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셰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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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셰비키(러시아어: меньшевики, 영어: Mensheviks)는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이 분열해 형성된 분파이다. 1904년 율리우스 마르토프블라디미르 레닌 사이에 분쟁이 일어난 뒤 레닌을 따르는 쪽이 볼셰비키가 되었고 나머지가 멘셰비키가 되었다. 볼셰비키와 멘셰비키 모두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필수적인 것이라고 간주하고 사적 유물론을 따랐다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다만 멘셰비키가 당시 다수당이었던 사회주의혁명당과 좀더 친화적인 온건파였다.

개요[편집]

1903년, 제2회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대회에서 분열되어 나온 율리우스 마르토프에 의하여 통솔된 분파이다. 당을 구성할 때 소 부르주아적인 인텔리, 모든 파업자, 시위운동자에게도 입당을 허락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입당 자격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던 레닌 일파인 볼셰비키와는 상반되는 주장이었다. 볼셰비키는 이들을 조직의 해체, 당규율의 파괴, 기회주의, 인텔리적 개인주의 찬미의 시인 등을 선동하는 반혁명적 집단이라고 규정하였고 곧 멘셰비키와 볼셰비키는 갈라지게 된다.

국회에서는 입헌민주당(카데트)과 제휴를 주장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시에는 조국방위주의(祖國防衛主義) 입장을 취하였으며, 2월 혁명 때에는 사회혁명당과 함께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카데트와 연립정부를 조직하였고, 볼셰비키의 급진 노선에 반대하여 이른바 '임시정부 헌법 내에서의 개혁'을 내세우며 비합법적 혁명 운동의 폐지를 주장하였다. 1917년 10월 볼셰비키 정권이 출현하자 일부는 러시아 백군에 가담하는 등 맹렬한 반혁명운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 이후에는 해당주의(解黨主義)를 주창했다.

교조적 경제주의[편집]

마르크스주의 혁명론에 있어서 카를 카우츠키와 같은 교조적 경제주의 입장을 취했다. 이들은 카를 마르크스의 단계론을 소극적·숙명론적으로 해석하여 2월 혁명이 성공한 시점에서, 혁명적 당이 부르주아의 공세에 대비를 하지 않아도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사회주의 혁명이 발생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들이 가진 혁명에 있어서 소극주의는 러시아 공화국 임시정부에 의한 사회주의자 탄압이 실질적으로 개시됐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졌으며, 결국 혁명의 방해 세력으로 작용됐다.[1] 이들은 동시에 자본주의 발전으로 인한 계급투쟁 의식은 전-지구적으로 이미 러시아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초기 자본주의인 러시아에서 바로 사회주의 국가를 세울 수 있다는 볼셰비키의 주장에 반대했으며, 노농동맹론과 전쟁 중단도 반대했다.[2]

수정주의[편집]

1917년 2월 혁명 이후 이들은 독일사회민주당의 수정주의에 영향받았으며, '헌법 내 노동운동'을 지향했다.[3]

참고 자료[편집]

  1. 스티븐 A, 스미스 저, 류한수 역, 『Russian Revolution: A Very Short Introduction』(2007년, 박종철출판사) pp. 34 - 38
  2. "Menshevik". 《Marxism.org Glossary of Terms》 Marxism.org. Retrieved 9 October 2013.
  3. 스티븐 A, 스미스 저, 류한수 역, 『Russian Revolution: A Very Short Introduction』(2007년, 박종철출판사) pp. 38 - 40

외부 링크[편집]