시티에서 1905년 태어난 에드가 스노우는 스물 세 살의 나이로 중국을 갔다가, 이미 반은 서구 열강의 침탈로 말미암아 식민지가 되어버린 중국의 어지러운 현실에 깊은 연민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1]교외의 농가에서 출생하여 미주리대학교(1925~1926)와 컬럼비아대학교(1927)에서 수학하였다. 학생시절에 캔자스시티의 지방지 《스타》의 통신원으로서 신문기자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력[편집]

1928년에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차이나 위클리 리뷰[密勒氏評論]》의 부편집장(副編輯長)으로 활약하면서 중국문제 연구에 전념하였다. 1934∼1935년에 옌징대학[燕京大學] 강사로 출강하고, 동시에 《뉴욕 선》(1934∼1937), 《런던 데일리 헤럴드》(1932∼1941) 등의 잡지 특파원으로 극동·중동의 여러 나라를 순방하였다.[2] 그의 부인이었던 헬렌 포스터 스노우. 다른 이름으로는 님 웨일즈로 우리에게 더 알려진 그녀가 당시 조선 사회주의 민족 독립 혁명가 김산과 1937년 만나 “아리랑의 노래”를 썼던 것은 이렇게 보면 우연이 아닌 듯 합니다. 두 젊은 벽안(碧眼)의 부부가 <아시아의 고난>에 나름대로 참여했던 셈입니다. [1] 이어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의 부편집장으로서 아시아와 유럽의 전시 및 전후 사건들을 보도했으며 중국, 인도, 소련 전문가로서 명성을 쌓았다.[3]

저작 활동으로는 1932년에 처녀작 《극동전선(極東戰線)》을 출판하고, 1936년에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옌안지구[延安地區]에 들어가 마오쩌둥[毛澤東]과 회견하고 저술한 《중국의 붉은 별》로 중국 공산당의 실태를 소개하였다.

중일전쟁(中日戰爭) 발발 이후에는 《아시아 전쟁》(1941)을 출판한 후, 본국으로 돌아가 평론활동을 계속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종군기자로 중국은 물론, 아프리카·인도·소련 등을 방문, 《우리편의 민중》(1944) 《소비에트세력의 형태》(1945)를 출판하였다. 1960년1964년 다시 중국을 방문하여 마오쩌둥저우언라이와 회담했다. 마오쩌둥·저우언라이[周恩來] 등과 회견하고 중국의 실정을 소개하였다.[2] 1969년에도 방문하여, 중국 지도부로부터 "닉슨 대통령이 방중한다면 우리는 그를 환영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한창이었던 문화대혁명 와중에서 마오의 개인숭배가 횡행하고, 혁명에 참가했던 동지들에 대한 숙청을 보고 환멸감을 갖기도 했다.

저서[편집]

모택동 자전[4], 중국의 붉은 별 - 상[5]

중국의 붉은 별 [6][편집]

당시 모든 외국인 특파원은 상하이 등 국민당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에서 취재활동을 했다. 마오쩌둥이 있는 홍군 지역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안전한 취재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에드거 스노우는 추천장 한 장을 들고 마오쩌둥을 찾아간다. 우여곡절 끝에 마오쩌둥과 마주한 에드거 스노우는 온갖 추측이 난무하던 홍군의 지도자에 대한 취재를 시작한다. 어린 시절부터 국민당에 가입하기 까지 공산당원이 되는 과정, 그리고 대장정의 과정 등을 마오쩌둥에 의해 생생하게 기록한다. 마오쩌둥 뿐만 아니라 저우언라이 등 당시 중국 공산당을 지도하던 인사들과 만나면서 그들의 야이기를 전하고 보통 농민들의 이야기도 생생하게 담겨있다. 마오쩌둥은 조선이 중국의 식민지 였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데, 에드거 스노는 주석으로 '사실 조선은 중국의 식민지가 아니라 1895년 청일전쟁에서 패배하기 전까지 중국이 종주권을 주장한 인접국이었다.'는 말을 달아놨다. 이런 태도가 마오쩌둥과 공산당에 대한 찬가로 변모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1. 김민웅 프레시안 기획위원. “에드가 스노우, 그리고 후진타오까지, 프레시안”. 《프레시안》. 
  2. “에드거 스노[Edgar Parks Snow], 두산백과”. 《두산백과, doopedia》. 
  3. “에드가 스노우, 교보문고 & 해외저자사전”. 《해외저자사전》. 
  4. 에드거 스노 (2001,12,01). 《모택동 자전, 에드거 스노》. 평민사. 
  5. 에드거 스노 (1995,02.28). 《중국의 붉은 별 - 상, 인터넷 교보문고》. 두레. 
  6. 에드거 스노 (2013,4,30). 《중국의 붉은 별, 인터넷 교보문고》. 두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