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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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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
The Starry Night
작가빈센트 반 고흐
연도1889
매체캔버스유화
크기73.7 x 92.1 cm , 29.01 × 36.26 in
카탈로그
위치미국 뉴욕
소장처뉴욕 근대미술관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은 네덜란드의 후기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캔버스에 그린 유화이다. 1889년 6월에 제작된 이 작품은 생레미드프로방스에 있는 그의 정신병원 병실에서 해 뜨기 직전 동쪽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상상의 마을을 더해 그린 것이다.[1][2][3] 이 작품은 릴리 P. 블리스 유산의 일부로 취득되어 1941년부터 뉴욕 뉴욕 근대미술관에서 영구 소장하고 있다.[4] "현대 미술의 시금석"이라 묘사되는 이 작품은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림 중 하나로 간주된다.[5][6][7]

이 그림은 1889년 6월 중순, 생폴드모졸 정신병원의 반 고흐 침실 창밖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옛 수도원이었던 이 시설은 정신병원으로 운영되었으며, 반 고흐는 1888년 12월 말에 발생한 정신적 쇠약과 유명한 자해 소동 이후 1889년 5월 8일에 자발적으로 입원했다. 부유한 환자들을 수용하던 이 시설은 반 고흐가 입원할 당시 정원의 절반도 차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2층 침실뿐만 아니라 1층 작업실을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 빈센트는 이곳에서 1년 동안 머무는 동안 《붓꽃》,《자화상》, 그리고 《별이 빛나는 밤》 등 수많은 작품을 완성했다.

그림에 표현된 천체 중 금성은 당시 하늘에서 볼 수 있었으나, 의 묘사는 천문학적으로 정확하지 않다. 전경의 사이프러스 나무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크기가 과장되어 있다. 반 고흐의 편지에 따르면 그는 이 나무들을 상징적인 의미보다는 주로 미학적인 관점에서 보았다. 그림 속 마을은 정신병원에서 보이는 실제 풍경이 아니라 스케치를 바탕으로 추가한 상상의 요소이다.

몇몇 천문학자들은 이 작품의 별들이 실제 밤하늘의 들이라고 설명한다. 당시 양자리의 별들과 금성, 그리고 달이 그림처럼 위치할 수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고흐가 정신병원의 아침실의 창을 통해 본 밤하늘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일부에서는 이 그림에 나타난 11개의 별은 고흐가 성서 창세기 37장에 나오는 ‘열 별’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주장한다.[8]

《별이 빛나는 밤》은 종교적 상징주의부터 반 고흐의 감정적 격동을 표현한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일부 미술사학자들은 소용돌이치는 하늘을 당시의 천문학적 발견과 연결 짓는 반면, 반 고흐의 개인적인 고뇌의 표현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반 고흐 자신은 형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그림을 "실패작"이라 부르며 비판적이었다.

이 작품은 빈센트 사후 테오에게 상속되었다. 빈센트 사후 6개월 만에 테오가 사망하자 테오의 미망인 요한나가 작품을 소유하게 되었고, 1901년 에밀 쉬페네케르에게 팔았다가 1905년에 다시 사들였다. 1906년부터 1938년까지는 로테르담의 조르제트 P. 반 스톨크가 소유했다. 1938년 반 스톨크로부터 폴 로젠버그가 구입했고, 1941년 뉴욕 근대미술관에 (교환을 통해) 매각했다. 뉴욕 근대미술관은 이 작품을 좀처럼 외부로 대여하지 않는다.[9] 그림에 대한 과학적 분석 결과, 반 고흐가 하늘을 그릴 때 울트라마린코발트블루를 사용했으며, 별과 달에는 인디언 옐로와 아연 황색을 사용했음이 확인되었다.

생폴드모졸 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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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폴드모졸 수도원

왼쪽 귀를 자해했던 1888년 12월 23일의 발작 여파로,[10][11] 반 고흐는 1889년 5월 8일 생레미드프로방스생폴드모졸 요양원에 자발적으로 입원했다.[12][13] 예전 수도원이었던 생폴드모졸은 당시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병원이었는데, 반 고흐가 도착했을 때 정원의 절반도 차지 않은 상태여서,[14] 2층 침실뿐만 아니라 1층 방까지 작업실로 사용할 수 있었다.[15]

반 고흐가 생폴드모졸 요양원에 머물던 1년 동안, 아를에서 시작했던 왕성한 작품 활동은 계속 이어졌다.[16] 이 시기에 그는 현재 J. 폴 게티 미술관에 소장된 1889년 5월의 《붓꽃》과 현재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는 1889년 9월의 《파란색 자화상》을 포함하여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들을 제작했다. 《별이 빛나는 밤》은 6월 18일 경에 그려진 걸로 짐작되는데, 빈센트는 그날 동생 테오에게 별이 빛나는 밤의 새로운 습작을 그렸다고 편지를 썼다.[2][17][18][L 1]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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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 내 반 고흐의 침실

《별이 빛나는 밤》은 반 고흐의 1층 스튜디오에서 낮 동안 그려졌지만, 이 그림이 완전히 기억에만 의존해 그려진 것은 아니다. 이 풍경은 그의 침실 창문에서 동쪽을 바라본 풍경으로 확인되었으며,[2][3][19][20] 반 고흐는 《별이 빛나는 밤》을 포함하여 이 풍경을 여러가지 형태로 21번 이상 그렸다. 그는 1889년 5월 23일경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창살이 있는 창문을 통해 밀이 가득한 사각형의 들판이 보인다... 아침이면 그 위로 찬란하게 떠오르는 해를 지켜본다"라고 썼다.[3][L 2]

반 고흐는 일출, 월출, 햇살 가득한 날, 흐린 날, 바람 부는 날, 그리고 비 오는 날 등 다양한 시간대와 날씨 조건 속에서 풍경을 묘사했다. 병원 직원이 반 고흐가 침실에서 그림 그리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지만, 종이에 잉크나 숯으로 스케치를 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이전 버전을 바탕으로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이 모든 그림을 하나로 묶는 회화적 요소는 오른쪽에서 대각선으로 들어오는 알피유 산맥의 낮게 굽이치는 언덕이다. 21개의 버전 중 15개에서는 밀밭을 둘러싼 벽 너머로 사이프러스 나무가 보인다. 반 고흐는 이 중 6개의 그림에서 나무의 크기를 과장했으며, 특히 F717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과 《별이 빛나는 밤》에서 나무를 더 가깝게 배치했다.

또한, 이 풍경을 그린 초기작 중 하나로 현재 코펜하겐에 있는 F611 《생레미드프로방스 뒷산의 풍경》가 있다. 반 고흐는 이 그림을 위해 여러 스케치를 했으며, 그중 대표적인 것이 F1547 《폭풍 후의 울타리 둘러쳐진 밀밭》이다. 이 그림이 스튜디오에서 그려졌는지 야외에서 그려졌는지는 불분명하다. 이를 묘사한 6월 9일 자 편지에서 그는 며칠 동안 밖에서 작업했다고 언급했다.[21][22][L 3][17] 반 고흐는 1889년 6월 16일 여동생 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시 작업 중이라고 언급한 두 점의 풍경화 중 두 번째 그림을 묘사했다.[21][L 4] 이것이 현재 프라하에 있는 F719 《사이프러스가 있는 푸른 밀밭》이며, 그가 정신병원에서 야외 사생으로 그린 첫 번째 그림이다.[21] 현재 뉴욕에 있는 F1548 《생레미드프로방스의 밀밭》은 이를 위한 습작이다. 이틀 후 빈센트는 테오에게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렸다고 썼다.[23][L 1]

《별이 빛나는 밤》은 그의 침실 창밖 풍경 연작 중 유일한 야상곡이다. 6월 초에 빈센트는 테오에게 "오늘 아침 일출 훨씬 전부터 창밖의 풍경을 보았어. 샛별 하나만 아주 크게 보이더군."이라고 썼다.[L 5] 연구자들은 1889년 봄 프로방스에서 새벽에 실제로 금성(샛별)이 보였으며 당시 가장 밝은 상태에 가까웠다고 확인했다. 그림에서 사이프러스 나무 바로 오른쪽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 금성이다.[17][19]

달은 양식화되어 있는데, 천문 기록에 따르면 반 고흐가 그림을 그릴 당시 달은 하현달이었으며,[17] 설령 당시 초생달이 맞았다고 천문학적으로 정확하지 않았을 것이다. (달에 대한 해석은 아래를 참조하라.) 반 고흐의 방에서 보이지 않았던 요소는 마을인데,[24] 마을은 생레미 마을 위의 언덕에서 그린 스케치(F1541v)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25] 픽밴스는 F1541v가 나중에 제작되었으며, 뾰족탑이 프로방스보다는 네덜란드식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반 고흐가 뉘넌 시절에 그렸던 여러 그림을 조합한 것이며 따라서 이듬해 초에 그리게 될 《북방의 추억》 중 첫 번째 작품으로 보았다.[2] 훌스커는 뒷면의 풍경(F1541r) 또한 그림을 위한 습작이라고 생각했다.[26]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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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가 방대한 양의 편지를 남겼지만, 《별이 빛나는 밤》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2] 6월에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렸다고 알린 후, 1889년 9월 20일경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야 다시 이 그림을 언급하였다. 그는 파리에 있는 동생에게 보내는 그림 목록과 글에서 이 그림을 "밤의 습작"이라고 불렀다.[27] 이 그림 목록에 대해 "결국 내가 조금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밀밭, 산, 과수원, 푸른 언덕이 있는 올리브 나무, 초상화와 채석장 입구 뿐이고, 나머지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고 썼는데, 그 "나머지"에 《별이 빛나는 밤》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송료를 아끼기 위해 그림 세 점을 빼기로 했는데, 《별이 빛나는 밤》은 그가 보내지 않은 그림 중 하나였다.[28] 반 고흐가 1889년 11월 말 화가 에밀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이 그림을 "실패작"이라고 말했다.[29]

반 고흐는 베르나르 및 특히 폴 고갱과 함께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처럼 자연을 보고 그려야 하는지,[30] 아니면 고갱이 "추상"이라고 부른 것, 즉 상상 속에서 떠오른 것을 그려야 하는지에 대해 논쟁했다.[31][32] 반 고흐는 베르나르에게 1888년 10월 23일부터 12월 25일까지 고갱과 함께 살았을 때의 경험을 회상했다.[33] "고갱이 아를에 있을 때, 자네도 알다시피 한두 번 추상의 길로 잘못 빠진 적이 있었지... 하지만 그것은 망상이었네, 친구여, 그리고 곧 벽에 부딪히게 되었어... 그런데도 나는 다시 한번 너무 큰 별을 잡으려다 길을 잃었네. 또 다른 실패작이지. 이제 진절머리가 나는군."[34] 여기서 반 고흐가 말하는 것은 《별이 빛나는 밤》의 상단 중앙을 지배하는 표현주의적인 소용돌이였다.[35]

테오는 1889년 10월 22일 자 편지에서 이러한 회화적 요소들을 언급했다. "달빛 아래의 마을[별이 빛나는 밤]이나 산과 같은 새로운 그림에서 형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느껴져요. 하지만 스타일에 대한 탐구가 사물의 진정한 감정을 앗아가는 것 같아요."[29] 빈센트는 11월 초에 답장을 보냈다. "네가 지난 편지에서 스타일의 탐구가 종종 다른 자질들을 해친다고 말했지만, 사실 나는 좀 더 스타일을 추구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고 있어. 다만, 더 대담하고 의도적인 드로잉을 의미하는 거야. 그것이 나를 베르나르나 고갱처럼 만든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너도 그것에 익숙해질 거라 믿고 싶어." 그리고 같은 편지 뒤편에서 그는 "지난번에 보낸 길고 구불구불한 선으로 그려진 습작들이 원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풍경화에서 덩어리들의 얽힘을 표현하는 스타일을 통해, 사물들을 덩어리로 표현해 나가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믿어주길 바래."라고 썼다.[36]

반 고흐는 주기적으로 고갱과 베르나르의 방식을 옹호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매번 이를 거부하고[37] 자신이 좋아하는 자연으로부터 그리는 방법을 계속 추구했다.[38] 파리에서 만난 인상주의자들, 특히 클로드 모네처럼 반 고흐도 연작으로 작업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는 아를에서 《해바라기》 연작을 그렸고, 생레미에서 사이프러스와 《밀밭》 연작을 그렸다. 《별이 빛나는 밤》은 이 후기 연작뿐만 아니라 아를에서 시작한 작은 야상곡 연작에도 속한다.[39]

반 고흐의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F474, 1888, 캔버스에 유채

야상곡 연작은 밤에 자연을 그리는 데 따르는 어려움 때문에 그다지 많지 않다.[40] 야상곡 연작의 첫 번째 그림은 1888년 9월 초 아를에서 그린 《밤의 카페 테라스》였으며, 그달 말에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 뒤를 이었다. 이 그림들에 관한 반 고흐의 편지에는, 그의 야경 습작, 특히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리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

1888년 2월 아를에 도착한 직후 반 고흐는 테오에게 "나는 사이프러스가 있는 별이 빛나는 밤, 혹은 아마도 익은 밀밭 위의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리고 싶어. 이곳의 밤은 정말 아름답거든"이라고 썼다. 같은 주에 그는 베르나르에게 "낮에 민들레가 흩뿌려진 초원을 그리려 하는 것처럼, 별이 빛나는 하늘을 그려보고 싶어."라고 썼다.[41] 그는 별을 지도의 점에 비유하며, 지상에서 여행하기 위해 기차를 타는 것처럼 "우리는 별에 도달하기 위해 죽음을 맞이한다"라고 생각했다.[42] 비록 이 시기에 반 고흐가 종교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지만,[43][44] 내세에 대한 믿음은 잃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린 후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러한 감정을 표현하며 "뭐랄까, 종교라고나 할까.. 그런 것이 너무나도 절실해서 나는 밤에 밖으로 나가 별을 그린다"라고 고백했다.[45]

그는 사후에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고 썼고 이 차원을 밤하늘과 연관 지었다. "인생에 또 다른 반구 -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죽었을 때 그곳에 상륙하는 곳 - 이 있다면, 인생이 아주 간단해질테고 우리를 놀라게 하고 상처 입히는 끔찍한 일들을 설명해 줄 텐데."[46] "희망은 별 속에 있다"라고 그는 썼지만, 곧 "이 지구 역시 행성이고 결과적으로 별, 혹은 천체다"라고 지적했다.[41] 그리고 《별이 빛나는 밤》이 "낭만적이거나 종교적인 관념으로의 회귀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기술했다.[47]

저명한 미술사학자 마이어 샤피로는《 별이 빛나는 밤》의 표현주의적 측면을 강조하며, 이 작품이 "감정의 압박" 아래 만들어졌으며 "종교에서 영감을 받은 환상적인 [그림]"이라고 말한다.[48] 샤피로는 이 작품이 신약성경 요한 계시록을 암시하며, "해와 달을 허리에 두르고 별의 왕관을 쓴 해산을 앞둔 여인의 고통과, 용에게 위협받는 갓 태어난 아이"라는 묵시론적 주제를 드러낸다는 이론을 세웠다.[49] (샤피로는 같은 책에서 《별이 빛나는 밤》과 같은 시기에 그려졌고, 이 작품과 짝을 이루는 것으로 간주되는 《올리브 나무가 있는 풍경》의 구름 속에서도 어머니와 아이의 형상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50]

미술사학자 스벤 뢰브그렌은 샤피로의 접근 방식을 확장하여 《별이 빛나는 밤》을 다시 한번 "극심한 동요의 상태에서 구상된 환상적인 그림"이라 불렀다.[51] 그는 "그림의 환각적인 성격과 격렬하게 표현된 형태"에 대해 썼지만, 이 그림이 반 고흐의 무력한 발작 중에 그려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52] 뢰브그렌은 반 고흐의 "내세에 대한 종교적 경향의 갈망"을 월트 휘트먼의 시에 비교했다.[53] 그는 《별이 빛나는 밤》을 "예술가가 우주에 완전히 흡수되는 것을 상징하는 무한히 표현적인 그림"이며, "영원의 문턱에 서 있는 잊을 수 없는 감각을 선사하는 그림"이라 부른다.[54] 뢰브그렌은 이 그림을 묵시록적 비전으로 본 샤피로의 "설득력 있는 해석"을 찬양하며[55]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의 꿈 속 11개의 별에 관한 상징주의 이론을 전개했다.[56] 뢰브그렌은 별이 빛나는 밤의 회화적 요소들이 "순수하게 상징적인 용어로 시각화되었다"라고 주장하며 "사이프러스는 지중해 국가들에서 죽음의 나무이다"라고 언급했다.[57]

1889년 그림을 그린 후 반 고흐가 리드펜으로 복제한 소묘 《별이 빛나는 밤의 사이프러스》. 원래 브레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논란이 되고 있는 발딘 컬렉션의 일부이다.[58][59]

미술사학자 로런 소스 또한 별이 빛나는 밤에서 상징주의적 의도를 발견하며, 이 그림이 "가장된 전통 종교 주제"이자[60] "[반 고흐의] 깊은 종교적 감정이 승화된 이미지"라고 말한다.[61] 반 고흐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그림을 숭배했고 특히 그가 그리스도를 그린 그림에서 프러시안 블루와 레몬 옐로를 사용했다는 점을 인용하며, 반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에서 이 색상들로 그리스도를 나타냈다는 이론을 세웠다.[62] 그는 또한 초승달이 태양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샤피로와 뢰브그렌의 성경적 해석을 비판한다. 소스는 그것이 단순한 초승달일 뿐이며, 반 고흐에게는 "위안"을 상징하는 상징적 의미가 있었다고 썼다.[63]

미술사학자 알베르트 보이메는 이러한 별이 빛나는 밤의 상징주의적 해석을 기반으로 자신의 연구를 제시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보이메는 이 그림이 정신병원 창밖 풍경의 지형적 요소뿐만 아니라 천체 요소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음을 입증했으며, 금성뿐만 아니라 양자리 성좌도 식별해 냈다.[19] 그는 반 고흐가 원래 상현달을 그리려 했으나 "더 전통적인 초승달 이미지로 돌아갔다"라고 주장하며, 초승달 주위의 밝은 후광이 원래 상현달 버전의 잔재라는 이론을 세웠다.[24] 아울러 그는 반 고흐가 빅토르 위고쥘 베른의 저작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 별이나 행성에서의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의 영감이 되었을 가능성을 설명한다.[64] 그는 반 고흐의 생애 동안 이루어진 천문학 발전상에 대해 상세한 논의를 제공한다.

보이메는 반 고흐가 편지에서 천문학자 카미유 플라마리온을 언급한 적은 없지만,[65] 플라마리온의 대중적인 삽화 출판물들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 출판물들에는 망원경으로 보고 촬영한 나선형 성운(당시 은하를 일컫던 말)의 그림이 포함되어 있었다. 보이메는 《별이 빛나는 밤》의 하늘 중앙 부분에 있는 소용돌이치는 형상이 나선 은하나 혜성을 나타낸다고 해석한다. 혜성의 사진 또한 대중 매체에 게재된 바 있었다.[24] 그는 그림에서 유일하게 비현실적인 요소는 마을과 하늘의 소용돌이뿐이라고 주장한다. 이 소용돌이들은 반 고흐가 우주를 살아있고 역동적인 장소로 이해했음을 나타낸다.[66]

하버드 천문학자 찰스 A. 휘트니는 (U.C.L.A.에서 거의 평생을 보낸) 보이메와는 별개로 동시에 《별이 빛나는 밤》에 대한 천문학 연구를 수행했다.[67] 휘트니는 양자리에 대한 보이메의 확신에는 동의하지 않지만,[68] 그림이 제작될 당시 프로방스에서 금성이 보였다는 점에는 보이메와 의견을 같이한다.[17] 그는 또한 하늘에 나선 은하가 묘사되었다고 보았지만, 그 원천은 플라마리온이 복제한 원 작품인 앵글로-아이리시 천문학자 제3대 로스 백작 윌리엄 파슨스에게 돌렸다.[69]

1845년 로스 경이 그린 소용돌이 은하의 스케치. 반 고흐의 그림보다 44년 전이다.

휘트니는 또한 하늘의 소용돌이가 바람을 나타낼 수 있으며, 반 고흐가 프로방스에서 보낸 27개월 동안 깊은 영향을 주었던 미스트랄을 연상시킨다는 이론을 세웠다.[20]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린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1889년 7월, 정신병원 입원 후 첫 번째 쇠약 증세를 유발한 것이 바로 미스트랄이었다.)[70] 보이메는 지평선 바로 위의 상대적으로 밝은 파란색 음영이 새백의 여명을 나타낸다는 이론을 세웠다.[24]

그림 속 마을은 반 고흐의 고국 네덜란드에 대한 회상이거나,[2][71] 그가 생레미 마을을 그린 스케치가 바탕이라는 등 다양하게 해석된다.[25][24] 어떤 경우든, 마을 풍경은 정신병원 침실 창문에서는 보이지 않는 그림의 상상적인 구성 요소이다.

유럽 문화에서 사이프러스 나무는 오랫동안 죽음과 연관되어 왔지만, 반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에서 그러한 상징적 의미를 의도했는지는 공개적인 논쟁의 주제이다. 1888년 4월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반 고흐는 "장례식의 사이프러스"를 언급한 적이 있지만,[72] 이는 "장엄한 오크"나 "수양버들"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할 가능성이 있다.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린 지 일주일 후 그는 동생 테오에게 "사이프러스가 항상 내 생각을 사로잡고 있어. 해바라기 캔버스처럼 사이프러스를 그려보고 싶은데 내가 보는 것처럼 그것들을 그린 사람이 없다는 게 놀라워"이라고 썼다.[73] 같은 편지에서 그는 "병녹색의 그 어려운 그늘을 가진 두 점의 사이프러스 습작"을 언급했다.[74] 이러한 글로 미루어 볼 때 반 고흐가 상징적 함축보다는 나무의 형식적 특성에 더 관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샤피로는 그림 속 사이프러스를 "인간적 열망을 어렴풋이 상징하는 것"이라고 언급한다.[48] 보이메는 그것을 "비정통적인 방식으로 반 고흐의 무한을 향한 열망에 대한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부른다.[65] 미술사학자 보이텍 지라트-와슈틴스키는 반 고흐에게 사이프러스가 "소박하고 자연적인 오벨리스크" 역할을 하며 "하늘과 땅 사이의 연결고리"를 제공한다고 말한다.[75] 뢰브그렌은 독자들에게 "사이프러스는 지중해 국가들에서 죽음의 나무이다"라고 상기시킨다.[57]

미술사학자 로널드 픽밴스는 《별이 빛나는 밤》이 "분리된 모티프들을 임의로 콜라주"한 것이며 "명백하게 '추상화'로 낙인찍을 수 있다"라고 말한다.[76] 픽밴스는 반 고흐의 방에서 동쪽을 향했을 때 사이프러스 나무가 보이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마을 및 하늘의 소용돌이와 함께 사이프러스도 반 고흐 상상력의 산물로 본다.[2] 하지만 보이메는 사이프러스가 동쪽에서 보였다고 주장하며,[19] 지라트-와슈틴스키도 마찬가지이다.[77] 반 고흐 전기 작가 스티븐 나이페와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는 반 고흐가 창밖 풍경을 그린 특정 그림에서 풍경을 "망원경처럼 압축했다"는 점에 동의하며,[23] 샛별을 특징으로 하는 그림에서 반 고흐가 이 기법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깊이를 압축함으로써 샛별의 밝기를 향상시켰다는 것이다.

소스는 별이 빛나는 밤이 "배치의 관점에서 과장된 것"이라는 반 고흐가 동생에게 한 말을 빌어 이 그림이 "이미지들의 혼합물"이라는 자신의 언급이 맞다 주장한다.[78] 그러나 반 고흐가 "배치"(arrangement)를 "구도"의 동의어로 사용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반 고흐는 《별이 빛나는 밤》을 포함한 세 점의 그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흰 구름과 산 배경이 있는 올리브 나무, 그리고 월출과 밤의 효과(《별이 빛나는 밤》을 의미), 이것들은 배치의 관점에서 볼 때 과장된 것이며, 그 선들은 고대 목판화의 선들처럼 뒤틀려 있어." 앞의 두 그림은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을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세 그림의 공통점은 테오가 별이 빛나는 밤에서 "스타일의 추구가 사물의 진정한 감정을 앗아간다"고 비판했던 과장된 색채와 붓질이다.

이 시기 반 고흐는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가 색상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했던 "배치"(arrangement) 용어를, 유사한 의미로 두 번 더 사용했다. 1889년 1월 고갱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색채의 '배치'로 보자면, 붉은색이 순수한 주황색으로 이어지고, 살색에서 크롬색에 이르기까지 더욱 강렬해지다가 분홍색으로 바뀌고 올리브색과 베로나 녹색과 어우러지네. 인상주의적인 색채 배열로서, 나는 이보다 더 나은 것을 생각해낸 적이 없었어"라고 썼다.[79] (그가 이 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그림은 아우구스티누스 룰랭의 《라 베르쇠즈》로, 상상력이 풍부한 꽃무늬 배경의 사실적인 초상화이다.) 그리고 1889년 11월 말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지만 고갱이 가지고 있는 자네의 그림, 《들판을 걷는 브르타뉴 여인》들을 다시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엔 이것으로 충분할거야. 그 '배치'는 너무나 아름답고 색채는 너무나 순수하게 구별되지. 아, 자네는 그것을 — 구지 말해야 할까 싶지만 — 인위적이고 가식적인 무언가와 맞바꾸고 있군"이라고 썼다.[80][81]

나이페와 스미스는 이 그림을 환각적인 비전이라 부르지는 않았지만,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정신 질환 맥락에서 측두엽 간질 혹은 잠복 간질과의 맥락에서 논의한다.[82] "고대부터 알려진 사지가 떨리고 몸이 무너지는 종류가 아니라, 정신적 간질 — 즉, 생각, 지각, 이성, 감정이 붕괴되는 현상으로 뇌에서 전적으로 나타나며 종종 기이하고 극적인 행동을 유발한다."[83] 발작의 증상은 "뇌 속의 전기적 충격의 불꽃놀이와 닮아 있었다."[35]

반 고흐는 1889년 7월에 7개월 만에 두 번째 신경 쇠약을 겪었다.[70] 나이페와 스미스는 반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렸을 때 이 쇠약의 씨앗이 존재했으며, 자신의 상상력에 몸을 맡김으로써 "그의 방어선이 뚫렸다"라는 이론을 세웠다.[84] 6월 중순의 그날 반 고흐는, "고조된 현실 상태"에서 그림의 모든 다른 요소들이 그대로 둔 채,[85] 별들을 그리는 데 몰두하여 "세상이 평범한 눈으로 본 적 없는 밤하늘"을 만들어 냈다고 주장한다.[35] 그림은 그의 생각과 그가 처한 마음 상태를 반영한다. 어둠에도 불구하고 터널 끝에는 항상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장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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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는 처음에는 그림을 보내지 않고 갖고 있었으나, 1889년 9월 28일 다른 9~10점의 그림과 함께 《별이 빛나는 밤》을 파리의 테오에게 보냈다.[28][76] 테오는 빈센트 사후 6개월도 채 되지 않은 1891년 1월에 사망했다. 테오의 미망인 요한나가 반 고흐 유산의 관리자가 되었다. 1900년 파리에서 그녀는 이 그림을 시인 쥘리앵 르클레르크에게 팔았다. 1901년 르클레르크는 이를 고갱의 오랜 친구인 에밀 쉬페네케르에게 팔았다. 요한나는 쉬페네케르로부터 그림을 다시 사들였고 1906년 로테르담의 올덴젤 갤러리에 팔았다. 1906년부터 1938년까지 로테르담의 조르제트 P. 반 스톨크가 소유했으며, 그녀는 파리와 뉴욕의 폴 로젠버그에게 이를 팔았다. 뉴욕 근대미술관이 1941년 이 그림을 취득한 것은 로젠버그를 통해서였다.[86] 팟캐스트 "The Economics of Everyday Things"의 102회 에피소드에 따르면, MOMA 관장 글렌 라우리는 블리스 컬렉션에서 세잔 그림 두 점과 툴루즈로트레크 그림 한 점을 댓가로 이 작품을 취득했다고 밝혔다.[87]

회화 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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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로체스터 공과대학교와 뉴욕 뉴욕 근대미술관의 과학자들에 의해 조사되었다.[88] 안료 분석에 따르면 하늘은 울트라마린코발트블루로 그려졌으며, 별과 달의 경우 반 고흐는 희귀 안료인 인디언 옐로와 아연 황색을 함께 사용했다.[89]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인용
  1. 네이버 지식백과. 2026년 1월 9일에 확인함.
  2. 1 2 3 4 5 6 7 Pickvance 1986, 103쪽
  3. 1 2 3 Naifeh & Smith 2011, 747쪽
  4. '별이 빛나는 밤'은 어디에 있나? (영어). Van Gogh Museum. 2024년 10월 1일에 확인함.
  5. 별이 빛나는 밤 | 역사, 설명, 작가, 빈센트 반 고흐, 그림 및 사실 (영어). Britannica. 2025년 1월 23일. 2025년 2월 23일에 확인함. 이후 이 작품은 반 고흐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 어쩌면 미술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6. Moyer, Edward (2012년 2월 14일). 관람객이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직접 움직여 볼 수 있는 인터랙티브 캔버스. CNET News. 2015년 6월 12일에 확인함. ...서양 미술에서 가장 상징적인 그림 중 하나인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7. Kim, Hannah (2010년 5월 27일).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이제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크기로!. MoMA. 2015년 6월 12일에 확인함. ...누구나 즉시 알아볼 수 있고 우리 문화의 상징적인 이미지인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은 현대 미술의 기준점이자 가장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이다....
  8. 동아 사이언스: 우주에 피어난 고흐의 명작 '별이 빛나는 밤'. 동아사이언스. 2015년 12월 23일. 2026년 1월 10일에 확인함.
  9. 별이 빛나는 밤. moma.org. 2025년 5월 6일에 확인함.
  10. Naifeh & Smith 2011, 701–7쪽
  11. Pickvance 1984, 159쪽
  12. Naifeh & Smith 2011, 741–3쪽
  13. Pickvance 1986, 25–6쪽
  14. Naifeh & Smith 2011, 746쪽
  15. Naifeh & Smith 2011, 754쪽
  16. Naifeh & Smith 2011, 592, 778쪽
  17. 1 2 3 4 5 Whitney 1986, 356쪽
  18. Naifeh & Smith 2011, 759–61쪽
  19. 1 2 3 4 Boime 1984, 88쪽
  20. 1 2 Whitney 1986, 358쪽
  21. 1 2 3 Hulsker 1986, 394쪽
  22. Pickvance 1986, 93쪽
  23. 1 2 Naifeh & Smith 2011, 759쪽
  24. 1 2 3 4 5 Boime 1984, 89쪽
  25. 1 2 Naifeh & Smith 2011, 760쪽
  26. Hulsker 1986, 396쪽
  27. Van Gogh Letters Project, no. 805
  28. 1 2 Van Gogh Letters Project, no. 806
  29. 1 2 Naifeh & Smith 2011, 784쪽
  30. Naifeh & Smith 2011, 7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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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Gayford, Martin (2006). 노란 집: 반 고흐, 고갱, 그리고 프로방스에서의 파란만장한 아홉 주간. Boston: Houghton Mifflin Company. 11, 286쪽. ISBN 978-0-618-99058-0.
  34. de Leeuw, Ronald 편집 (1996). The Letters of Vincent van Gogh. London: Penguin Books. 469쪽. ISBN 978-0-140-446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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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Schapiro, Meyer (1950). Vincent van Gogh. New York: H. N. Abrams. 110쪽.
  40. Naifeh & Smith 2011, 6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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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Naifeh & Smith 2011, 766쪽
  45. Naifeh & Smith 2011, 651쪽
  46. Naifeh & Smith 2011, 858n쪽
  47. Naifeh & Smith 2011, 767쪽
  48. 1 2 Schapiro, p. 100
  49. Schapiro, p. 33
  50. Pickvance 1986, 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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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Loevgren 1971, 17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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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Soth 1986, 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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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1 2 Naifeh & Smith 2011, 7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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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 Jirat-Wasiutynski, p. 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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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 Jirat-Wasiutynski, p. 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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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Naifeh & Smith 2011, 675쪽
  82. Naifeh & Smith 2011, 762–763쪽
  83. Naifeh & Smith 2011, 749쪽; 원문 강조
  84. Naifeh & Smith 2011, 7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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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 소유 이력 연구 프로젝트. Museum of Modern Art. 2014년 8월 16일에 확인함.
  87. 별이 빛나는 밤The Economics of Everyday Things (Podcast). 제102 회. 2025년 8월 10일. Spotify/Apple Podcasts. 2025년 10월 6일에 확인함. 박물관은 '별이 빛나는 밤'을 구입할 기회는 잡았지만, 자금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블리스 컬렉션의 작품 세 점과 교환하는 방안을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과 교환된 세 점의 그림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세잔의 《빅토르 쇼케의 초상화》와 정물화 《술병》, 그리고 툴루즈 로트렉의 《메이 벨포르의 초상화》였습니다.
  88. Yonghui Zhao, Roy S. Berns, Lawrence A. Taplin, James Coddington, An Investigation of Multispectral Imaging for the Mapping of Pigments in Paintings, in Proc. SPIE 6810, Computer Image Analysis in the Study of Art, 681007 (29 February 2008)
  89. Van Gogh, The Starry Night, illustrated pigment analysis, ColourLex
편지
  1. 1 2 편지 782: 테오 반 고흐에게. 생레미드프로방스, 1889년 6월 18일 화요일경. Vincent van Gogh: The Letters. 반 고흐 미술관. 1v:2. 2023년 10월 1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At last I have a landscape with olive trees, and also a new study of a starry sky.
  2. 편지 776: 테오 반 고흐에게. 생레미드프로방스, 1889년 5월 23일 목요일경. Vincent van Gogh: The Letters. 반 고흐 미술관. 1v:2. 2023년 10월 1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Through the iron-barred window I can make out a square of wheat in an enclosure, a perspective in the manner of Van Goyen, above which in the morning I see the sun rise in its glory.
  3. 편지 779: 테오 반 고흐에게. 생레미드프로방스, 1889년 6월 9일 일요일. Vincent van Gogh: The Letters. 반 고흐 미술관. 1v:2. 2023년 10월 1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 며칠 전부터 동네를 돌아다니며 작업을 하고 있어... 그중 하나는 내 침실 창문에서 언뜻 보이는 시골 풍경이야. 앞쪽에는 폭풍우에 짓밟혀 땅에 쓰러진 밀밭이 있습, 벽 너머로는 올리브 나무의 회색 잎사귀, 오두막집, 그리고 언덕들이 보여. 마지막으로 그림 맨 위에는 푸른 하늘에 묻힌 커다란 흰색과 회색 구름이 있고. 색채 면에서도 극도로 단순한 풍경이야.
  4. 편지 780번: 윌레미앙 반 고흐에게. 생 레미 드 프로방스, 1889년 6월 16일 일요일. Vincent van Gogh: The Letters. 반 고흐 미술관. 1r:1. 2023년 10월 1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또 다른 그림은 가시덤불과 푸른 덤불에 둘러싸인 누렇게 변해가는 밀밭을 묘사한 거야. 밭 끝에는 작고 분홍색 집이 있고, 그 옆에는 키 크고 검은 삼나무가 서 있는데, 멀리 보라색과 푸른빛이 감도는 언덕과, 분홍빛이 흩뿌려진 물망초처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뚜렷하게 드러나지. 하늘의 순수한 색조는 이미 무겁고 그을린 밀 이삭과 대조를 이루는데, 이삭의 색조는 빵 껍질처럼 따뜻해.
  5. 편지 777: 테오 반 고흐에게. 생레미드프로방스, 1889년 5월 31일 금요일경부터 6월 6일 목요일경 사이. Vincent van Gogh: The Letters. 반 고흐 미술관. 1v:2. 2023년 10월 1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오늘 아침 해 뜨기 훨씬 전에 창문으로 시골 풍경을 바라보았는데, 샛별 하나만이 유난히 크게 빛나고 있었다.
참고 자료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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