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빙사
보빙사(報聘使)는 1883년 조선에서 최초로 미국 등 서방 세계에 파견된 외교 사절단이다.
1882년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의 체결로 1883년 주한 공사 루시어스 푸트가 조선에 부임하였다. 이에 고종은 임오군란 이후 비대해진 청나라의 세력을 견제한다는 뜻에서 1883년 정사(正使)에 민영익, 부사(副使)에 홍영식, 서기관은 서광범, 수행원은 변수(邊樹, 邊燧)·유길준 등 개화파 인사들을 대동시킨 친선 사절단을 서방 세계에 파견하였다. 사절단은 퍼시벌 로웰과 통역관 미야오카 츠네지로(宮岡恒次郎)의 인도 하에, 태평양을 건너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고 미대륙을 횡단한 다음 워싱턴을 거쳐 뉴욕에서 미국 대통령 체스터 A. 아서(Arthur, C. A.)와 2차례 회동하고 국서를 전하고 양국간의 우호와 교역에 관하여 논의하였다.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보여준 조선식 전통 예법인 절은 소소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1]
이어 세계박람회·시범농장·방직공장·의약제조회사·해군연병장·병원·전기회사·철도회사·소방서·육군사관학교 등 공공기관을 시찰하였다. 특히, 워싱턴에서 내무성 교육국국장 이튼(Eaton, J.)을 방문하여 미국의 교육제도에 대하여 소개받았다. 뒤에 교육국사(敎育局史)와 연보를 기증받았다. 그밖에 우편제도·전기시설·농업기술에 관심을 보였는데, 뒤에 우정국 설치, 경복궁의 전기설비, 육영공원·농무목축시험장 등의 실현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뒤에 주한미국공사 푸트를 통하여 육영공원 교사선발을 국장 이튼에게 의뢰, 뉴욕의 유니언 신학교의 신학생 헐버트·번커(Bunker, D. A.)·길모어(Gilmore, G. W.)의 3명이 파한되었다. 또한, 볼티모어시에서 가우처(Goucher)여자대학 학장인 가우처를 만나 뉴욕 감리교 선교부에 조선에 대한 선교기금을 희사하게 하여 선교사 파견의 교두보가 되었다. 이어 스미스소니언박물관(The Smithsonian Institution)에 조선약용식물의 표본을 기증하여 최초의 문화교류를 기록하였고, 귀국할 때 타작기·벼베기기계·저울 등 농기구 18품을 구입하여왔다. 보스턴 등지를 순회하고 1884년 5월 대서양을 건너 유럽 각지를 여행한 다음 귀국하였다. 수행원 중의 한 사람인 유길준은 보스턴에 남아 유학하였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 ↑ "THE EMBASSY FROM COREA." - 뉴욕 타임즈, 1883년 9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