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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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ámi) Sám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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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인구 | |||
| 80,000 - 100,000 명 이상 | |||
| 인구분포 | |||
| 37,890–60,000[1][2] | |||
| 14,600–36,000[2] | |||
| 9,350[3] | |||
| 1,991[4] | |||
| 136 | |||
| 언어 | |||
| 사미어군, 노르웨이어, 스웨덴어, 핀란드어 | |||
| 종교 | |||
| 루터교(주로 레스타디우스파), 동방 정교회, 사미 샤머니즘 | |||
| 민족계통 | |||
| 근연민족 | 발트핀족, 볼가핀족, 페름족, 우그리아족 등 핀우그리아족 | ||
사미인(사미어: Sámi, Sami나 Saami로도 쓰임)은 북유럽의 북부 지역에 거주하는 우랄족 계열의 원주민이다. 이들의 전통적 거주지를 사프미(Sapmi)라 하는데, 이 지역은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의 북부 지역과 콜라반도에 걸쳐 있다. 과거에는 라프족(Lapp)이나 라플란드인(Laplander)이라고도 불렸다.
사미인은 주변의 민족들과 구분되는 고유의 언어, 문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랄어족 계통의 언어인 여러 방언의 사미어를 모어로 하는데, 그 중 북부 사미어의 화자가 가장 많다. 전통적으로 어업, 덫사냥, 양치기 등으로 삶을 영위해 왔으며 특히 순록 유목으로 잘 알려져 있다.
명칭
[편집]'사미'(Sámi)라는 명칭은 북부 사미어의 자칭 'Sámit'에서 유래했다. 다른 사미어에서는 형태가 다른 동계어를 사용한다. 이는 자신들의 언어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핀족'(Finn)이라는 이름은 원래 중세 노르드인들이 사미인을 가리키던 말이며, 이것은 아이슬란드의 에다와 사가에서 문증된다. 노르드어가 스칸디나비아어로 발전함에 따라 스웨덴인들은 오늘날의 핀란드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가리키는 데 이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과거 외부에서는 이들을 '라프족'(Lapp)이라고 불렀으나, 이 용어는 스칸디나비아 언어에서 '누더기'를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어 오늘날에는 종종 경멸적인 표현으로 간주된다.
지리 및 사프미
[편집]사미인의 전통적인 거주 지역은 사프미라고 불리며, 이는 특정 국가의 국경이 아닌 문화적, 언어적 경계로 정의된다. 사프미는 북극권에 넓게 걸쳐 있으며, 툰드라, 산악 지대, 숲, 그리고 긴 해안선을 포함하는 다양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 노르웨이: 노르웨이는 가장 많은 수의 사미인이 거주하는 국가로, 특히 핀마르크주, 트롬스주, 노를란주에 집중되어 있다. 카라쇼크와 카우토케이노는 노르웨이 사미 문화의 중심지로 꼽히며, 카라쇼크에는 노르웨이 사미 의회가 위치해 있다.
- 스웨덴: 스웨덴의 사미인들은 주로 노르보텐주와 베스테르보텐주의 산악 지대 및 삼림 지역에 거주한다. 키루나와 요크모크가 주요 중심지이다.
- 핀란드: 핀란드 북부의 라피 지역이 사미인의 핵심 거주지이며, 우치요키 등이 주요 마을이다.
- 러시아: 사미인들은 대부분 무르만스크주의 콜라반도에 거주하며, 로보제로가 이들의 중심지이다.
전통적으로는 사프미 지역에 거주했으나, 현대에는 많은 사미인들이 오슬로, 스톡홀름, 헬싱키 등 남부의 대도시로 이주하여 살고 있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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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및 중세
[편집]사미인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으나, 이들의 언어학적 조상인 우랄족은 볼가강을 따라 북서쪽으로 퍼졌고, 기원전 약 1,600년에서 1,500년 전 핀란드 호수지대에 정착한 이들이 사미인의 조상이 되었으리라고 추정된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가 기원후 98년에 저술한 《게르마니아》에서 언급한 '펜니'(Fenni)족이 사미인의 조상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수렵과 채집, 어업을 통해 생활했으며, 이후 소규모의 순록 목축을 시작했다. 중세 시대에 들어서면서 노르드인과의 교류가 활발해졌으며, 모피, 가죽 등을 거래했다. 그러나 동시에 노르웨이, 스웨덴, 노브고로드 공화국 등 주변 강대국들의 조세 징수 대상이 되면서 외부의 압력을 받기 시작했다.
동화 정책과 저항
[편집]17세기부터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사미인에 대한 강력한 동화 정책을 추진했다. 기독교 선교사들이 파견되어 사미인의 전통 신앙인 샤머니즘을 탄압하고, 신성한 물건으로 여겨지던 사미 드럼을 불태웠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는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동화 정책이 더욱 강화되었다. 특히 노르웨이의 노르웨이화 정책(Fornorsking)은 학교에서 사미어 사용을 금지하고, 토지 소유권을 노르웨이어 사용자에게만 부여하는 등 사미 문화를 말살하려는 시도였다. 이로 인해 많은 사미인들이 자신들의 언어와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사미인의 각성과 현대
[편집]20세기 후반, 사미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정치적, 문화적 운동을 시작했다. 1970년대 말 노르웨이에서 벌어진 알타 분쟁(Alta controversy)은 사미인의 권리 운동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정부가 사미인의 순록 유목지에 대규모 수력 발전소 댐을 건설하려 하자, 사미인들은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비록 댐 건설을 막지는 못했지만, 이 사건은 사미인의 문제를 국제적으로 알리고 노르웨이 정부가 원주민 권리에 대한 정책을 재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사미인의 정치적 지위는 크게 향상되었다. 1989년 노르웨이를 시작으로 스웨덴(1993년), 핀란드(1996년)에 각각 사미 의회가 설립되었다. 이 의회들은 사미인의 문화, 언어, 교육 등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각국 정부에 자문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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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어가 속한 사미어군은 우랄어족의 핀우그리아어파에 속한다. 이는 핀란드어, 에스토니아어와는 먼 친척 관계이지만, 스칸디나비아 언어(노르웨이어, 스웨덴어 등)와는 계통적으로 전혀 관련이 없다.
사미어군은 약 10개의 언어로 나뉘며, 이들은 서로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차이가 크다. 대부분의 사미어는 유네스코에 의해 소멸위기언어로 지정되어 있으며, 언어 부흥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표기에는 주로 라틴 문자가 사용되나, 키릴 문자를 사용하기도 한다.
주요 사미어는 다음과 같다.
- 북부 사미어 (Davvisámegiella): 가장 널리 사용되는 언어로,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북부에서 약 20,000명 이상이 사용한다.
- 룰레 사미어 (Julevsámegiella)
- 남부 사미어 (Åarjelsaemien gïele)
- 이나리 사미어 (Anárašgiella)
- 스콜트 사미어 (Sääʹmǩiõll)
- 킬딘 사미어 (Кӣллт са̄мь кӣлл)
문화와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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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인은 거주 지역과 생활 방식의 차이에 의해 산악 사미, 삼림 사미, 해안 사미 등 여러 그룹으로 나뉜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수렵, 어업, 순록 유목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왔다.
순록 유목
[편집]순록은 사미 문화의 핵심이다. 전통적으로 사미 사회는 순록의 계절적 이동 경로를 따라 이동하는 유목 생활을 해왔다. 순록은 고기, 가죽, 뿔 등 모든 부분을 활용하는 중요한 자원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순록 유목은 사미인의 정체성과 경제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현대에는 전체 사미 인구의 약 10%만이 순록 유목에 직접 종사하고 있다.
두오지 (Duodji)
[편집]두오지는 사미인의 전통 공예를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실용적인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예술품이다. 순록의 뿔, 가죽, 나무 등을 재료로 칼, 그릇, 장신구 등을 만들며, 각 지역과 가문의 고유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각티 (Gákti)
[편집]각티는 사미인의 전통 의상으로, 축제나 중요한 행사 때 착용한다. 푸른색 계열의 옷감에 붉은색과 노란색 등 다채로운 장식을 더한 것이 특징이다. 각티의 색상, 무늬, 장식 등은 착용자의 출신 지역, 가문, 결혼 여부 등을 나타내는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요이크 (Joik)
[편집]요이크는 사미인의 독특한 전통 노래 방식이다. 이는 일반적인 노래와 달리 가사보다는 리듬과 선율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 요이크는 특정 사람, 장소, 동물 등을 위해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 자체를 소리로 표현하고 불러내는 것에 가깝다. 이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 전통 중 하나로 꼽힌다.
종교
[편집]전통적으로 사미인들은 자연의 모든 것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사미 샤머니즘을 믿었다. 노아이디(Noaidi)라 불리는 샤먼이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 역할을 했으며, 사미 드럼을 이용해 영적 세계와 소통했다. 17세기 이후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대부분의 사미인들은 루터교로 개종하였다. 특히 19세기 레스타디우스파 부흥 운동은 북부 사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오늘날까지도 독실한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콜라반도의 스콜트 사미인들은 주로 동방 정교회를 믿는다.
정치 및 현대 사회
[편집]사미인의 상징
[편집]- 사미 국경일: 2월 6일이다. 1917년 노르웨이 트론헤임에서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사미인들이 국경을 넘어 처음으로 모여 공동의 문제를 논의한 날을 기념한다.
- 사미기: 1986년에 공식 제정되었다. 깃발의 원은 태양(붉은색)과 달(푸른색)을 상징하며, 네 가지 색(빨강, 초록, 노랑, 파랑)은 사미인의 전통 의상인 각티에서 유래했다.
현대적 과제
[편집]오늘날 사미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를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과제에 직면해 있다.
- 토지 및 자원권 분쟁: 순록 유목지, 전통적 어장 등이 광산 개발, 풍력 발전소 건설, 관광 산업 등으로 위협받고 있어 정부 및 기업과 갈등을 겪고 있다.
- 기후 변화: 지구 온난화는 북극 지역의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는 순록의 먹이와 서식 환경을 변화시켜 전통적인 순록 유목을 위협하고 있다.
- 정체성과 교육: 도시로 이주한 젊은 세대들이 사미어와 전통 문화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며, 사미어 교육 강화와 문화 전승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각주
[편집]- ↑ “Focus on Sami in Norway”. 《Statistics Norway》. 2012년 3월 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 ↑ 가 나 Thomasson, Lars; Sköld, Peter. “Samer” (스웨덴어). 《Nationalencyklopedin》. 2017년 9월 15일에 확인함.
- ↑ “Eduskunta — Kirjallinen kysymys 20/2009”. 《Parliament of Finland》. 2014년 6월 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 ↑ “Russian census of 2002”. 《Russian Federal State Statistics Service》. 2011년 7월 1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9년 3월 12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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