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Revi C./작업장/스페인
스페인의 역사 Historia de Españ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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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스페인의 역사는 1975년 11월 20일에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사망으로부터 촉발되었다. 그의 사망 이후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즉위식이 거행되었고, 입헌군주제가 성립되었다. 1978년에, 현재의 1978년의 스페인 헌법이 서명되었고, 현재의 자치권 (autonomías)이 정의되었다.
선거로의 길 (1975년 ~ 1977년)
[편집]프랑코의 사망 이후, 불확실성과 정치적 상황 속에서 다음 세 가능성 중 하나가 일어날 수 있었다:
- 이전의 독재정권의 지속. 이 아이디어는 프랑코 정권의 군인 관료들 ("벙커"로 불려짐)과 Movimiento Nacional의 전문가들에 의해 지지받았다.
- 이전 시스템에 대한 완벽한 점검. Junta Democráctica 당의 일부가 지지했다. 하지만 군부의 반발을 우려한 다른 당원들은 이전 정권의 인정을 통한 연립정권의 수립을 꾀했다.
- 이전 시스템에 대한 점진적인 점검과 입헌군주제의 성립. 이 아이디어는 적은 지지자를 갖고 있던 왕이 옹호했다.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즉위식 연설에서 왕은 입헌군주제로서의 개혁에 대한 가능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고위직 관료들이 권력을 내려놓아야 했다.
왕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은 그의 옛 선생 페르난데즈 미란다를 스페인 의회의 의장과 Consejo del Reino의 대표로 임명한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왕에게 의회에 대한 통제권과 이전 정권을 법률의 틀 안에서 해체하는 것을 지원헀다. 페르난데즈 미란다는 개혁의 확고한 지지자였기 때문에 팔랑헤당의 당원들로부터 경멸을 받았다.
새로운 정부는 마뉴엘 프라가와 같은 많은 "개혁론자"를 포함했다. 마뉴엘 프라가는 그로부터 비켜가길 원했던 반대자들과도 토론하곤 했다. 그는 왕과는 다르게 민주주의로의 "점진적인 진화"를 선호했다. 카를로스 아리아스 나바로는 지속적으로 왕의 개혁에 대한 의지를 막으려고 했기 때문에, 왕은 그가 벙커로부터 압박을 받았다고 생각했고, 그를 제거해야 했다.
왕이 프랑코 시절의 관련 법률 때문에 카를로스 아리아스 나바로를 해고할 수 없었기 때문에, 1976년 4월 26일의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그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1976년 6월에, 아리아스는 사표를 제출했다. 아돌포 수아레즈가 아리아스의 정부수반 직위를 1976년 7월 3일에 승계했다. 수아레즈는 팔랑헤당 출신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옛 정권의 벙커와 개혁론자 모두로부터 지지받지 못했다. 마뉴엘 프라가가 새 정부에 참여하는 것을 거절한 이후에, 덜 알려진 정치인들이 새 내각을 형성했다. 아돌포 수아레즈는 왕의 개혁 정책의 확고한 지지자였다.
이러한 행위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구 정권의 정치범들에 대한 사면은 적었다. 이후에, 수아레즈는 의회를 재구성하여 선거를 위한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고자 했다. 수아레즈의 새 정부는 1977년에 정치 개혁법을 제정했다. 이 법률은 의회를 350명의 하원과 201명의 상원으로 된 양원제를 구성하도록 했다. 왕과 수아레즈의 압력 끝에, 의회는 그들의 종말에 서명하고 새로운 개혁을 받아들였다. 이 새 법률은 국민투표에 부쳐졌고, 94%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이 법률은 정부가 총선거를 실시하도록 지명했으나, 먼저 정당을 설치해야 했다. 정당은 직후 정당의 강령이 법률을 준수해야 한다는 조건 하에 합법화되었다. 1977년 3월 23일, 선거법이 관보에 공표되었고,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3월 17일에는 대규모 사면이 있었다.
폭력도 흔했는데, 가장 두드러진 폭력 사건은 1977년 아토차 학살 사건으로, 스페인 노동당의 7명의 법률가가 극렬 우익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촉발된 사건이다. 좌익의 폭력 행위도 있었는데, ETA가 대표적이다. (ETA는 바스크의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무장 단체이다.) GRAPO라는 모택동주의자 단체나, MPAIAC, 카나리아 독립주의자들도 있었다.
스페인 공산당은 성 금요일 (4월 9일)에 합법화되었는데, 군의 반응을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이 승인은 해군장관과 육군장관의 사임으로 이어졌다. 공산당 서기장 산티아고 카릴로는 공화국과 공화국기의 포기를 선언했다.
5월 14일에, 돈 후안 데 보본은 그의 권한을 후안 카를로스 1세를 위하여 사직한다고 자젤라 지에 밝혔다. 직후, 페르난데즈 미란다는 아돌포 수아레즈와의 정치적 견해차로 사직했다. 페르난데즈 미란다는 미국과 비슷한 좌익과 우익 정당이 권력을 나눠 갖는 식의 시스템을 원했다.
1977년 6월 15일에 열린 선거에서, 다음 정당들로 스페인 하원이 구성되었다.
- 민주 중앙 연합 (UCD, Unión de Centro Democrático), 수아레즈의 중도 우익 정당이 166석을 가져갔다.
- 스페인 사회당 (PSOE, Partido Socialista Obrero Español), 중도 좌익 정당이 118석을 가져갔다.
- 스페인 공산당 (PCE, Partido Comunista Español), 좌익 정당이 20석을 가져갔다.
- 시민 연합 (AP, Alianza Popular), 전직 팔랑헤당 출신 마뉴엘 프라가가 이끄는 우익 정당이 16석을 가져갔다.
- 카탈루냐 민주당 (PDC, Pacte Démocratic per Catalunya), 카탈루나 중도 우익 정당이 11석을 가져갔다.
- 바스크 민족주의자당 (PNV, Partido Nacionalista Vasco), 중도 우익 바스크 정당이 8석을 가져갔다.
- 좌익 바스크, 카탈루냐 독립주의 정당, 기독민주당, 극좌 정당 등이 합해서 11석을 가져갔다.
1978년의 스페인 헌법
[편집]총선거 이후에, 새로운 스페인을 위한 새로운 헌법의 개정이 불가피했다. 1931년 헌법은 공화국을 위한 것이었고, 이제 후안 카를로스 1세가 프랑코에 의해 왕으로 지명된 만큼, 새로운 헌법은 불가피했다. 선 헌법 초안이 바스크 민족주의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참여한 위원회의 토의를 통해 완성되었다. 수개월간의 토론 끝에, 여러 정당 간의 총의가 모아졌고, 헌법이 의회에 비준을 위해 보내졌다. 이후에, 1978년 12월 8일에 국민투표에 부쳐졌고, 인구의 58%의 찬성과 8% 반대, 33% 기권에 의해 승인되었다. 후안 카를로스 1세는 12월 2일에 새 헌법에 서명했고 1979년 1월 1일에 효럭을 개시했다.
새 헌법은 역사적으로 오래된 공동체에 자치주를 허용했다. 자치주를 설립한 첫 주는 바스크와 카탈로냐였고, 이후에 다른 지역이 참여하면서, 현대적인 스페인 지도를 만들어갔다. 이것은 타협이라는 이유로 군부와 우익 단체에 의해 비판받았고, 현재도 이어지는 주장이다.
UCD의 해산과 23-F (1979-1982)
[편집]1978년 11월, 정보기관은 "국가 위기 구난"정부를 구성하고 수아레즈를 체포하는 새로운 쿠데타에 대한 경고를 날려 왔다. 이러한 내용은 갤럭시아 작전으로 알려져 있었다. 1979년 3월에 새 선거가 행해졌고, 스페인 의회에 다음과 같은 의석을 가져왔다:
- UCD: 168석
- PSOE: 121석
- PCE: 23 석
- CD: 9석
- CiU: 8석
- PNV: 7석
- 기타: 14석
CD는 프라가의 시민 연합의 새로운 이름이고, CiU는 카탈로냐 정당들의 연립정당이었다.
UCD는 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연립 정당이었는데, 현 정부의 아돌포 수아레즈가 기반이 되어 창당한 정당이기 때문이다. 이 연립정당은 이혼 법률과 자치주에 대해 파당별로 다른 의견을 보이기 시작했다. 반대 파당과 반대 정당의 압박은 아돌포 수아레즈가 정부수반에서 사퇴할때까지 지속되었다. 수아레즈는 1981년 7월 25일에 TVE에 공개적으로 그의 사임을 발표했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놀랄 만한 일이었는데, 수아레즈가 그러한 일을 하리라고는 예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UCD was a conglomerate party with many factions, as it was built from the existing government by Adolfo Suárez. This conglomerate started showing divisions with the arguments about laws on divorce and especially in the autonomous statutes. The pressure from opposing factions and from the opposition wore down Adolfo Suárez until he resigned from the party and also resigned from his position as President of the Government. Suárez publicly announced his resignation in TVE, on 25 June 1981. This was a surprise for most people, as it was a completely unexpected move from Suárez.
The next UCD congress in February took place amongst great tension. Leopoldo Calvo Sotelo was voted candidate for the Presidency of the Government for UCD and was to be invested President on 23 February.
On the day of his investiture, Antonio Tejero broke into the Congress and held all deputies at gunpoint. The army's discontent was caused because of the autonomous statutes which they thought compromised Spain's unity. However, this coup d'état failed because the King called for the military powers to obey legal civilian authority. The next morning, Tejero surrendered, and the democracy was saved.
In October 1981, entry to NATO was approved in Congress with the open opposition of left-wing groups. The Socialist Party PSOE, the main opposition party, promised a referendum on NATO if it (PSOE) got into government. New elections were called in which the UCD suffered a heavy loss, giving PSOE a huge majority in both the Senate and the Congress of Deputies. PSOE during this time also abandoned Marxist ideology in favour of more moderate tendencies. The massive gain of CP, led by Manuel Fraga, was caused by the disappearance of UCD from the political spectrum.
Results for Congress of Deputies:
- PSOE: 202 seats
- CP: 106 seats
- CiU: 12 seats
- UCD: 12 seats
- PNV: 8 seats
- PCE: 4 seats
- Others: 6 seats
The PSOE was the first party to rule over Spain with a majority in the history of Spain's democracy. The transition to democracy was said to be completed here because a centre-left party took over the government from a centre-right party with no consequences.
Spain under Felipe González (1982–1996)
[편집]Felipe González became Prime Minister (Presidente del Gobierno in Spanish) after PSOE's victory in the elections. PSOE at that time, though it had renounced to its Marxist ideology, still had a populist current, led by Alfonso Guerra, as opposed to a neo-liberal one, led by Miguel Boyer. This would cause divisions in the party which would not show up until years later.
In González's first term, several measures were adopted, but with moderation – something that contrasted with their program, which was much more radical. The main bills passed in this period were legalized abortion, increased personal freedoms, and a reorganization of the education in Spain. In addition, however, this period marked the appearance of the Grupos Antiterroristas de Liberación (GAL), mercenary counter-terrorist forces organised and paid by the government which assassinated various terrorists, and the expropriation of RUMASA, a trust operated by a member of Opus Dei. Also during this period, Spain joined the European Economic Community, and a referendum (as promised by PSOE) was called on Spain remaining in NATO on 12 March 1986. This time, however, the socialists campaigned in favour of NATO, the parties to the left of PSOE campaigned against NATO, and the right, led by Manuel Fraga, campaigned for abstention. In the referendum, the Spanish population opted to remain in NATO with a 52.2% vote in favour, but with considerable abstention.
Elections were called on 28 June 1986 for both chambers.
- PSOE: 184 seats
- CP: 105 seats
- CDS: 19 seats
- CiU: 18 seats
- IU: 7 seats
- PNV: 6 seats
- HB: 5 seats
- Others: 6 seats
PSOE maintained its majority in both chambers, but it lost some seats, and CDS, the new centre party led by Adolfo Suárez, became the third party. Izquierda Unida (IU) is a conglomerate of left-wing parties led by the PCE. Lastly, Herri Batasuna (HB) is a Basque separatist political party, recently banned for its ties to ETA.
PSOE's majority meant it could pass laws without the need for consensus between all the political parties. So, there was great stability, but there was no real parliament debate. There was practically no political opposition, but a social opposition started growing in the end of the 80s, consisting of two fronts: the student front, and the syndicalist front. This last front exerted a great amount of pressure, even calling for a general strike on 14 December 1988, due to the liberalizing of the economic policies. On this day, eight million Spaniards did not go to work, which accounted for 90% of the total work force in Spain. Faced with these problems, PSOE had to call for elections one year earlier, on 29 October 1989.
- PSOE: 175 seats
- PP: 107 seats
- CiU: 18 seats
- IU: 17 seats
- CDS: 14 seats
- PNV: 5 seats
- HB: 4 seats
- Others: 10 seats
PSOE stood just on the border of the majority now (175 seats of 350), but it was able to pass laws because of the absence of HB's deputies. People's Party (PP) was the new name for CP, and it became consolidated as the second largest party. From 1991, PSOE started losing its urban vote in favour of PP, adding this to various scandals: the FILESA case, an organization built to illegally raise funds for PSOE, influence peddling and prevarication cases, internal divisions between the populist and the liberal currents started showing up. Under these conditions, elections were called on 6 June 1993 with the following results:
- PSOE: 159 seats
- PP: 141 seats
- IU: 18 seats
- CiU: 17 seats
- PNV: 5 seats
- CC: 4 seats
- Others: 6 seats
PSOE managed to achieve a relative majority despite all the corruption and scandals. However, it had to draw a deal with CiU, a Catalan centre-right party. This caused frequent tensions and accusations from the opposition that PSOE was giving more money and power to Catalonia in exchange for CiU's support. Coalicion Canaria (CC) was formed by a conglomerate of liberal Canarian regionalist parties.
This legislature was a failure due to the vulnearbility to the continuous attacks from the opposition and new corruption scandals – the most famous one was the Guardia Civil's director, Luis Roldán. Facing this, PSOE had to call for early elections on 3 March 1996.
- PP: 156 seats
- PSOE: 141 seats
- IU: 21 seats
- CiU: 16 seats
- PNV: 5 seats
- Others: 7 seats
PP won these elections and was able to enter the government after acquiring support from the various Catalan, Canarian and Basque groups.
Spain under José María Aznar (1996–2004)
[편집]José María Aznar became prime minister of Spain thanks to the support from CiU, PNV, and CC. During his first term, his main objective was an economic policy to allow convergence with the euro, and several public enterprises were privatized.
Elections were held in Spain on March 12, 2000, and the PP obtained a majority of seats:
- PP: 183 seats
- PSOE: 125 seats
- CiU: 15 seats
- IU: 8 seats
- PNV: 7 seats
In his second term, without needing the support from the autonomic parties, Aznar was able to apply his party's program more freely, but not without controversy.
Again, the government's focus was on economy, and some of its reforms were strongly criticized by the syndicates. The economic policy caused an increase in the price of butane, gasoline, and tobacco, that led to an increase in the price of other goods that increased with the arrival of euro.
The most controversial aspects of this second term were:
- The 2002 general strike (due to the labour policies)
- The reform of university studies by decree
- The application of the National Hydrologic Plan (which included several transfers, being the most important the one from the river Ebro to south-eastern Spain).
- The ill-managed accident of the oil carrier Prestige, which caused a big oil spill in the Galician coast.
- Support of the US-lead Iraq war against public opinion, even sending soldiers there.
Aznar is also said to have had a more tense relationship with the King, unlike his predecessor, whose friendship with the King still lasts today.
One of the most peculiar events of his second term was when Spain and Morocco had some disagreements about Perejil Island, an island with an area less than a square kilometer, near the coast of Morocco. Morocco brought some forces to that island. After some days of diplomatic conversations, Morocco didn't withdraw the few troops that were there. Finally, Spain brought a helicopter and some troops to the island, and drove them back to Morocco.
Even though Spanish laws do not limit the terms in office of a President, Aznar voluntarily decided to not run for a third term. Interior Minister Mariano Rajoy was elected by his party as new leader. While initial polls gave him good chances of winning, the campaign's last weeks and the Madrid train bombings on March 11, 2004, just three days before elections took place, changed the tide of the vote.
Internally and outwards, the attacks were seen as the result of Spain support to the US in the Iraq war.
- For more information, see Spanish general election, 2004
The election was held on March 14, 2004 and PSOE, led by José Luis Rodríguez Zapatero, won a plurality of seats in Congress of Deputies, and was able to form a government with the support of minor parties.
- PSOE: 164 seats
- PP: 148 seats
- CiU: 10 seats
- ERC: 8 seats
- PNV: 7 seats
- IU: 5 seats
- CC: 3 seats
- BNG: 2 seats
Spain under José Luis Rodríguez Zapatero (2004–2011)
[편집]Because he failed to secure a majority in the 2004 election, José Luis Rodríguez Zapatero became prime minister with the support of IU, Republican Left of Catalonia (ERC) and Canarian Coalition (CC). This is not a coalition, however, and each law must be individually negotiated.
As promised during the electoral campaign, Zapatero removed all Spanish soldiers from Iraq. His government also approved a same-sex marriage law for Spain. This law is supported by the majority of the Spanish population. However, the Roman Catholic Church and social conservatives, many of whom are associated with the Partido Popular, strongly oppose it.
Unlike his predecessor, in the international arena Zapatero is more supportive of the United Nations.
His relations with the United States have become strained following the withdrawal of Spanish forces from Iraq, and the new relationship Zapatero has built with two of the Iraq War's most vocal critics, France and Germany, until those countries elected new leaders. As Zapatero had vocally supported the incumbents, he strained relationships with the new leaders.
- For more information on Zapatero's policies as President, see the José Luis Rodríguez Zapatero article.
Society
[편집]External li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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