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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주제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편집]
태왕 편집을 여러번 만지셨던데 딱히 편집 이유도 없으시고 아무런 말씀도 안 남기셔서 일단은 되돌려놓겠습니다. 혹시 이와 관련하여 풍부한 백: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있으시다면 제 토론 페이지에 말씀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항상 좋은 일이 많으시기를 바랍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4월 18일 (토) 08:45 (KST)
태왕 칭호에 대한 국내외 학자들의 평가[편집]
중국 베이징대 중국고대사 연구중심(센터) 뤄신(羅新) 교수 = 그는 '고구려 왕호제도(王號制度)에 관한 몇 가지 견해'라는 제목의 발제문에서 김부식의 '삼국사기' 등 문헌자료와 광개토대왕비를 토대로 고구려의 왕호제도를 분석했다.
뤄 교수에 따르면 고구려 왕족과 지배층이 사용한 언어는 고대 만주-퉁구스어에 비교적 가까우며, 알타이(Altaic) 언어 범주에 속해 있거나 그와 인접해 있다.
뤄 교수는 "알타이 계통의 전통적인 정치명호(政治名號)는 이름(王名)과 칭호(官稱.title) 두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면서 고구려는 최고지도자를 알타이어 계통에서 수령을 뜻하는 '가(aka/akan)'로 칭했고, 후한(後漢) 중후기부터 중국식 명칭인 '왕'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또 광개토대왕의 연호로 알려진 영락(永樂)은 광개토대왕 생전의 왕명이었으며 태왕(太王)은 고구려 국왕의 칭호였다고 주장했다. "광개토왕이 즉위할 때 '영락태왕'이라는 칭호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며 '영락태왕'은 생전의 정식 칭호였다"는 것이다.
뤄 교수는 또 광개토대왕처럼 고구려 왕들은 생전에 각기 자신만의 고유 왕명이 있었고, 고구려 고유 언어로 불렸는데 이를 한문으로 기록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명칭이 생겨난 것으로 추정했다. 사후 시호(諡號) 역시 모두 고구려 언어로 불렸으며 이후 한문으로 기록됐다고 분석했다.
금석문 정보 중 태왕 부분을 대왕으로 해석해놓은 사례[편집]
광개토대왕비 - 영락태왕 -> 영락대왕
충주 고구려비 (중원 고구려비) - 고려태왕 -> 고려대왕[1]
- 호무명그릇 - 호태왕 -> 호대왕[2]
해당 학설이 옳든 그르든 정규 학계 내에서 활발하게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항에 비주류를 다시면 안됩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6년 4월 2일 (토) 19:52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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