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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권달우/연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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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박해충(朴海充, 1928.12.12.~2005.2.21.)은 대한민국정치인이다. 본관은 밀양, 고향은 안동이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선거 안동군선거구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아 처음 당선된 이후, 5선(제5·8·9·10·1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신민당 사무총장과 부총재, 한·일의원연맹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그의 유해는 국립이천호국원에 안장되어 있다.


이력

박해충은 한국전쟁 이후 유진산, 신도환 등 야권 인사들과의 인연을 시작으로 정치계에 첫발을 들였다. 박해충은 고향 안동에서 제3대·4대 총선에 출마했다가 모두 낙선했고, 제5대 총선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아 출마해 세 번의 도전 끝에 당선됐다. 당시 만 31세의 젊은 나이로 당선된 박해충은 야당 내 김영삼(부산), 박준규(대구) 등과 영남의 3총사라 불리며 주목을 받았다. 신민당 내 파벌인 김영삼·고흥문계로 분류되지만, 이후 김영삼과 정치적으로 결별하면서 야당 내에서 파벌과 계보를 따지지 않고 독자적인 정치 행보를 걸었다.

70년대 유신정권 아래에서도 야당 소속으로 총선에 연달아 당선되면서 보수색채가 강한 경북 안동에서 소위 야당 열풍을 이끌었다.

10.26사태 이후 정권을 잡은 군부세력에 의해 정치활동 규제자로 묶여 연금 및 출마 제한을 당했고, 1984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된 이후 1985년 제12대 총선에 민주한국당 전국구의원(현 비례대표)으로 나서 선출됐다.

박해충은 1988년 제13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이후 곧바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학력

안동초등학교 졸업(추정)

대구공업학교 졸업(현 대구공고)

경희대학교 법학과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