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용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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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호크우드 추념벽화. 1436년 작품.

백색용병대(영어: White Company, 이탈리아어: Compagnia Bianca 꼼빠니아 비앙카[*])는 14세기의 모험용병대로, 이탈리아에서 주로 활동했다. 용병대장은 1363년까지는 독일인 알베르트 슈테르츠, 그 뒤에는 잉글랜드인 존 호크우드였다. 원래 이름은 잉글랜드인과 독일인의 대용병대(Great Company of English and Germans)였고,[1]:46 잉글랜드인 용병대(이탈리아어: Compagnia degli Inglesi, 라틴어: Societas Angliciis)라고도 했다.

백색용병대라는 이름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설명하는 사료가 없다.[1]:47 전통적으로는 용병대 소속 무장병들의 갑옷을 윤이 나게 닦아서 그렇다고 했다.[2]:37 윌리엄 카페로(William Caferro)는 흰색 서코트를 입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는 설을 제기했다.[1]:47

잉글랜드인 용병대라고 불렸지만, 그 구성 인원들의 출신은 잉글랜드인, 독일인, 이탈리아인, 헝가리인 등 다양했다. 14세기 이탈리아 용병전이 국제적 성격을 띠었던 맥락이 그러하다.[1]:66 대원 수는 해마다 달랐다. 1361년에는 기병 3,500 명에 보병 2,000 명이었고, 가장 적었던 1388년에는 250명에 불과했다.[3]:76-77

용병대의 기병은 세 부류로 구성되었는데, 무장병, 향사, 시동이 그것이다. 이 중 전투병력은 무장병과 향사였다.[1]:88 이 병력들은 여러 개의 파견대들로 나뉘었고, 각 파견대의 대장을 상등병(corporal)이라고 했다. 용병대 전체가 아니라 파견대 단위에서 개별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았다.[1]:66 그래서 용병대에 일종의 민주적 요소가 있었고, 존 호크우드가 1365년에 용병대장이 된 것도 선거를 통해서였다.[2]:39 보병에는 잉글랜드 장궁수들이 많았다.[1]:75 또한 법무·계약·회계·재정을 맡는 비전투 행정병들도 있었는데, 주로 이탈리아인들이었다. 백색용병대의 회계총무는 윌리엄 손턴(William Thornton)이라는 잉글랜드인이었다.[1]:67

백색용병대가 이탈리아 전쟁에 기여한 부분 중 하나는, 백년전쟁에서 이미 일반화된 하마전투를 소개했다는 것이다.[2]:37 당대 기록들을 보면 무장병들이 하마해서 밀집대형을 짜고, 무장병 두 명이 기병창 한 자루를 함께 들고 천천히 전진하면서 큰 소리로 구호를 질렀다고 한다. 아마 그 후열에서는 장궁수들이 대오를 따랐을 것이다.[1]:48-49[3]:76-77 그렇다고 그들이 승마전투를 완전히 포기했다는 것은 아니다. 카스타그나로 전투에서는 기병돌격을 해서 승리했다.[3]:137-140

백색용병대가 참전한 대형 전투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3]

그 외에 자잘한 산병전, 공성전, 도시 약탈 등은 매우 많다. 1377년에는 민간인 수천 명이 살해된 케세나 학살에 참여하는 오명을 남겼다.[1]:188-190

각주[편집]

  1. Caferro, William. John Hawkwood: An English Mercenary in Fourteenth-century Italy.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2006. ISBN 978-0-8018-8323-1
  2. Mallet, Michael: Mercenaries and their Masters, Bodley Head, London, 1974 ISBN 0-370-10502-8
  3. Cooper, Stephen. Sir John Hawkwood: Chivalry and the Art of War. Barnsley: Pen and Sword, 2008. ISBN 978-1-84415-7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